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유하는 세상의 화가

2018-07-28

by a little deer
노리코가 자라면서 좀 나대는 성격이 되고 세쓰코가 그렇게 수줍고 나서기 싫어하는 성격을 갖게 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그러니 이제 삼십 대에 접어드는 세쓰코의 용모는 새로우면서 적지 않은 품위를 갖추기 시작한 것 같다. 그 애 엄마가 이 사실을 예언했던 일이 기억난다. 그녀는 종종 이렇게 말했다. "우리 세쓰코는 여름철의 꽃처럼 피어날 거야." 나는 그 말을 그저 아내가 스스로를 위로하기 위해 하는 말로 여겼지만, 지난 달 나는 아내의 말이 사실 얼마나 정확하게 들어맞았는지를 몇 차례나 깨달았다. p.25.


자매님네 에어컨이 고장 나 제부와 자매님이 낮에 잠깐 와 있다가 갔다. 제부가 일을 해야 한대서 아침을 먹으며 책을 보고 있다가 서둘러 청소기를 돌렸다. 그리고 책상에 자꾸만 쌓여가던 읽다 만 책들을 한번 정리했다. 고작 몇 페이지씩 읽고는 다음에, 시간이 날 때, 조금 느긋하게 읽자며 내려두곤 하는 것이 영 못마땅하다. 한번 재미난 책을 잡고 앉으면 밥 먹는 것도 불 켜는 것도 자는 것도 잊고 읽다가 마지막 장을 덮곤 했었는데. 그럴 수 있는 날도 이제 그리 많이 남은 것 같지는 않다. 아니지 무슨 소리야, 아직도 새털 아니 고양이 털 같이 많은 날들이 남았는데, 물이 반 담긴 컵 같은 혼잣말을 속으로 해본다.


낮에 잠깐 소나기가 내렸다. 그렇다고 딱히 시원해진 느낌은 아니다. 하루 종일 에어컨과 선풍기를 켜 두고 차가운 물에 손을 담가보지만, 후덥지근할 뿐. 더위를 많이 타는 나는 차라리 추위가 견디기 낫다. 쨍하게 시린 겨울이 그립다. 사랑하는 사람과 스키를 타러 가는 상상을 해본다. 나중에, 시간이 날 때, 느긋해지면, 그때는 스키를 타는 게 어려울까 싶고.


그러니까 나의 '여름철'은 언제 오나. 저 글을 읽다가 문득 그래 보았다. 이미 지나가 버렸나, 영영 안 오나, 아직도 멀었나. 이도 저도 아니면 이미 왔는데 나만 모르고 있나. 하여간 이제 그만 진짜 여름이 와주었으면. 꽃과 사슴과 눈과 순록이 공존할 나의 진짜 여름. 쓸데없는 생각을 해보는 여름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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