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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올랜드 Jun 27. 2024

그녀의 나 그리고 나의 엄마

나를 사랑하나요? 3화



그때도, 나는 햇빛의 무거움을 눈꺼풀로 느끼며 잠에서 깼다. 포근한 누비이불에서 몸을 일으켰고, 전기장판을 껐다. 창문을 열었고, 겨울내음이 잔잔하게 퍼져왔다. 창틈에 옅게 먼지가 앉은 것을 보고, 청소를 해야 하나 하고 잠시 머뭇거렸다가 배가 고파져 방 밖을 나섰다. 냉장고를 잠깐 열어보았다. 아까 창틀에서의 겨울보단 덜 차가운 냉기가 느껴졌다. 냉장고에 먹을 것이 많이 없는 거 같았다. 나는 엄마와 장을 보러 갈까 고민했다. 언제나처럼 주말이었고, 그럴듯한 아침이었다. 목에 건조함을 느낀 순간 찬물을 들이켰다. 배 안 까지 모든 차가움이 전해 들어왔다. 순간 차가워진 배 안과 거실 바닥에 남아있는 냉기가 정신을 찌릿하고 깨웠다.



정신이 돌아오자 장을 먼저 봐야 하나 밥을 먼저 먹고 나가야 하나 고민했다. 따뜻한 겨울의 이불이 그리워지는 아침이지만, 내 고민은 너무나도 행복했다. 이불속에서 뒹굴거리며 늦은 잠을 청하기도 좋았지만 아침에 해 먹을 것이 기대됐고, 하루의 시작이 조금 더 설렜다. 마침 배도 고팠고, 또 마침 어제 평소보다 더 깨끗하고 정리해 놓은 찬장과 싱크가 내 앞에 준비되어 있었다.


시끄럽고, 뜨겁고, 차갑고, 별의별 것의 소리와 별의별 온도를 느끼는 주방. 그 주방의 아침은 너무나도 고요했고, 나는 그것이 정말로 나한테는 안정감을 주는 것이라 생각했다.


오른쪽부터 왼쪽까지 눈길로만 한 번 훑었고, 눈길이 딱 끝날 때쯤 결정을 내렸다. 여전히 주방엔 먹을 것이 있었고, 그게 넘쳐나진 않았다. 장을 봐야 하기엔 충분한 양이었고, 내가 지금 아침을 먹기에도 적당한 양이었다. 엄마는 그 상태의 주방을 가장 좋아하는 거 같았다. 그건 나도 그랬다.


너무 많은 양의 식재료가 집 안에 있었던 적은 없었다. 과하지 않은 재료의 양은 식재료 각각이 본래의 색을 유지하고, 있을 자리를 정하기에 여념이 없게 만들었다.


 여전히 남아있는 적당한 재료 몇 개를 떠올린 나는 집에 남아있는 재료의 조합으로 바질 페스토를 생각했다. 견과류 몇 줌과 바질 그리고 올리브오일 마늘 두 개, 통후추 그리고 마지막으로 소금 두 꼬집을 넣고 블랜더에 갈았다. 색이 오묘했고, 점같이 박힌 향신료는 사랑스럽기까지 했다.


나는 물이 끓어오르는 것을 봤고, 면을 준비했다. 끓는 물에도 약간의 소금을 집어넣었고, 면을 삶기 시작했다. 엄마는 아직 일어나지 않은 거 같았고, 양이 부족할지 생각할 필요는 없었다. 파스타는 언제나 양이 부족한 게 좋았다. 그래야 다음에도 이 파스타를 맛있고, 알차게 즐길 수 있었던 거 같다.


타이머가 울렸고, 면을 팬에 넣고 면수 두 국자를 쏟은 뒤 만들어놓은 페스토를 휘적휘적 섞었다. 파르미지아노 치즈랑 약간의 레몬제스트를 갈아두었다. 팬에서 접시로 옮겨 담았고, 그 접시는 엄마가 항상 피자나 파스타를 올리는 곳이었다. 얼른 엄마를 깨워 아주 적당히 애멀젼된 그 요리를 먹어야 했다.


덜컹!


의자에 발이 걸려 넘어질 뻔했다. 나는 천천히 의자를 집어넣곤, 거실로 곧장 걸어갔다. 방문을 노크하는 시늉을 두 번 정도 하다가 살그머니 문을 열었다.


창문은 닫혀있었고, 엄마의 이불은 깔끔하게 놓여있었다. 베개는 가지런했고, 나는 러그를 밟았다. 천천히 둘러봤다. 엄마는 안 보였고, 9시의 햇살과  밤 동안 아래로 깔린 차가운 공기, 그리고 침실에 유난스럽게 남아있는 엄마의 향기.


나는 엄마가 산책에 나선 것이라 생각했다.


 가끔 엄마는 아침 일찍 구보에 나서곤 했다. 하루를 깨운 것이 햇살이기만 하면 밤이 너무 아쉽다면서 햇살이 들어오기 이전에 밖으로 나섰다. 꼭 계절이 예뻐서 하늘이 보기 좋아서는 아닌 거 같았다.


나는 그런 게 좋았지만 엄마는 시간에 연민을 느끼는 사람이었다. 계절이나 하늘이나 다른 것 따위는 엄마에게 동요를 불러일으킬 만큼 새롭지 않았다. 정말 그랬다. 엄마는 밤이 아쉽다는 표현을 자주 썼다. 항상 아침을 붙잡지 않았고, 밤의 끝을 잡고 늘어지는 부류였다.


 요리를 시작한 지 몇 분쯤이나 흘렀는지 정확하게 모르겠지만, 이미 내가 일어난 시간과는 거리가 멀어졌으니 나는 곧 엄마가 돌아올 거라고 생각했다. 블랜더를 세척하고, 팬을 닦았다. 면을 삶은 냄비의 비눗물을 헹궜다. 한 번 더 헹궜고, 엄마는 오지 않았다. 창문을 닫았지만 파스타의 김은 더 이상 올라오지 않았다. 전화를 해보았다. 휴대전화 속 신호음은 계속해서 울렸다. 음성사서함으로 넘어가는 순간 문자를 보냈다.


‘엄마, 어디야?’

‘산책 갔어?’

’ 파스타 했는데 같이 먹자. 엄마 아침 안 먹고 나간 거 맞지? 나랑 같이 먹자’


읽지 않았다. 답장은 더더욱 오지 않았다. 나는 무슨 일이 생겼나 싶다가도, 엄마는 가끔 그랬으니 이번에도 대수롭지 않게 핸드폰을 덮어두고, 아침을 해치웠다. 오랜만이었다. 항상 1.5인분 정도를 준비하는데, 이는 엄마와 내가 아침으로 나눠 먹는다. 그 양을 오랜만에 홀로 다 해치웠다. 나는 좋아하는 탄산수를 냉장고 안에서 꺼내 들었고, 컵에 따라 마셨다. 약간의 쌉쌀함과 감칠맛이 맴돌았던 입 안에 청량감이 쏟아졌다. 접시를 정리해 두고, 다시 침실로 들어갔다. 이번엔 엄마의 침실이었다. 침대에서 잠시만 더 잠을 청했다가 엄마가 돌아오면 장을 같이 보러 갈 심산이었다. 커튼을 살짝 쳤고, 거울을 봤다. 그리고 그대로 풀썩.


침대에 몸을 뉘었다. 고요하게 채워진 주방의 공기는 그대로의 형태를 찾아가기 시작했고, 이제 햇살이 내 눈 위가 아닌 다리 어쩌면 몸 위 아니 어쩌면 발 끝에 닿았다. 고요했고, 새가 지저귀는 소리가 들렸다. 처음 들리는 소리는 부스럭부스럭 이불과 이불의 마찰 소리. 끝에 들리던 소리는


쾅!


아까 씻어놓은 팬이 떨어지는 소리였다. 엄마가 항상 이야기해 놓았던 것이다. 난 행주 걸이에 팬을 걸어놓는 것을 좋아했다. 편하기도 편했고, 엉뚱하게도 저게 항상 무기가 될 수 있을 거 같았다. 식도 같은 날붙이는 무언가 크게 도움이 되지 않을 거라 생각했었다.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사실이 그 근거를 더했고, 나는 프라이팬이 좋았다. 그게 내 눈에 가장 먼저 띄었으면 좋았어서였다. 근데 오늘 사달이 나버렸다. 행주걸이가 드디어 떨어져 버렸다.


나는 잠에서 깨는 소리가 이렇다면 다시는 잠에 들고 싶지 않을 정도로 시끄럽게 깨어났다. 거실을 지나 주방으로 갔고, 이번엔 스탠딩의자에 발이 걸렸다. 기분이 이상했다. 팬 손잡이는 괜찮은지 찌그러지진 않았는지 살피곤 이내 무엇보다도 떨어진 행주걸이를 보면 엄마가 얼마나 놀려댈지 또 자신의 말이 맞았다며 고소해할지 생각이 들어 얼굴이 붉어졌다.


아, 엄마. 엄마는 여즉 주변에 없었다. 핸드폰을 쥐었다. 다시 전화를 걸었다. 머리를 쓸었다. 이마를 짚었고, 엄마는 신호음만 갈 뿐 전화를 받지 않았다.



 거실에 옅게 쌓여있는 차가운 공기처럼 나는 문득 불길한 생각이 켜켜이 쌓이기 시작했다. 분명히 이런 일이 전에 없진 않았다. 엄마는 항상 휴대전화를 끼고 사는 편이 아니었으니. 나는 이해가 가기도 했다. 하지만 이 상황을 충분히 설명하려면 분명 엄마의 삶에 뚜렷하게 보인 적 없는 무언가 구보 중에 있었어야 했다. 아니, 어쩌면 홀로 장을 보러.. 장바구니는 없었다. 엄마는 장바구니를 항상 들고 다녔다.


그럼 그것은 아니다. 그래서, 그저 다른 이유를 갖다 대며 엄마가 어딜 갔을까 추측하기만 할 뿐이었고, 아무렇지 않게 다짐했던 일을 했다.


세제와 걸레를 갖고 와서 창틀을 닦기 시작했고, 휴대전화에 벨소리가 울리나, 울리지 않나 그저 감시하고만 있었다. 턴테이블을 켜서 어젯밤에 들리던 음악을 그대로 다시 들었다. 나는 혼란스럽지 않았다. 오히려 밖에서 그대로 퍼져오는 소음과 아름다운 청음이 즐거웠다. 다용도실에 걸레를 갖다 놓고 화장실에 들어갔다. 손을 씻고 거울을 보았다. 머리가 너무 헝클어진 거 같아 빗질을 했다. 어렸을 적부터 다듬는 것이 귀찮기만 했던 긴 머리는 이젠 제법 그 모양이 예뻤다. 나는 내 머릿결이 좋았다. 그래서 매일이고, 언제고 내 머릿결을 다듬었고, 목욕을 할 때면 항상 머리에만 쏟는 시간이 따로 정해져 있었다.


 갑작스레 기분이 꿀꿀해진 나머지 온수를 틀곤 욕조에 들어갔다. 나는 내가 욕조에서 녹아있는 시간을 꼭 확보해야 한다. 하루에 30분이라도 목욕을 하고 나면 무엇이건 뚜렷한 기분이 들었다. 항상 온몸의 때를 벗기는 게 그리고 머리를 꽉 쥐어짜서 감는 것이 필수적이진 않았지만, 그럼에도 난 내 기분을 위해서 그 시간을  감내하고 싶었던 거다. 어쩐지 느지막한 시간에 일어났다 싶었는데, 천천히 몸을 일으켜 목욕을 마치고 머리를 말렸더니 낮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었다. 6시는 되었을까. 벌써 해는 집 앞의 언덕의 능선을 넘어가고 있었고, 물 묻은 머리가 춥다는 생각이 들었다. 피부를 정돈하고 머리를 말리고 있었다. 휴대전화를 확인했다. 문자는 오지 않았다. 전화는 더더욱 없었다.


구보를 10시간이나 하진 않으리라. 자명한 사실이다. 나는 겨우 추측만 하던 시간을 버려두고, 오늘이 무슨 날인가 찾아보기 시작했다. 엄마는 항상 캘린더에 중요한 일들을 다소곳하게 적어놨었고, 나는 당연하게도 거기서 무슨 일인지 찾아보려 했다. 거실에서 가장 잘 보이는 곳에 큰 달력이 있었고, 엄마의 책상 위에 자그마한 달력이 놓여있었다.


엄마의 달력엔 꽤나 규칙이 정확했다. 달력을 볼 때마다 기분이 좋아질 일은 초록색으로 작은 달력과 큰 달력에 모두 적었다. 너무나 반복적이어서 엄마에게 흥미를 일으키기 힘든 일들은 검은색으로 작은 달력에만 적었다. 처음 하게 되는 일은 꼭 붉은색으로 작은 달력, 큰 달력에 모두 적어두었다.


거실로 나온 나는 큰 달력을 보았다. 엄마는 겨우 작은 표시만 해두었고, 그 표시는 물음표였다. 붉은색. 내 머리 위에도 똑같은 표시가 뜬 것 같다.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이게 무슨..?‘

엄마의 탁자 위를 살폈다.



난 엄마를 안다. 기억보다 오래되긴 했지만 그 이전부터 엄마를 아는 셈이다. 하지만 이건 무엇인가. 감히 짐작도 안되고 이런 게 전에 있었는지 모르겠다. 엄마는 달력에 물음표 하나만 적은 일이 없다. 그저 엄마가 기억을 까먹고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는 날이라 이렇게 적어둔 거다 생각해 버리기엔 또 붉은색이었다. 내가 아는 엄마는 어쩌면 오래전에 사라졌거나, 지금 아는 엄마가 내가 생각도 못하게 행동하고 있다는 뜻이다. 난 궁금하기도 했고, 천천히 알아보려 했다.



분, 몇 분


시간 그리고 몇 시간.


벽에 부딪힌 것처럼 생각이 멈췄다. 난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어디 갔는지 궁금해하는 것 그리고 기다리는 것. 단지 그것뿐이 선택지였다. 다시 무력감이 내게로 도망쳐 왔다.


 

 휘날리는 커튼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고요한 밤이 찾아오면서 잠시의 잠에서 깨어났다. 그 사이 앉아있었더니 잠에 든 모양이었다. 처음은 울림이었다. 밤의 긴 침묵을 깨고, 이른 새벽의 고요가 먼저 깔렸다. 여전히 바람소리는 들려왔고, 나는 나 이외의 사람은 이 집에 아무도 없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여전하게도 긴 침묵을 겪고 있었지만, 생각은 끊이지 않았다. 천천히 이불을 들어 올렸고, 자리에 고스란히 앉아보았다. 이상하리만치 괴리감이 들었다. 분명, 정말 불안에 휩싸여 떨리고 있었지만, 몸은 가만히 가만히 멈추었다. 이질감인지 괴리감인지 모를 긍정적이지 않은 생각에 가만히 멈춘 몸이 혐오스럽기까지 했다. 밖으로 나왔다. 입김이 머리 위까지 박차고 나갔다. 입에서 나온 뜨거운 공기는 밖의 차가운 것들을 조금 밀어내고, 자기의 모습을 드러냈다. 무작정 엄마가 항상 가던 산책길부터 찾아갔다. 거센 갈대가 이리저리 바람에 흔들리는 그 길. 키 큰 갈대가 언뜻언뜻 새벽하늘을 가리고, 나는 그 길을 따라 갈대와 같이 흔들리며 걸었다.


새벽이 휘날리는 때에 처음 붉은 어떤 것이 나타나고, 그것은   뒤에서 떠오르고 있었다. 주변이 환히 밝아지기 시작했고, 나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갈대를 꺾는  갈대라도 잡는   산책로를 벗어났다. 어린 시절 아끼던 팔찌를 잃어버렸을 , 왔던  그대로 돌아가듯이  길로 가듯 했다. 당연히도 팔찌가 있었으면 좋았으리라. 그러나 계속 밑을 보고 걸어가지만 어디서 잃어버렸는지 모르는 나는 돌아서 찾아가는 이유조차도 떠올리지 못했다.


해가 드디어 내 뒤통수 위에서 비치기 시작했고, 나는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 숨을 깊게 들이마시곤, 그대로 달렸다. 엄마가 자주 갔던 모든 곳을 살폈다. 번화가, 식당, 서점, 카페, 심지어 병원도. 나는 엄마가 가던 길을 알았다. 나는 항상 엄마와 같이 걸었던 그 길에서 그녀를 찾았다. 어느 매장을 찾아가던지 그 매장 점원들에게 그녀를 물었고, 그들은 마치 벌목꾼이 된 양 한 사람씩 돌아가며 내 믿음을 도끼질 쳤다. 그들은 모두 엄마의 행방을 자기에게 왜 묻는지 궁금해하는 표정으로 쏘아붙혔다. 나는 쓰러진 믿음을 주섬주섬 챙겨서는 집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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