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투쟁 1

2018-07-27

by a little deer
매일 글을 쓰고, 담배를 피운다. 세상 밖으로 뛰쳐나가고 싶은 욕구를 가끔 느낀다. 이 욕구를 누그러뜨리기 위해 글을 쓴다. 글을 씀으로써 세상 밖으로 향하는 문을 열고, 글을 씀으로써 좌절한다. - 책 앞날개


저자인 칼 오베 크나우스고르의 소개. 이 책은 그의 세 번째 소설이며 ‘그의 자화상 같은’ 소설의 1권이다. 어제 <Ways of seeing>을 보다가 도드라졌던 ‘투쟁’이란 단어 때문에 생각이 나서 집어 들었다. 글은 시작부터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며 한참을 이어나간다. ‘우린 이미 삶이 지옥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다만 그것을 두 눈으로 직접 보려 하지 않을 뿐. 죽은 자들을 어떻게든 우리 눈앞에서 밀어내려는 것은 집단적 억압감을 표출하는 한 방법이다. p.12.’


낮에 점심을 먹으러 간 대구탕 집에서 보던 뉴스가 생각난다. 노회찬 의원의 죽음을 다루고 있었다. 화면 안과 밖에서 저마다 그에 대해 한 마디씩 하는 걸 보면서 나는 부지런히 밥을 먹었다.


얼굴에서 나이를 먹지 않는 것은 눈밖에 없다. 눈은 우리가 태어날 때나 죽을 때나 한결같이 빛을 머금고 있다. 세월이 흐름에 따라 눈동자 속의 핏줄은 더욱 굵어지고 선명해질 것이며 점막은 힘을 잃고 시들시들해지겠지만, 눈빛은 변하지 않는다. 나는 런던에 갈 때마다 특별한 그림 한 점을 꼭 찾아본다. 이상하게도 렘브란트가 그린 말기의 자화상을 볼 때마다 나는 감동한다. 렘브란트의 후기 작품은 일반적으로 매우 투박하며 순간적 영감을 표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도 이 그림들에선 빛과 신성함을 느낄 수 있다. 그보다 더한 예술성을 지닌 작품은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p.42-43.


렘브란트의 노년 자화상에 대한 글을 읽으며 ‘투쟁’이란 단어에 주목하고 이 책을 골랐는데 이 책에서 바로 그 그림을 이야기하고 있다니. 꽤 묘한 기분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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