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칼이 되어줘

2018-06-21

by a little deer
6월 21일
~ 어떤 생각이 떠올라요? 괜찮아요. 우린 서로 자유롭게 웅얼대기로 했으니까요. ~ Y.
~ 이제 당신은 내 생각까지 읽을 줄 아는군요, 내가 예전에 만났던 여인들의 몸짓과 신음과 점까지 전부 기억하지만 그 기억 속에서 정작 나를 찾을 수 없다는 것이 뭐 그리 이상하다는 거죠? p.101.


마지막으로 편지를 쓴 게 언제더라. 지난봄인가, 아니면 겨울? 물론 마음속으로는 수도 없이 썼지만. 그렇게 이어졌다 끊어졌다 하며 스쳐 지나가는 생각들을 저렇게 다 붙잡아 두다니,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그런 상태를 이런 방식으로 표현하다니. (이 따위로 밖에 설명 못하는 내 표현력의 한계가 절망스럽지만) 어쨌든 저렇게 쓰는 것, 아무나 못 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처음 그런 놀라움을 느꼈던 - 이렇게 쓸 수도 있구나! 하고 - 체루야 살레브의 책, <남편과 아내>가 첫 장을 읽을 때부터 겹쳐졌던 것이 결코 우연은 아닌 셈이다. 심지어 두 작가 모두 이스라엘 사람. 그래서 (또) 아모스 오즈의 <나의 미카엘>의 한 문장이 떠오른다. ‘그는 나더러 차갑고 아름다운 예루살렘 사람이라고 했다. p.36.’ - <나의 미카엘>에서는 밑줄을 긋지 않아도 되는 부분을 찾는 게 더 빠르겠네 - 아무튼.


마음속으로 수도 없이 편지를 쓰는 동안, 생각해보면 너무나 많이 울었다. 그러면서도 괜찮은 척, 아무렇지 않은 척, 스스로를 잘 속이고 있었던 것 같다. 무엇보다 두려워서. 딱 한번 그 앞에서 어린애처럼 울음이 터졌던 날, 아니 그 보다 훨씬 전에, 처음으로 돌아가서, 괜찮냐고 물었을 때, 사실은 이미 알고 있었던 건지도. 그러나 돌이킬 수는 없지. 아니, 진짜로 쓰려던 말은 이게 아니고. 그러나 이렇게 쓰는 사이에도 온갖 생각이 가지를 치고 꼬리를 물며 저 멀리 뻗어나가고 그걸 붙잡으러 달려가는 사이 연기처럼 사라진다. 망각. 물론 그래서 다행이다.


아까 통화 중에 엄마가 정신없이 바빠서 시간은 잘 가겠네, 하며 조금 웃었다. 엄마는 모르겠지, 정곡을 찔린 기분이라는 걸. 쓰려고 했던 다른 말은 더 기억이 안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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