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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hin kwangsu Oct 28. 2018

젊음이여, 너는 늙음을 상기하라

이 세상에 본래부터 낡은 것은 없다.



"젊다, 참 젊어..."



연세 지긋한 어떤 노인의 혼잣말. 나는 문득 섬뜩한 느낌이 들었다. 언뜻 듣기에 그 말은 참 무심한 듯했지만 은연중에 그분의 진심이 전해졌던 것이다. 늙고 또 낡아 찢어져가는 가죽을 지닌 주머니가 젊고 튼튼한 가죽을 보고 하는 말이니 어쩐지 처량하게 들릴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그것은 순수한 부러움에 더 가까웠다. 젊음에 대한 부러움이라니. 나는 한 번도 젊음을 부러워할 만큼 가치 있는 것으로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내게 젊음이란 어렸을 때부터 불려 왔던 나의 이름이 그렇듯 익숙하고 또 당연한 것이었다. 하지만 한 늙은이의 나지막한 혼잣말에 나는 젊음이 얼마나 아름답고 값진 순간인가, 그리고 얼마나 찰나의 순간인가를 자각하게 된 것이다. 



본래부터 낡고 헤진 가죽 포대는 없다. 그 노인에게도 분명 싱그럽게 빛나던 젊은 시절이 있었을 테고, 활짝 핀 꽃처럼 존재 자체만으로도 아름답던 순간이 있었으리라. 다만 잃어버렸을 뿐이다. 모든 꽃이 그렇듯 젊음 또한 피었다가 곧 저물었던 것이다. 늙음이 마냥 두렵거나 불행한 대상은 아니겠으나 내가 늘 지녀온 무언가를 상실한다는 것이 그렇게 유쾌한 경험은 아닐 것이다. 더구나 완벽하게 내 것으로 여겼던 소유물을 상실한다는 것은 더욱 그럴 것이다. 내가 섬뜩함을 느꼈던 부분도 바로 그쯤이다. 나는 지금 이 순간에도 젊음의 상실을 경험하고 있지만 나의 젊음을 영원할 것처럼 착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지닌 젊음의 소중함은 알지 못한 채 늘 내가 갖지 못한 것들만을 쫓으며 살아왔었다. 그러고 보면 사람은 잃고 나서야 그 소중함을 깨닫게 된다는 말이 과연 옳다 싶었다. 어쩌면 그 노인처럼 언젠가 내가 잃어버린 젊음을 부러워하게 될 날이 올지도 모른다. 내가 당연하게 여겼던 그 젊음을.



굳이 내가 얻으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값없이 주어진 것이기에 그 값어치를 모르고 있었으나 그 시기가 지나고 나면 어떤 값을 지불해도 결코 얻을 수 없는 것. 불행하게도 그게 바로 젊음이다. 그래서 버나드 쇼는 젊음을 젊은이들에게 주기에는 너무 아깝다고 했나 싶다.





어떤 이들은 청춘을 가능성으로 평가한다. 무엇이든 될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이 있기에 값진 시기라고. 하지만 과연 그러한가. 가능성은 인생의 어느 순간에나 존재한다. 새로운 도전이나 성취는 젊고 늙음과는 상관없이 언제든 가능한 것이다. 그러나 청춘은 한 철 꽃과 같다. 흐드러지게 핀 꽃이 곧 시들어 갈 운명을 지녔듯 젊음 또한 그렇게 스러질 것이다. 때문에 젊음을 단지 미래를 위한 가능성으로 보는 것은 너무 형편없는 평가다. 일생일대의 꿈이라든가 도전과 성취와 같은 가치들을 추구하고 그런 가능성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해야만 훌륭한 젊음이라고 할 수 있을까. 결코 그렇지 않다. 젊음은 훗날 무엇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 때문에 아름다운 것이 아니다. 무엇이 되지 않아도, 아직 이렇다 할 재력도 성취도 없어도, 이미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빛나는 것이다. 



청춘이란 인생의 어느 시기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상태에 불과하다고들 하지만 마음의 상태가 어떻든 간에 청춘은 인생의 한 시기이며 잠시 머물다 지나가는 한 번의 순간이다. 청춘이 값진 이유는 바로 그 때문이다. 오직 단 한순간에 불과하고, 그 시기가 지나면 사라져 버리기에. 인생에서 반짝이는 성취를 이룬 늙은이가 보잘것없는 젊은이를 부러워하고 젊은 시절의 자취를 그리워하는 까닭도 그와 같다. 그들은 자신이 젊은 시절에 그토록 반짝이고 대단해 보이던 것들이 젊음에 비하면 하등 보잘것없다고 말한다. 젊음의 빈자리에서 오는 상실감은 무엇으로도 채울 수 없는 것이다. 값비싼 시술과 약물도, 두꺼운 명품 옷과 안락한 소파도 젊음의 가치에 비하면 겨우 얼마간의 위안거리에 불과하다. 젊음을 상실한 이들은 닳고 닳아 연약해진 가죽 포대 속에다 무엇이든 채워 넣으려고 한다. 찢어진 가죽 사이로 자신의 생명이 줄줄 흘러나오는 줄도 모른 채. 그러나 젊음은 무엇으로도 다시 얻을 수 없다. 





젊음이란 비록 들어있는 것은 없으나 그 자체만으로 빛이 나는 아름다운 가죽 가방인 셈이다. 텅 빈 가방 속에 무엇을 담을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그럼에도 청춘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답다. 가방 안에 담지 못한 무엇들을 부러워할 수도 있겠지만, 아직 결정되지 않은 미래를 걱정할 수도 있겠지만, 보다 안정적인 미래를 확보하기 위해 애쓰며 하루하루를 불안한 마음으로 소진할 수도 있겠지만, 때로는 인생에서 다시는 오지 않을 청춘의 순간들을 찬찬히 음미하며 텅 빈 공간을 싱그러운 노래로 가득 채워보는 것도 좋겠다. 무엇으로도 살 수 없는, 오로지 지금 이때에 잠시 피었다가 시들어갈, 그러나 지금 이 순간에도 시시각각으로 멀어져 가는 젊은 날들에 조금 더 애틋할 필요가 있다. 모든 것이 그렇지만 젊음이야말로 소중하게 다루었을 때 더욱 빛나는 까닭에. 우리는 활짝 핀 꽃의 아름다움을, 청춘의 나날을 만끽해야만 한다. 그것이야말로 청춘에게 주어진 유일한 과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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