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8-05
실내를 모두 오픈형 수납으로 한 이유는 물건들을 고르는 감각을 항상 갈고닦기 위한 굳은 의지의 표현이다. p.104.
목요일 저녁에 근처로 이사 온 - 바로 대각선으로 건너편 건물에는 골계가 살고 있고, 이제 지하철 한 정거장 거리에 떨어져 살다가 걸어서 일분 거리 지하철역 앞 오피스텔로 - 베짱이네 집들이가 있었다. 급 결성된 모임의 이름은 '골뮤다 삼각지대'로, '삼각지'에는 이중의 의미가 담겼으며, 이름을 지은 최 이사는 매우 자랑스러워했다는 후문. 아무튼 새집이 예쁘게 정돈된 것을 보니 기분이 좋았더랬다. 작은 공간이지만 혼자 지내며 작업실을 겸해 쓰기에는 적당해 보였다. 넷이서 치킨을 시켜 나눠먹고 배도 꺼트릴 겸 동네 쇼핑몰에 갔다가 집들이 선물로 '빨래집게형 건조대'를 사주었다.
아주 예전부터 남의 집 구경하는 일이 재미있었다. 패션 매거진과 함께 <행복이 가득한 집>이나 <메종>도 챙겨보고 스크랩도 열심이었다. 대학생 때였나, 일본의 'Room and Room'이라는 사이트를 보며 'Room Project'라는 걸 혼자 기획해 보기도 했었다. 뉴질랜드에 있을 때도 올리 언니랑 자주 그쪽의 리빙 매거진을 보며 감탄하고 즐거워했었고. 요즘은 잡지를 잘 사지 않지만, 늘 관심이 가는 분야다 보니 아무래도 종종 관련 책을 사거나 SNS로 많이 보게 된다. '오늘의 집'이나 '집 꾸미기' 같은 곳이 대표적인 인스타그램 마케팅 성공사례라는 것도 최근에 알았다. 아깝다, 내가 먼저 했으면 잘했을 텐데(좋았을 텐데)!라고 3초 정도 생각해 봤지만, 역시나 돈 버는 사람은 따로 있지 싶다. 아무튼 나만 그런 게 아니라 역시 남의 집 구경하기는 재미있는 일이다. 내 경우에는 작은 집을 잘 고쳐 쓰거나, 자기만의 방식과 미감으로 꾸민, 자연스럽고 편안한 공간에 눈길이 간다. 물론 좋은 동네에다가 멋지고 웅장한 건축에 값비싼 재료와 가구로 마감한 집에도 눈길이 가지만, 결국 '집'이라는 건 패션과는 다른 거니까. 나에게 어울리지 않는 옷이나 내 스타일이 아닌 액세서리도 한두 번쯤 시도해 볼 수는 있지만, 독특한 콘셉트와 인테리어의 레스토랑이나 카페도 단골이 될 수는 있지만 말이다. 결국 잠을 자고 밥을 먹고 울고 웃고 숨어들 수 있는 공간은, 내가 있을 곳은, 내 '집'이니까. 그런데 내 '집'은 언제 생기는 걸까. 내 꿈은 그런 집에서 나의 가족과 함께 오손도손 살다가 죽는 건데. 소박한 꿈이지만, 이룰 수 없는 '꿈'인가 싶고. 어, 갑자기 슬퍼지려고 하니까 꿈 얘긴 집어치우고 책장을 넘기면서 눈요기나 하다가 자야겠다. 이 더위에 에어컨 빵빵 틀어놓고 코딱지 만한 월세방에서나마 편히 쉴 수 있었던 것에 감사해야지 뭐. 저녁에 영화 <The Revenant>를 봤더니 좀 서늘해진 것도 같다. 진짜다.
덧붙이기. 자려고 누워 집 Home을 생각하다 보니 어딘가로 누구에겐 가로 돌아가는 이미지가 떠오른다. 집을 떠나고 집으로 돌아가고. 그리고 매일 벽과 벽 사이를 넘나들며 왔다가 갔다가 하는 삶. 또 누군가에겐 세상 어디든 집일 수도 있고, 아무리 돌아다녀도 돌아갈 집은 없는 사람도 있겠지.
영화에서 갖은 고생을 하던 주인공은 결국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던 거 아닐까 하는 엉뚱한 생각이 든다. 그에게 집이란 사랑하는 아내와 아들이 살아 함께 하던 시절이겠지. 아주 크게 보면, 그러니까 인간과 구원(또는 삶과 죽음의 의미?)으로 대치하면 영 틀린 말도 아니겠다. 아이고 혼자 또 저까지 갔다. 아무튼 아들을 죽인 이에게 복수를 하려고 죽지 못하고 가고 또 가는 아빠. 그 참혹한 고독 속에서도 귓가에 계속 맴도는 목소리를 표현한 것이 인상적이었다. 시작도 끝도.
‘As long as you can still grab a breath, you fight. You breathe. Keep breath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