2018-06-05
어쩌다 그들이 여기에 있다. 모두 이 지상에. 이 지상에 있는 슬픔을, 여름 저녁 밤의 소리에 둘러싸여 퀼트 위에 누워 있는 슬픔을 누가 말할까? 우리 가족을, 우리 삼촌을, 우리 이모를, 우리 엄마를, 우리 착한 아빠를 하느님이 축복하시길. 아, 그리고 그들을 친절하게 기억하시길. 그들이 어려운 시간에도, 그들이 떠난 시간에도. p.39.
아침을 먹으면서 책을 보는 설정인데, 자꾸 점심도 지나서야 일어나니까 이거 참 면목이 없습니다. 먼저 반성을 좀 하고, 오늘이 지나가기 전에 겨우 끄적여본다. 자매님이 와서 도쿄에서 사 온 커피를 내려서 마시고, 남은 카레와 우동으로 대충 한 끼를 먹고 - 실은 그게 아침인가 - 책 배송이 온 걸 뜯었다. 요즘은 주로 잠 안 오는 새벽에 누워서 핸드폰으로 책을 주문한다. 잠 안 오는 밤이 많을수록 주문하는 책도 많아진다. 잠이 안 오면 있는 책이나 마저 읽을 일이지 왜 자꾸만 책을 사고 있는지 모를 일이다. 아무튼. 오늘 온 책 중에 <천천히, 스미는>을 휘리릭 넘겨보다가 제임스 에이지의 '녹스빌: 1915년 여름'에서 멈추었다. 이 책은 영미 작가들의 아름다운 산문을 모아 한 권으로 엮은 건데, 리처드 라이트, 버지니아 울프, 윌리엄 포크너, F. 스콧 피츠제럴드,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 등의 이름 사이에 제임스 에이지가 있었다. 그는 여섯 살에 교통사고로 우체국 직원이던 아버지를 잃었고, 이 글은 아버지를 잃기 직전 어느 여름날 저녁을 회상한 글이라고. 짧은 글인데 너무나 아름답다. '별로 특별하지 않은 이야기, 전혀 특별하지 않은 이야기, 아무 이야기도 아닌 이야기. p.39.' 그런 이야기인데도.
그저께인가 트위터에서 많이들 리트윗 한 오은영 박사의 인터뷰를 읽게 됐다. '내 인생에서 중요하지 않은 사람은 그냥 흘려보내라'는 류의 얘기가 인상적이었던지 계속 생각났다. - 지금 다시 찾아본다 - (길 가다가 누가 내 어깨를 치고 가더라도 탈구된 게 아니면 그냥 보내라, 그렇지 않고 '저기요!' 하면 악연이 생긴다, 나를 모르는 사람이라면 의도가 없다, 그냥 '바쁜가 보지' 하고 보내면 된다, 내 인생을 흔들만한 사람이 아니다, 그럼 강물처럼 흘려보내라.) 그런데요, 그게 말처럼 쉽지가 않아요 선생님, 모르는 사람이 아니라서 그렇겠지요, 네 물론 당연한 일이겠지요, 저는 쉽지가 않아요. 매일, 시도 때도 없이, 속으로 안부를 묻고 말을 건넨다, 시간이 필요하겠지, 아니 내가 필요로 하지 않아도 어차피 시간은 잘도 간다.
그래서 진짜로 하고 싶은 이야기가 뭐냐고요. 진짜로 하고 싶은 이야기는 못 한다. - 그래서 나는 작가가 아니지, 작가는 못 되겠지 - 문득 <나의 미카엘>의 한 구절이 떠올랐다. '난 그저 도입부, 예행연습을 겨우겨우 더듬어 해나가고 있을 뿐이고 앞으로 다가올 날에 해야 할 어려운 역할을 외우고 연습하는 중이라고요. 짐을 싸고. 준비하고. 연습하고. 여행은 언제 시작되나요 미카엘? 나는 기다리고 기다리는 데 지쳐버렸어요. p.225.'
내일은 우체국에 가야겠다. 앗 공휴일이네. 그럼 목요일에! 바다 건너 멀리 책을 보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