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올랜드 Jun 06. 2024

나를 사랑하나요?

프롤로그, 여는 이야기

 열이 끓어올라 약간의 찬 기운만 스쳐도 온몸에 오한이 들어본 적 있었나요. 열이 끓어오르기 시작하면 몸이 버티지 못하고 열에 잠식당해 버리더라고요. 어린 시절은 그런 기억이 종종 있어요.


너무 높은 온도에 몸의 감각은 말할 것도 없이 쉽게 무뎌지고, 계속해서 몸은 떨리고, 머릿속엔 춥다. 춥다. 계속해서 춥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지요.  그러다 결국 임계점을 넘기게 되는 순간엔 정신을 놓곤 4시간이고 5시간이고 잠들어있던 기억이 스멀스멀 피어오르곤 합니다. 그렇게 잠들어 있을 때마다 어떤 꿈을 꿨는데, 그 꿈이 지금은 기억이 나지 않아요. 단지 어두웠고, 조금 편한 느낌이 감돌았다는 감정만 지금껏 연결되어 있죠. 8살의 저는 그런 경험 덕분에 몸의 임계점이라는 것을 일찍이 알게 되었어요. 우습게도, 몸을 컨트롤하진 못하지만 이쯤이면 정신을 잃어버릴 것이다라고 나지막이 짐작하곤 했지요. 그래서 어쩌면 그저 어둡기만 했던 꿈을 꿨지만, 그 예상되는 시나리오가 익숙해져서인지 쉽게 정신을 잃지 않는 지금에서야 편안한 느낌이 들었다고 생각하고 있나 봐요. 사실 조금 더 솔직한 감정을 내뱉자면 그게 제일 좋았어요. 극도로 몸이 떨리기 시작할 때, 소리라도 내면 더 아플 거 같아 이빨을 꽉. 더 꽈악 깨물고 있어도 바람구멍 사이로 솔솔 나오는 신음소리. 손 발은 차가웠고, 눈동자를 굴리기 힘든 시점이 오래되면, 정신을 놔버리는 그 순간이 오기만을 기다리게 되더군요. 겨우 진정되는 순간이거든요. 물론 몸은 그때도 싸우고 있겠지만 난 편했어요. 결국 쉬운 방법이었죠. 몸이 얼마나 망가졌을지 또 회복이나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다행스럽게도, 정말 많이 회복 됐어요.


이따금씩 머리가 아파오긴 했지만, 그건 어릴 적 미신 같은 걸로 치부해 버렸거든요. 그래서 정말이지 다행이었던 건 맞아요. 전 제 열감을 제 몸에 맡겨버렸고, 제 두통은 원인 모를 것이라고 생각했으니, 딱히 더 힘들어할 필요가 없었죠. 회피하고 나니 편하더군요. 그렇다고 해서 피하는 것 이외의 선택지가 있었던 것은 아니에요. 감히 용감하게 두 손을 불끈 쥐고 열을 식히려 몸에 찬물을 끼얹는 건 제 선택지에 없었던 거죠. 그래서였는지 무력한 저에게 다행인 것들은 그대로 떠난 채, 일상이 남았고 그건 불편했어요. 좋은 감정이 아니었지요. 이따금씩 아파오는 머리는 뭐랄까. 누군가 내 뇌를 주사위로 착각하고 흔드는 기분? 홀인지 짝인지 맞추지 못하면 그날은 하루종일 시달려야 했답니다. 흔드는 느낌은 맞았던 거 같아요. 분명 메스꺼웠거든요. 그래서 그런 날도 구토를 해버리면 편했답니다. 내용물이 없으면 흔들어도 요동치지 않아요. 전 요동치고 있었고, 제 몸은 구토를 해서 살 길을 찾았다고 해야 할까요? 제 몸은 어찌 보면 참 신기하네요. 제게서 아무렇게나 내던져진다 해도 스스로 잘 살아가니까요. 그런 기억들 때문에 어느 순간 저는 제 몸이 어떤 하나의 친구처럼 느껴졌어요. 평생 볼 친구. 나를 가장 잘 아는 친구. 나와 가장 밀접한 친구. 내게 가장 많은 영감이나 영향을 주는 친구… 처럼 느껴졌다고요. 그때부터 전 저와 제 몸을 구분 짓기 시작했어요. 마치 친구와 대화하듯이 몸과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죠. 누군가 그 모습을 목격했으면 참 우스꽝스러웠을 거 같네요. 어쩌면 무서워서 소리를 막 질렀을 수도 있죠? 나름의 상상은 당신한테 맡겨볼래요. 당신도 상상력이 풍부한 거 같더라고요.  


 어찌 됐든 전 제게 친구가 하나 있다는 걸 알아차렸고, 그 친구는 알아차렸는지 모르겠어요. 지금에서야 짐작건대 아마 그 친구는 제가 태어날 때부터 저를 알아봤을 거 같아요. 음, 그전이라고 해둬야겠네요. 그렇게 알아차린 뒤엔 가장 처음 제게 물었죠. 그 친구는 오랜 시간 저를 바라봤었고, 지켜왔지만 저는 그런 사람이, 아니 그런 게 있다는 걸 처음 알아차린 날이었는데도, 그 애는 ‘기분은 어때?’ 하고 물었어요. 마치 오래전부터 매일같이 매 시간 매 초마다 물어온 것을 똑같이 반복하듯이 간단했어요. 정말로요. 전 질문과 동시에 대답이 나왔고 그건 나름 재밌었죠. 몇 번이고 물어보고, 다시 물어보더라도, 대답은 긴 호흡이 아니었답니다. 분명 오랜 생각이 참여하는 순간은 아녔죠. 잠시 잠깐, 그 순간에 기억하지도 못할 대답을 늘어놨어요. 저도 그 질문처럼 그 친구에게 반복적으로 대답했죠. 그 친구는 대답을 듣고 나면 항상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거든요. 대화가 아닌 시험문제를 푸는 기분이었어요. 그 반복적인 질문과 대답이 슬슬 질리기 시작할 때쯤. 그래, 그때부터는 그 친구의 존재를 잊어버렸던 거 같아요.


 지금 그 아이와 다시 대화를 나눠봐야겠어요. 지금까지 많은 일들이 있었고, 저는 그 기억을 다 세지 못하거든요. 하지만 그 아이는 가능해요. 그 아이는 나를 마치 그날, 그 시간, 그 공간에 데려가는 듯이 내게 얘기를 하거든요. 그 애의 눈동자를 바라보는 순간에 그게 가능하죠. 그래서 그 아이와 이야길 나눠봐야 한다는 거랍니다. 저는 그 기억을 찾지 못했고, 중간중간 찾은 기억들은 아직 놓을 자리를 찾지 못하였거든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그들을 마주하려고 합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