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5-13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은 많은 기억과 생각이 있다. 잊지 않으려고 그것들을 아주 짧은 문장으로 만드는 연습을 하곤 했다. 기나긴 이야기와 감상은 생명처럼 짧아지고 짧아져 결국 한 단어가 되었고 심장에 박혔다. 나의 심장에도 보석이 있고 그 빛은 푸르다. 내가 건지 심장의 그것을 알아챘듯 언니도 내 심장의 그것을 알아챘을 것이다. 보석이 된 내 약속은 영영 변치 않을 것이다. p.180.
어제 비가 와서 집 밖으로 안 나가고 하루 종일 뒹굴면서 넷플릭스와 함께 했다. 영화 <Ex Machina, 2015>와 다큐멘터리 <Dries>(마침 그의 생일이었다, 5월 12일) 그리고 날씨에 걸맞게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The Rain>의 시즌 1(8회)을 정주행. 비를 맞으면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죽고, 감염자와 접촉하면 전염되는 재앙으로 종말에 처한 세계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의 얘기인데 보는 내내 이 책이 생각났더랬다. 일단은 이유도 모르는 재앙에 뒤덮인 세상이라는 설정이 비슷하기도 하고, 거기다 주인공이 동생을 데리고 다니면서 어떻게든 살아남으려고 발버둥 치는 것도 그렇고. 어떤 물리적인 벽이 있고 아직 괜찮은 다른 세상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품는 것까지도. 디스토피아와 그런 극한 상황에서의 인간을 그리는 방식도 비슷하지만, 사실 이건 드라마가 훨씬 엉성하고 어설펐다. 그래도 초반에 꽤 몰입도가 높은 편이고 배우들이 귀엽고 몇몇 장면은 좋았지만. 드라마가 (그럴 리가 매우 없지만?) 소설을 참고했을지도 모른다고 혼자 생각해보기도 했다. 단숨에 읽고 눈물이 줄줄 흐르는 채로 책장을 덮으면서 최진영, 하고 작가의 이름을 외워뒀었다.
다 싫고, 아무 생각도 하고 싶지 않고, 그냥 사라졌으면 좋겠다, 그런 날이 있다. 이런 이야기들은 그런 마음일 때 유치하지만 스스로에게 내리는 일종의 처방이다. 물론 안 먹히는 날도 있지만, 그래도 일단은. '살아 있어라. 제발 살아만 있어라. p.18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