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성하면 결점만 보이게 될 테니까
『안나 카레니나』
결국, 흔들리는 과정에 대한 기록이었다.
직업으로서의 국제개발은 내게 여러 차례의 분기점과 만들어 주었다.
어쩐지 시간이 갈수록 내 안에 겹겹이 쌓여가는 건 지배적인 이야기보다 비주류적이고 대안적인 이야기였다. 결과보다 과정, 수치의 변화보다 관계의 변화, 시스템보다 사람에 대한 경험이었다. 현상의 개발에서 더 근본적인 것과의 연결을 그려갔다. 인도주의적 위기와 개발, 그리고 평화의 순환고리. 모든 것이 결국 존재와 존재의 공존을 도모하는 일에 대한 것이었다.
정의롭고 지속가능한 공존으로 가는 길에도 중개자가 필요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국제개발 코디네이터로 활동하는 동안 정부, 기업, 일반 대중들에게 현장의 목소리를 전하는 일과 크나큰 장벽에 작은 균열을 내는 일이 내가 가진 유한한 자원을 쏟아낼 일들이 되어 갔다.
언젠가부터 가난을 동정하지 않았다. 가난한 이들과 일하는 동시에 부유한 이들에 대한 저항과 재구조화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가난을 바라보는 사람들 뒤에서 가난을 보게 되었다. 그리고 공존에 대한 감수성 높이기를 목표로 삼았다. 현장에서 주민들과 부대끼며 열혈 단신 발로 뛰는 활동가가 아닌 이상 사무실에서 일하는 사람으로서 할 수 있는 일에 대해서도 생각했다. 책상 안팎과 근무시간 전후 따로 없이 일상생활에서 가난한 이들을, 가난한 이들과 함께, 가난한 이들을 옹호하는 삶을 살고 싶다는 희망을 붙잡았다. 지속된 생각이 기어코 행동으로 연결되었을 때, 이상을 허상으로 남겨두지 않으면서 자신의 삶을 존중할 수 있게 되었다. 땅에 붙어 겨우 한숨 고를 수 있었다.
다른 여러 사회과학 학문의 태생같이 국제개발도 결국 식민지 개척과 문명화를 목적으로 발전했다는 점을 계속해서 복기했다. ‘타자화’와 ‘대상화’하는 것에서 벗어나 ‘같이 살아가는’ 관점을 담은 발전 담론이 앞으로 더 확장되기를 기대한다. 국제개발의 목표도 ‘일방’과 ‘관리’가 아닌 ‘양방’과 ‘연결’이기를 바라본다. 그동안 마땅히 나누어야 할 것을 나누지 않고 한쪽에 쏠린 불평등한 권력과 자원의 공유가 일어나는 것이 우리가 바라는 바일 것이다.
국제개발 활동을 하면서 앞서간 선배들이 기록했던 책을 읽으며 완전한 타인과 연결되는 경험을 하기도 했다. 공존과 연대의 유산들. 결국 그들이 남긴 언어와 같은 결의 궤도를 도는 내 모습을 보았다. 반가움과 안도감이 들면서도 지금까지의 단상과 그로 인한 소결이 나를 또 어느 곳으로 이끌지 알 수 없는 기대와 두려움이 스며왔다.
반대에 부딪히기 싫어서 선택하는 평화가 어느 한쪽에 갈등을 유발하지 않고는 지속될 수 없는 아이러니와 평화를 얻기 위해 싸워야 하는 모순을 어설픈 얼굴로 마주하게 되는 날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끝에선 순간에도, 나를 이끌어온 것들이 다시 나를 이끌어 갈거라 생각했다.
더 이상 국제개발을 하고 싶어지지 않아졌다. 어느 순간 내가 편안하게 느끼는 곳이 바뀌는 건 단순히 시간 때문이 아니라 이따끔씩 순간을 입혀온 나의 생각과 느낌일거다. 미련 없이, 홀가분히, 또 다른 미완의 세계로 나섰다.
같은 말을 반복하고 어떤 주제로든지 잘 아는 듯이 말을 할 수 있으면 꼰대라던데, 여러 주제를 쓰면서 끊임없이 자가복제 하는 자신을 보았다. 단언은 무식함이라며 용기없이 모호한 어조를 유지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찰스 디킨스가 그랬던 것 처럼, 누군가의 승인을 받거나 기쁘게 하기 위한 이야기를 꾸며내지는 않았다. 이 분야에 흘러 들어올 이들에게, 같이 흘러가고 있는 이들에게, 혹은 이미 흘러간 이들에게. 일말의 격려, 위로 혹은 공감이 될 수 있기를 바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