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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올어바웃 Jul 29. 2022

맛있는 정원을 만들고 있어요.

경기도 양평 | 김현숙(봉금의 뜰)

탐방은 매주, 평범한 사람들의 특별한 이야기를 전합니다

 tambang.kr / @tambang.kr



Interview | 봉금의뜰 김현숙님과의 인터뷰


요즘 밭뷰, 논뷰 카페가 인기라면서요? 생산지로만 여겨졌던 땅들이 이제 매력적인 풍경으로 다가오는 것 같아요. 그러고 보면, 해외에서는 텃밭을 키친가든(kitchen garden)이라고 부르기도 하잖아요. 먹거리 식물들도 충분히 아름다운 공간이 될 수 있는 것이죠. 그런 의미에서 오늘의 로컬지향자, 김현숙님은 농부이자 정원가예요. 현숙님의 밭에 가자마자 가장 처음 한 말은 “너무 예뻐요.” 였거든요. 우리가 생각하는 일반적인 밭과 전혀 다른 모습이었어요. 그도 그럴게 이곳, 봉금의 뜰에서는 300종의 작물이 자라난다고 합니다.



아. 농촌에 가고 싶다. 가야겠다.


여기 온 지 8년째예요. 농부를 해야겠다고 내려왔지만, 농사로만 먹고살 수 있게 된 거는 한 5년 정도 되었어요. 농사로만 생활을 유지하는 것은 어렵거든요. 처음에는 아무리 도와줘도 안 되고, 기술도 없으니까요. 처음에 너무 막막했죠.


왕초보 농부가 이렇게 큰 밭에 농사를 지을 수 있을 자신이 없었던 거죠. 그때는 아무리 옆에서 농사를 가르쳐줘도 어렵더라고요. 감당이 안 돼서 밭을 토막 내서 ‘이만큼 너, 저만큼 너 하렴.’ 이렇게 사람들을 초대해서 같이 했죠. 그렇게 한 3년은 정말 헤맸어요. 믿어지지 않으시겠지만, 너무 힘들어서 뼈만 남을 정도였다니까요.(웃음)


그럼에도, 농부가 된 이유는 단순해요. 제가 보았던 농부들처럼 살고 싶었어요. 가톨릭 농민회에서 자원 활동을 했어요. 외국인 노동자와 소통을 위한 통역사가 필요한데, 전문 통역사는 너무 비싸니, 제게 도와달라고 부탁을 한 거죠. 당시에 제가 안산지역에서 이주 노동자 관련 업무를 하고 있었거든요. 그렇게 농민들을 자꾸 만나니까, 농민들과 친해졌죠. 우선, 그분들이 너무 좋았고 자꾸 만나니까 농사가 좋게 느껴지더라고요. 일단 농민분들은 순수해요. 단순하고 계산하지 않는다는 느낌이랄까요. 땅에서 땀을 흘리며, 자연이 주는 것으로 살아가서 그런 것 같아요. 물론, 이주 노동자들도 순수하지만, 당시 저는 관련 단체와 관련 법, 이런 것들로 참 지쳤었어요. 번아웃이 되었을 때, 생각했어요. “아, 농촌에 가고 싶다. 가야겠다.”


현숙님의 맛있는 정원, 봉금의 뜰 Ⓒ탐방



기계 없이 해보자. 어떻게든지 해보자.


지금은 손으로 농사를 짓지만,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녜요. 주변 분들이 알려주시는 대로, 도움 주시는 대로 시작했죠. 농사로 먹고살기 위해서는 대규모 작물을 생산해야 하더라고요. 그래야 학교 급식이나 영농조합, 생협 이런 곳으로 판매할 수 있는 거죠. 정착에 도움을 주셨던 분들이 이 시스템으로 농사를 지으셨었고, 그분들의 방식으로 저를 도왔죠. 모두 자신들의 농기계를 갖고 있었고 돌아가면서 제 밭을 갈아주기도 했고요. 우왕~하고 밭을 가는데, 굉장히 멋있어요.(웃음)


전 무엇을 심어야 할지, 어떻게 팔아야 할지 생각도 안 하고 우선, 하라는 대로 했죠. 감자를 주셔서, 감자를 제일 많이 심었어요. 그 감자를 수확한 날, 국수 파티를 했어요. 첫 수확이니 이 사람, 저 사람 다 불러 모았죠. 그때 오신 분들이 감자보다 사람이 많다고 했을 정도라니까요.


그때 이 밭에 검은색 비닐이 쭉 덮여있었거든요. 감자를 캐기 위해서는 비닐을 걷어야 하죠. 비닐을 쭉 걷어내는데, 너무 이상한 거예요. 비닐을 토해내고 있는 느낌이 들었어요. 비닐이 걷어지면서 시커멓게 먼지가 쏟아져요. 검정 비닐은 예쁘지도 않고 다 찢어져서 나오잖아요. 그리고 재활용이 되는지도 모르겠고요. 다 걷어내니 산처럼 쌓이더군요. 트럭 하나에 비닐이 가득 싣고 가니, 바로 트랙터가 들어가서 또 두두두두두- 밭을 가는 거예요. 이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번쩍 들더라고요.


지금도 호미질을 하다 보면, 가끔씩 지렁이가 잘리거든요. 그런데, 그렇게 큰 트랙터가 지나가면 어떻겠어요. ‘기계 없이 해보자. 어떻게든지 해보겠다’라는 생각을 했죠. 그다음에 전부 다 중단하지는 못했고 차츰 줄였어요. ‘어떤 작물은 기계 없이도 할 수 있겠다.’ 이런 자신이 들면 시도해 보았어요. 제일 먼저는 비닐을 사용하지 않았죠. 비닐을 대신할 수 있는 것을 찾다가 신문지를 쓰기 시작했어요. 신문지를 작물에 따라 넓이를 조절해서 밭에 깔았죠. 비닐보다는 효과적이지 않지만, 그 기능을 하더라고요. 그렇게 차츰차츰 줄이다가 기계를 다 안 쓰게 된 건 이제 5년 정도 됐어요.


비닐을 대신할 수 있는 것을 찾다가 신문지를 쓰기 시작했어요. Ⓒ탐방


키스 더 그라운드(kiss the ground)라는 다큐멘터리를 봤어요. 요즘에 탄소 중립이 자주 들리잖아요. 탄소가 땅속에 고정되어있어야 하는데, 얘네가 자꾸 공중으로 나와서 문제라고 하더군요. 그리고 그것의 가장 큰 원인이 농사래요. 기계로 땅을 깊이 가는 것이 땅속에 있는 탄소를 다 바깥으로 드러내는 거거든요. 실제로 보면, 그런 느낌이 들긴 해요. 물론 미국의 경우긴 하지만, 대규모로 농사를 짓다 보니 엄청나게 큰 트랙터가 밭을 갈아요. 농작물의 생산성을 높일 수 있게 밭을 좋게 만들려면 한 1미터 정도는 뒤집어야 한대요.


여기 밭도 좋은 작물을 키우기 위해서는 갈고 새로운 흙으로 채워야 한다고 했어요. 농업기술센터에 흙을 가져다주면 검사를 해주시거든요. 그때 말씀하신 게 흙을 새로 채우지 않고, 지금의 흙을 좋게 만들려면 한 10년을 기다려야 한다고 하더라고요. 그냥 여기 흙에 맞는 작물을 심겠다 했죠. ‘다 심어보고 여기서는 되는구나. 아, 여기는 안 되는구나.’ 땅에 따라 작물이 잘 자라나는 게 다 달라요. 그렇게 그 밭에 맞는 작물을 알게 된 거죠. 그냥 다 경험을 하면서 작물마다의 특성을 알게 된 것 같아요.



사람들은 마늘밭에 뭐가 나면 그걸 뽑잖아요. 저는 그냥 두거든요.


키우는 작물이 한 300가지 정도는 돼요. 큰 분류, 예를 들어 ‘고추’ 이런 식으로 따지면 한 100가지 정도 되지만, 고추에도 여러 가지 종류가 있거든요. 미인고추라고 할머니부터 아기들까지 다 좋아하는 정말 맛있는 고추가 있어요. 또, 할라피뇨, 페페론치노, 청양고추, 꽈리고추, 토종 고추 종류도 많죠.


셰프님들이랑 친해지면서 키우는 농작물의 종류가 더 다양해졌어요. 탐방을 소개해준 신소영 셰프도 그렇고. 여기 가까이에는 엄현정 셰프님이라고 ‘프란로칼’이라는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분이 가장 오래된 것 같아요. 엄셰프님 팀이 다 와서 작물도 직접 가져가시고 덕분에 전혀 모르던 채소들도 알게 되었죠. 셰프님의 유럽 지인을 통해서 새로운 씨앗을 받기도 했어요. 씨앗을 가져오는 건 어렵거든요. 직접 신고도 하시고 부탁도 해서 씨앗을 많이 가져오세요. 다 성공하지는 못했는데, 처음 보는 식물이 이 땅에 뿌리를 내리고 성장하는 것을 보면 신기하더라고요. 보면서, 세상의 모든 채소를 길러보고 싶다는 생각도 하고요.(웃음)


무엇보다 제가 지루한 걸 좀 싫어하는 편이에요. 한 가지 작물만 심으면 너무 심심한 거죠. 농사를 짓다 보면 어떤 날은 종일 아무도 안 만날 때도 있어요. 너무 힘들죠. 그래서 작물이 달라야죠. 작물마다 색도 다르고. 풀과 꽃과 저의 작물과 있어야 제가 지루하지 않게 일을 할 수가 있어요. 사람들은 마늘밭에 뭐가 나면 그걸 뽑잖아요. 저는 그냥 둬요. 그래야 재미가 있는 거예요. 후다닥 기계로 농사를 지으면 절대로 나올 수 없는 그림이죠.


마늘밭에 뭐가 나면 그걸 뽑잖아요. 저는 그냥 둬요. Ⓒ탐방



세상에 크게 누가 되지 않게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해요.


셰프님들과 친해지면서 농사로 먹고살 수 있게 됐어요. 행운이죠. 제가 참 신기했던 것은 요리사들은 원래 배운 대로, 공부한 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작물을 보고 요리를 생각한대요. 가끔은 요즘 작물 중에 소비가 잘 안 되는 것이 뭐냐고 묻기도 해요. 그러면 그게 요리가 돼서 나오는 거죠. 그러면 그 요리를 맛본 사람들이 (농부)시장에서 또 그 재료를 찾고. 정말 셰프님들과의 만남은 행운인 거죠. 그렇게 저는 농사만 잘하면 되게 된 거죠. 처음에는 이렇게 규모가 큰데 작물을 다 팔 수가 없으니까 저도 별거 다 했어요. 음식 잘하는 분한테 레시피 받아서 페스토도 만들고 장아찌, 피클을 담아서 팔아보기도 했는데 맛이 일정하지 않은 거예요. 저는 요리사가 아니니까요.(웃음)


엄셰프님은 직접 찾아오신 경우였고 마르쉐@를 통해서도 요리사들과 친해졌어요. 각자 제 밭에 왔다가 요리사들끼리 서로 알게 되기도 하고요. 요리사들은 요리사들의 언어가 있어서, 결국 저는 있는지 없는지 모르고 투명 인간 된다니까요.(웃음) 요리사분들이 오시면 직접 따서 가도록 해요. 필요한 사이즈 이런 건 본인이 아니까 자기 플레이트에 어떤 거 쓸지를 알잖아요. 제가 무슨 재주로 그걸 알겠어요. 그래서 마음대로 가져가시라고 하면 필요한 만큼 가져가시고 꽃도 가져가서 장식하고. 맨날 뭘 가져가면 요리를 한 다음에 ‘오늘의 예쁨’ 이런 사진을 보내주세요. 신소영 셰프님도 계속 인스타그램 태그를 걸고 막 그러거든요. 근데 막상 저는 이 요리에 도대체 뭐가 들어갔다는 건지도 모르겠고.(웃음) 재밌어요. 또, 프란로칼(레스토랑)은 엄마하고 저를 늘 초대해 주세요. 거기는 메뉴가 계절마다 바뀌어요. 제가 키운 작물이 요술처럼 변해있더라고요. 그 모든 것을 다 맛보게 해주세요.


그분들이 알아주는 게 힘이 돼요. 격려도 되고 응원도 되고. ‘계속해야겠다.’ 이런 생각이 드는 거예요. 지지를 받는 거죠. 그 지지로, 이렇게 하는 게 맞나 보다라는 생각으로 농사를 짓는 거죠. 나이를 먹을수록 대단한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아요. 다만, 나쁘지 않게. 세상을 좋게 만들지 못하더라도 나쁘게 하지는 않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고. 그게 농사를 이어가는 힘이 돼요.


알아주는 게 힘이 돼요. Ⓒ탐방


또, 80대 이상의 할머니들이 저의 가장 든든한 후견이시죠. 그분들은 농사 전문가예요. 설명할 수 없는데, 비가 전혀 올 하늘이 아닌데도 할머니들이 비가 온다고 하면 정말 비가 와요. 서리 내리니까 지금 뭐 하라고 하면 정말 그때 하면 딱 맞는 거예요. 본능적인 어떤 감각이 있는지, 60년 정도 농사를 지으시니까 그게 되나 봐요. 저는 그냥 따라가서 할머니들 심을 때 심고 걷을 때 걷으면 돼요. 제가 할머니들과 친하거든요. 겨울이면 농사도 쉬니까 어르신들이 모여서 함께 놀곤 하세요. 한 번은 제가 할머니들 모아놓고 요가를 했죠. 요가반인지 웃음 치료반인지 잘 모르게 끝났지만, 서로 깔깔대고 너무 재밌었어요. 코로나 때문에 막혀서 이제 안 가는데 겨울에 해야죠.


할머니들이 젊은이들을 보면 너무 좋아하세요. ‘유기농 아가씨’라고 부르면서요. 무조건 다 그렇게 불러요. 심지어 요리사들도 저랑 같이 오면 ‘요리 아가씨’들이다. 그룹은 유기농 아가씨.(웃음) 저는 앞으로 이렇게 어른들을 따라가면서 살려고요.


농사를 짓기 시작하면서 만난 인연들이 참 많아요. 저에게 농사는 혼자 하는 일이면서도 함께 하는 일이죠. 화요일이면, 유기농 아가씨들이 와요. 주로 요리사분들이죠. 이번에 감자 캘 때 놀러 와요. 와서 일도 좀 하고요.(웃음)



현숙님과 함께 밭, 이곳저곳을 걸었어요. 향긋한 식물과 흙 향도 맡고, 바로 뜯어 맛을 보기도 했죠. 정말 맛있는 정원이었습니다. 사실, 현숙님을 만나러 갈 때만 하더라도 기계를 쓰지 않는 자연농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줄 알았죠. 하지만 현숙님은 한사코 자연농이나 유기농에 대한 지식이나 깊은 철학을 갖고 농사를 짓는 것이 아니라고 말해요. 단지, 내가 경험했을 때 불편했던 일을 하지 말자는 생각일 뿐이라고요. 그리고 그런 현숙님의 결정을 지지하고 응원해주는 많은 인연이 더 열심히 농사를 짓게 만든다고 합니다. 오늘 현숙님과 만나면서 탐방은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나는 누군가에게 좋은 결정을 해주는 지지와 응원을 주었을까?


로컬에서의 삶, 현숙님과의 대화에서 궁금하거나 번뜩이는 생각이 떠올랐다면 댓글과 리뷰로 나누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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