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사야 Jan 09. 2023

메콩 오디세이

우리가 사랑한 메콩리버, 그 하류에서

내가 잠시 살았던 메콩강변은 매일 사진으로 남기지 않으면 예의가 아닐 지경의 황홀한 풍경을 선물해주었다. 강물 너머 노을은 주홍빛이었다가, 분홍빛이었다가, 이내 보랏빛으로 주변 공기를 물들이며 넘어갔다. 보름달이 뜨는 맑은 밤이면 일렁이는 검은 수면은 내려오는 빛을 충만히 담아냈다. 그렇게 달이 멈춰있는 강을 홀린 듯이 오래 바라보곤 했다. 매일 새벽엔 허벅지만 한 민물고기들이 작은 공터에 부지런히 건져 올려졌다. 7시 출근길이면 이름 없는 장터는 이미 비린내를 정리 중이었다. 주변 식당에서 뽀얗게 우려된 국물에 탱글탱글한 살이 담긴 생선국을 많이도 먹었더랬다.    


강변은 잠시 머무는 여행객뿐만 아니라 그곳에 오래 살아온 주민들에게도 사랑받는 안식처였다. 지역 축제가 있을 때면 길거리 음식과 맥주가 흥을 돋우고 태국과 베트남 국경을 넘어온 물건들이 시선을 빼앗았다. 줄지어 선 천막이 활기를 더하는 특별한 때가 아니어도 강 그 자체는 하루 시작과 끝의 위안이었다. 일을 마치고 강둑에 앉아 물줄기를 응시하며 자신에게서도 무언가 흘러가기를 기다리는 것처럼 보이는 청년이 있었고, 아빠 손 붙잡고 사탕수수 음료수와 바삭하게 구워낸 놈텅운을 사 먹으러 나온 아이도 있었다. 벤치에 앉아 다정한 말을 나누는 젊은 연인과, 빠른 리듬에 진심을 다해 살을 털어내는 체조 그룹이 있었다. 오토바이는 늘 사람들 옆에서 같이 쉬고 있었다.



강 위에는 우연히 만들어진 것 같은 작은 섬이 있었다. 삐걱거리는 배에서 내려 마을 초입 반짝이는 금빛 가루가 섞인 모래사장을 걷다 보면 마치 오지 못할 곳에 오고야 만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멀리 보이는 한 아이는 제 몸집의 몇 배나 되는 물소를 끌고 집으로 가는 중이었다. 그곳에 사는 아이들은 학교에 가려고 매일 배를 타고 시내에 나왔다. 교복을 입고 머리를 야무지게 쪼맨 아이들이 배 안에 옹기종기 모여앉아 있는 모습이 마냥 귀여웠다. 흐뭇해하는 미소에서 속마음이 읽혔는지 옆에 있던 S는 말했다. ‘우리가 보기엔 귀엽지만, 저 아이들은 매일 저렇게 다니기 힘들어.’ 나도 안다. 아니, 알 것 같았다. 강물이 멈추지 않은 것처럼 다시 잘 모르기를 자처해야 하니까. 그래도 자신의 최선을 다하는 게 대견한걸.      


그 섬엔 출생등록이 되지 않은 아이들이 유독 많았다. 계절마다 거처를 옮기며 아이들과 농사를 짓는 부모들에겐 알 수 없는 내용의 종이 한 장이 당장 쌀을 나오게 하지도 않는데 뭐 그렇게 중요한가 싶었을 거다. 행정절차가 복잡해 구청까지 여러 번 가야 하는 번거로움도 한몫했다. 행정의 효율화나 정보관리 역량 강화를 넘어 출생등록의 중요성이 다시 알려져야 했다. 그곳에서 나고 자라 지역 사정을 빠삭하게 꿰고 있는 현지 직원 디나는 학교 졸업 후 마땅한 일거리를 아직 찾지 못했거나 지역개발에 관심이 있는 청소년 자원봉사자를 여럿 모았다 (한 줄로 설명되는 이 과정이 물론 쉬운 것만은 아니었다). 왜 출생등록이 아동 권리의 첫 단추인지, 등록 과정에는 어떤 게 필요한지 자원봉사자들과 나누었다. 그리고 마을 사람들에게 쉽게 정보를 전달할 수 있도록 행사를 기획하고 역할극을 준비하도록 도왔다. 전문 MC로 손색이 없을 정도로 물 흐르는 진행실력을 선보인 지역 청년을 필두로 예행연습을 야심 차게 마치고 마침내 마을 내 행사가 열리던 날. 이야기에 스며들어 집중하는 얼굴들은 침묵했다가 이내 꾸밈없는 웃음소리를 터트렸다.     



비가 많이 오는 날이면 강변 보도블록 밑에 살던 벌레들이 모두 나와 발발거리며 자기네 거주지가 침수되었다고 소리 없는 경보를 울렸다. 흙탕물이 불어나 둑을 넘을 만큼 넘실댈 때면 조마조마한 마음도 들었다. 소클리엥은 우기가 되면 강 수위가 적혀있는 담벼락을 확인하는 게 아침 루틴이었다. 미간에 잘 안 보이던 주름을 지으며 매년 지역 강수량을 예측하기 어려워지고 있다고 말했다. 시내로 가는 유일한 포장도로는 침수되기 쉬웠고, 물이 반쯤 찬 도로를 가로질러 다녀야 하는 게 다반사였다. 그러던 어느 날 마을 결연아동 중 하나가 익사했다는 소식이 들렸다. 그날은 모두 침울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고 직원들은 차례로 조문을 갔다. 조기경보 시스템을 만들어 홍수 피해를 줄여보고자 사전 조사를 하기도 했었다. 그때의 결론은 지역 사람들이 홍수 경보를 제때 제대로 된 방식으로 받는 게 가장 중요하다는 거였다. 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시스템을 만드는 일은 눈에 보이는 결과를 내기까지 오래 걸려서일까. 아니면 눈에 보이는 거야말로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다고 믿어서일까. 일부 후원자들에게는 번듯하게 눈에 보이는 인프라 시설이 늘 발전의 1번 지표이기 쉬웠다. 그만큼 우선순위에서 밀렸다.     



시내에서 조금 더 올라가 ‘웃는 돌고래’로 유명한 이와라디 돌핀 ‘싸옷’이 사는 지역은 나름 알려진 관광지였다. 모터보트를 타고 강 위를 휘젓고 다니면 돌고래들이 스트레스를 받을 수 있다지만 어렵게 그곳에 다다른 관광객들은 별로 개의치 않는 것 같았다. 이전에는 어부들이 물고기 많이 잡을 수 있게 도와주고 공생했다는 돌고래들이 어느새 고래기름 대신 희생되고 구경거리가 되었다. 세계자연기금이 2005년부터 지역사무소를 세우고 돌고래 보존 프로그램을 진행했지만 결국 멸종위기종이 되었다(The IUCN Red List of Threatened Species, 2017). 그리고 더 최근 뉴스에서는 캄보디아와 라오스가 접해있는 메콩강에서 돌고래가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는 소식도 들렸다. 티베트고원에서부터 중국, 라오스, 태국, 미얀마, 캄보디아, 베트남을 거쳐 흐르는 메콩강은 국경을 넘어 공유되고 연결된다. 상류에서 진행되는 댐 건설과 무분별한 개발은 하류에 수질 오염과 생태계 파괴라는 결과를 파생한다. 이제는 남아있지도 않은 원시의 자연을 주창하는 건 아니지만, 원래 그곳에 터를 잡았던 사람들과 동물들, 그리고 모든 존재들이 함께 남아주기를, 같이 살아주기를, 더는 사라지지 않기를, 메콩강이 기억날 때마다 마음속으로 빈다.


*같이보면 좋을 글

 [발전대안 피다] 경쟁적 개발의 양상 속 메콩강을 통해 보는 '사람이 중심이 되는 발전'의 필요성

매거진의 이전글 직업으로서의 국제개발과 NGO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