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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은 생각하지 마!

그냥 물고기를 줘

by 사야

그 해에는 ‘빈곤 다시 생각하기(Rethinking Poverty)‘라는 과목이 필수였다. 오랫동안 빈곤을 생각해 온 나로서는 굳이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까 싶었다. 하지만 인류학 교수님이 이끄는 12강의 수업을 마치고, 앞으로 개발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지 방향을 정리할 수 있었다. 교훈은 한 문장으로 거칠게 요약할 수 있었다.


비판적 개발과 대안적 발전을 꿈꾼다면 가난한 사람들이 “실제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봐라.


미국의 인류학자 제임스 퍼거슨은 <남자에게 물고기를 줘라(Give a Man a Fish, 번역본 분배정치의 시대)>라는 책에서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가 개발에 녹아든 결과, 무분별한 구조조정과 사유화로 박탈과 불평등이 가속화되었다고 보았다. 더 흥미롭게는 가난한 사람들이 이러한 상황에 무력하게 손 놓고 앉아 있기보다 ‘생존주의적 임기응변’으로 대처하는 모습에 주목했다. 수업 중 읽기 자료에서 제시된 여러 삶의 사례를 보면서 그 생존 전략을 세 가지 패턴으로 추려볼 수 있었다.



1. 공유지 접근을 통한 “정당한 몫” 추구 (Seeking a “rightful share” through access to the commons)


진짜 부정을 저지른 자들은 누구인가?

북미 애팔래치아 삼림은 전통적으로 지역 주민들이 필요할 때 언제나 이용할 수 있는 공유지였다(Farley, 2022). 현지에서 인삼 수확으로 생계를 유지하던 마빈은 인삼 수확이 불법화되고 감독관이 감시하는 동안에도 여전히 위험을 감수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 벌채 산업에서 고용이 줄었기 때문뿐만 아니라, 한 때 저지른 중범죄 전과와 마약 복용 전과로 공식 경제에 참여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환경 보호론자들은 마빈과 같은 인삼 수확업자들을 마약 구입을 위해 즉각 현금을 원하는 불법 채굴업자로 낙인찍었다. 그러면서 인삼 수확량 이 줄어든 주된 원인인 목재 채벌, 석탄 채굴, 도로 건설 및 30년 동안 국제적으로 대폭 증가한 인삼 수요와 같은 경제 활동의 영향은 과소 평가했다. 글로벌 자본주의의 변두리에서 인삼은 인종, 성별, 범죄 신분, 사회경제적 지위에 따른 차별 없는 생계수단을 제공했다. 또 다른 인삼 수확자인 매기는 역사적으로 그 산이 공유지였으므로 ‘신이 거기에 식물을 두었다’며 자신이 소량으로 수확하는 건 불법이 아니라고 믿었다.


도시에서도 계속되는 강탈, 더해진 낙인

새로운 희망을 좇아 도시로 떠난 사람들은 지방에 남아 있는 사람보다 더 나은 삶을 영위할까? 가정은 보기 좋게 빗나간다. 이주자들은 고향에서 시작된 개발 프로그램으로 땅과 생계수단을 빼앗겨 도시에 이주하도록 강요받았다 (Davis, 2006). 특히 1950~60년대 미국의 도시 재개발 프로젝트는 흑인 이민자들을 당시 미개발 지역으로 이주시키는 구실을 제공했다. 흑인 이민자들은 새로 정착한 곳에서 ‘게으르고 느리다’는 낙인과 싸워야 했고, 계층 구조의 맨 아래에만 흑인 미국인 자리를 허용하는 직업 상한선에 갇혀야 했다. 특히 시카고의 흑인 여성들은 가장 비천한 직장으로 여겨지는 육류 포장업에서도 소와 돼지의 생식기를 다루는 파트를 도맡았다. 도시와 농촌 모두 사적이거나 공적인 것과는 구별되는 ‘커먼즈(공유재)‘가 가난한 사람들의 삶을 유지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상상을 해볼 수 있다.



2. 관계적 자율, 도주, 작은 자유를 통한 “분리의 정치”추구 (Pursuing “the politics of detachment” through relational autonomy, runaway, and small freedom)


리우데자네이루의 폐기물 수집가

폐기물 수집가인 로즈는 리우데자네이루의 쓰레기장에서 떠나고 싶었다. 얼마 후 정규직 청소부라는 ‘진짜 일자리’를 얻은 그녀는 기뻐했다. 하지만 이른 오후 모든 일을 마쳤음에도 매일 정해진 시간을 지키고 앉아 있어야 한다는 것을 곧 깨닫게 되었다. 결국 더 안정적일 수 있었던 직장을 그만두고 다시 쓰레기장으로 돌아갔는데, 그녀의 사랑스러운 세 자녀와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었기 때문이다. 다양한 형태의 비정규직 고용은 1970년대 초 신자유주의 경제와 연관되어 있다. 무역자유화, 공기업 민영화, 사회지출 삭감 등 완전고용에 대한 기대를 무너뜨렸다. 그녀는 경제적 자유로서의 근로 조건을 선택하기보다 일상의 리듬, 사회적 유대, 다양한 삶의 프로젝트를 추구할 수 있는 능력을 선택하면서 “관계적 자율성”을 유지했다. 로즈의 자율성은 자아에 대한 투자가 아니라 돌봄의 관계에 대한 몰입에서 나왔다. 따라서 로즈와 그녀의 가족에게 쓰레기장은 ‘순수한 고통이자 안정적인 피난처’였고, 고정된 임금 고용 조건과 물질적 생산성을 보장받기보다 유연한 상태로 남아있는 “분리의 정치(politics of detachment)”를 실현하는 장소였다 (Millar, 2018).


대만으로 간 베트남 이주노동자

신자유주의에서 ‘이주’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자발적이고 개인적인 의사결정의 자유를 주는 듯 하지만, 사실 그들은 자신의 노동력을 파는 선택지 밖에 없다(Green, 2011). 신자유주의 관점에서 보면 아시아 이주 산업과 개방 시장은 경제 발전을 위한 최적의 메커니즘이다(Hoang, 2017). 응구옌은 이유 없이 쉽게 해고당하고 가족과 연락하지 못하도록 통제받는 것 이외에도 여느 베트남 여성 가정부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경험을 했다. 이주 후 처음 8개월 동안 외출 금지를 당하고 매일 밤 고용주가 불러 전신 마사지를 요구하면 그대로 들어주어야 했다. 일상적인 비하를 넘어 반려견이 먹다 남은 음식을 먹도록 강요했을 때, 그녀는 결국 뒤돌아보지 않고 떠나기로 결심했다. 신자유주의적 경제질서는 이주노동자들에게 국가와 시장의 노동력 이동을 규제하고 “도망자(runaway)”라는 꼬리표를 붙여 불법적인 지위를 부여했다. 이민자들의 내면화된 규율을 강화함으로써 이러한 종속이 정상화되었다. 하지만 도망가는 결정은 노동자의 능동적 주체성과 “자신이 되는 기술(technologies of the self)”에 대한 감각을 반영한다(Foucault, 1990, Hoang, 2017).


방콕 쇼핑몰의 청소부

글로벌 비즈니스 야망을 가진 태국 정부의 탁시노믹스 신자유주의 정치는 방콕에 집중적인 경제 부양책을 썼다. 젊은 여성들은 새로운 기회를 찾기 위해 방콕 쇼핑몰에서 청소부가 되었다. 쇼핑몰 안은 시간, 공간, 신체가 제한되는 곳이었다. 노동자들은 특정 장소에 배치되었고, 관리자의 감시 아래 특정 시간까지 이동이 허용되지 않았다. 그들에게 문명과 진보라는 개념은 획일성, 온순함, 위계질서, 청결함으로 대체되었다. 그러나 웨이는 침묵을 깨고 잡담을 즐겼고 굴랍은 주요 쇼핑 지역과 감독관의 눈을 피해 지금의 남편을 만났다. 또한 청소부들은 쉬는 시간에 빈민가 공동체에 가서 음식을 나눠주었다. 그들은 ‘작은 자유’와 ‘일상의 저항’을 통해 새로운 관계를 구축하고 사회성의 가치를 발견하며 살아갔다(Brody, 2006).


이처럼 형식적이고 안정적인 고용을 통해 생산성의 가치가 지배적인 도시에서, 다른 종류의 안정성을 추구하고 덜 생산적인 것을 선택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의 생존 전략은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와 궤를 같이하는 세계화와 근대화에 종속되기보다는, 분리된 공간을 창출하는 자율성과 유연성을 보여준다.



3. 커뮤니티와 네트워크를 통한 사회보호 메커니즘 참여 (Engaging in social protection mechanisms through community and networks)


그들은 분배 노동 하는 중

1980년대 세네갈은 국제통화기금과 세계은행의 지시에 따라 농업협동조합을 폐지했다. 농부들이 정부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주요 채널이 해체된 것인데, 이런 상황에서 월로프 지역의 한 여성은 장마철에 음식을 찾기 위해 자신이 태어난 마을까지 22km를 걸어갔다. 며칠 후 그녀는 수수 자루 50킬로를 친오빠가 모는 마차에 싣고 돌아왔다. 그녀는 남편에게 싼 가격으로 수수를 사달라 요구했지만 그는 회피했다. 그녀는 나머지 수수를 다른 마을 여성들에게 팔기로 결정했다. 그녀는 수수를 판 돈으로 다른 생필품과 딸의 머리핀울 살 수 있었다. 월로프의 여성은 가부장적 통제의 특정 측면에 도전하면서도 가족 제도를 옹호했다. 비슷하게 도시에 살고 있는 아들을 찾아가 가족의 고충을 전하고 약간의 용돈을 받는 노인도 친척 관계망을 통해 책임을 요구하는 ‘분배 노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셈이다 (Ferguson, 2015).

조건 없는 환대가 이루어지는 곳

문자 그대로 ‘봉사’를 의미하는 키드마(Khidmas)는 카이로에서 무료 식사와 휴식 공간을 제공하는 커뮤니티다. 모든 방문자는 키드마에서 어떠한 조건이나 차별 없이 그날의 긴급한 필요를 충족시킬 수 있었다. 키드마에는 생계와 생산성의 논리가 없었고, 음식을 나눈다는 건 사회적 관계와 영적 공동체에 얽매이는 걸 의미했다. 이는 개인의 책임, 생산성 및 경제 성장을 강조하며 가난한 사람들에게 종이 서류를 내밀면서 수많은 질문에 답하도록 요구하는 자선 단체나 개발 기관과 대조되었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연대 요청하기

친척과 가까운 공동체에 책임을 요구하는 것 말고도 남아공 모니크의 이야기(Chance, 2018)는 더 많은 청중에게 연대를 요청한다. 정부가 2010년 월드컵을 준비하고 밀레니엄 개발 목표를 국가 정책과 법률에 반영하는 동안, 나무와 고철로 겨우 세운 그녀의 판잣집은 철거되고 있었다. 임시 수용소로 이사한 후에는 석면으로 만들어진 구조물 때문에 그녀의 딸이 기관지염과 피부병을 앓게 되었다. 그녀는 의료비를 감당하려고 새로운 일을 시작했다. 다른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마찬가지로 그날도 임금을 받지 못했을 때, 그녀는 결국 이웃들과 함께 공동 주택의 빈집에 들어갔다. 처음에는 경찰에게 구타를 당하기도 했다. 그들의 점거 소식이 국제 뉴스로 방송되기까지 이르렀다. 하지만 모니크의 싸움은 쉽게 끝나지 않았다. 이는 “성공적인 분배 주장을 할 수 있는 기회는 쉽게 오지 않으며, 그러한 분배 흐름을 가능하게 하는 일종의 사회적 관계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장기적이고 신중한 작업이 필요하다”는 퍼거슨의 주장과 일치한다.


퍼거슨은 책 서문에서 밝히듯 해외 컨설턴트를 위해 개발자금을 쓰는 대신, 해당 그룹 (target population)에 돈이 직접 건네진다면 더 나은 결과를 만들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물고기를 주는 대신 물고기 잡는 법을 알려주자’는 오랜 격언을 산악지대나 사막에 가서 어설프게 주창하지 말고, 그냥 물고기를 믿고 주는 게 가난한 사람들에게 자유를 줄 수 있다고 역설했다. 식민주의적 계몽과 선진형 기술 전수의 형태로 수많은 개발 원조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는 지금도 여전히 기울일만한 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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