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월한 브랜딩 전문가는 무엇이 다를까? (2)
인생의 의미는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행위 그 자체에 있다.
- Viktor Frankl
브랜딩 전문가는 살아 움직이는 브랜드 가치를 만들어야 한다. 단순히 시장 트렌드에 맞는 훌륭한 컨셉과 매력적인 이미지, 커뮤니케이션 전략을 만드는 이들을 브랜딩 전문가라고 하기엔 브랜딩의 범주는 상당히 넓다. 신규 화장품 브랜드를 개발한다고 했을 때, 브랜딩 전문가에게는 시장 분석, 타겟 설정, 브랜드 컨셉 개발, 브랜드 핵심 성분 개발, 브랜드 이미지 구축, 디자인 및 마케팅 캠페인 등 다양한 요소를 총체적으로 설계하고 브랜드 퀄리티를 관리할 수 있는 능력이 요구된다.
그렇다면 이 모든 업무에 탁월한 기업은 과연 탁월한 성과를 보일까? 브랜딩이 활발한 뷰티 시장에서의 브랜드 실적을 보면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아모레퍼시픽, 신세계인터내셔널 등 기존 시장을 주도했던 대기업보다 외려 이름 없는 기업의 인디 브랜드가 글로벌 뷰티 시장에서 더 높은 가치를 형성하고 있다. 이런 현상을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까?
브랜딩이 어려운 것은 잘 만들어진 브랜드와 실제로 가치 있는 브랜드는 다르다는 점이다. 차별화된 컨셉과 매력적인 브랜드 이미지를 만드는 일은 분명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그보다 훨씬 어려운 일은 브랜드가 고객의 삶에서 살아 움직이도록 만드는 것이다. 이를 위해 요구되는 가장 중요한 능력은 인간 본성에 대한 이해다. 모든 브랜드는 근본적으로 사람을 위해, 사람에 의해 존재하기 때문이다. 브랜딩에 관여하는 전문가들이 아무리 완성도 높은 전략과 자산을 개발해도, 사람과 라이프스타일, 문화에 대한 이해가 빈약하다면 브랜드의 성공을 보장하기 어렵다. 반면 전문가의 관점에서는 평범한 브랜드가 대중에게 큰 사랑을 받는 현상도 이와 비슷한 맥락으로 볼 수 있다.
탁월한 전문가일수록 인간 본성에 대한 남다른 통찰력을 지니고 있다. 이는 업종과 직무를 막론하고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현상이다. 브랜딩 프로젝트를 진행하다 보면 마케팅이나 전략기획, 유통, 컨설팅, 디자인 등 각자의 분야에서 업계 최고라고 불리는 전문가들을 만나곤 한다. 그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능력은 직무상의 업무 능력을 넘어선 통찰력이었다. 그룹사의 부서를 이끄는 책임자이거나 기업을 이끄는 리더들은 필연적으로 기업의 미래 가치를 위한 방향성을 제시하고, 내부 구성원과 고객을 설득하는 업무를 맡게 된다. 그 과정에서 무엇이 문제의 본질이고 무엇이 현상인지 분별하는 힘이 체득된다. 탁월한 브랜딩 전문가들의 핵심 역량 역시 이와 같다. 브랜드 비즈니스의 본질과 인간의 숨은 욕망을 발견하는 통찰력이다. 통찰력이 없는 브랜딩은 알멩이 없는 껍질에 불과하다.
기업에서는 브랜드 고객을 설정하기 위해 타겟 페르소나를 개발하곤 한다. 기업 내부적으로 타겟조사를 진행하는 경우도 있지만, 사업의 규모가 크고 시장이 방대할수록 리서치 전문 기관에 의뢰하여 타겟 고객에 대한 인사이트를 발굴한다. 연령은 25세에서 35세, 성별은 여성이며, 고소득 전문직에 종사하고, 강남 오피스텔에 거주하며 필라테스 및 주기적인 피부과 진료, 건강한 식단으로 자기 관리에 열정적인 사람 등 시장 데이터를 기반으로 타겟 고객의 라이프스타일과 가치관을 구체화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방식은 임원 및 대표, 투자자를 설득하기 위한 정형화된 도구일 뿐, 정작 설득의 대상이 되는 이들에게는 작용하지 않을 확률이 높다. 이러한 브랜드 기획은 소비자 인터뷰와 시장 현황 분석으로 도출된 사후적 해석에 가깝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라이프스타일과 소비 트렌드는 시장을 리드하는 새로운 브랜드가 나타나면 변화한다. 결국 이런 방식은 본질적 차별성이 결여된 채 현상에 의존하는 브랜딩이다.
브랜드 경험이 풍부하고 문화 콘텐츠가 고도화된 사회일수록 구성원들의 브랜드 감도는 높아진다. 이는 과거 하나의 그룹으로 묶였던 고객들이 이제 더 이상 그룹이라고 볼 수 없을 만큼 다양한 개성과 취향으로 파편화된다는 뜻이다. 30대 초반의 고소득 전문직 여성이라는 간단 명료한 정의로 고객을 그룹화하는 과거의 방식은 점차 효력을 상실한다. 선택지가 너무 많아 브랜드를 선택하는 것이 어렵지만 선택지가 많아질수록 정작 정말 좋은 브랜드를 선택하고 싶은 갈망은 강해진다. 자신에게 특별한 의미를 줄 수 있는 감도 높은 브랜드 경험을 추구하게 되는 것이다. 문제는 다시 하나로 수렴한다. 분류조차 무의미할 정도로 넘쳐나는 브랜드의 홍수 가운데 파편화된 개인들을 불러 모으는 것은 결국 브랜드가 지닌 주제와 서사의 매력이다.
브랜딩이란 전적으로 사람에 의한, 사람을 위한 이야기이다. 그래서 브랜드는 사람의 모습과 닮아 있다. 인간을 동물과 구별된 존재로 만든 것은 의미와 기호적 가치에 기반한 문화의 발전으로 볼 수 있다. 문화적 존재인 인간에게 의미가 결여된다면 삶은 먹고, 자는 자연적 본능에 충실한 동물의 것과 다를 바 없을 것이다. 인간의 욕망은 결국 자신의 삶과 공명하는 특별한 의미를 향하게 되는 것이다. 이상적인 브랜드는 고유한 주제 의식을 통해 의미에 대한 갈증을 해소한다. 그리고 브랜드의 주제와 공명하는 이들을 하나로 결집하게 만든다. 그 자체로는 무의미한 인간의 삶에 새로운 재미와 감동, 의미를 제공하는 브랜드가 아니라면 누군가의 라이프스타일 가운데 머물며 꾸준히 소비되기 어렵다.
훌륭한 철학과 독특한 개성으로 삶에 의미를 선사하는 브랜드는 감각과 전략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감각적인 이미지와 트렌디한 취향을 내세운 브랜드에 철학적인 메시지가 없다면 오랜 시간 지속되기 어렵다. 반면 카테고리를 완벽히 분석한 브랜드 전략에 취향과 감도가 결여되면 고객의 삶에 울림을 줄 수 없다. 단지 이론상 완벽한 브랜드에 머물게 되는 것이다. 바닷가의 모래알처럼 무수한 내러티브 가운데 차별화된 브랜드 가치를 만드는 것은 통찰력이다. 탁월한 브랜딩 전문가들은 무엇이 이 시대에 필요한 메시지인지, 어떤 주제가 사람들의 삶을 가치있게 만드는지를 파악하고 브랜드 고유의 주제를 선정한다. 그리고 타겟 고객에게 설득력 있는 문장과 매력적인 이야기로 브랜딩을 전개한다. 타겟 고객의 마음을 움직이고, 그들의 삶에 유의미한 영향을 주기 위해서는 타겟 고객의 가치관, 라이프스타일, 문화적 배경에 대한 총체적 이해를 뿐 아니라, 브랜드 본질과 시대적 흐름을 관통하는 통찰력이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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