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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올랜드 Jul 25. 2024

아직 찾지 못한 기억의 자리

나를 사랑하나요? 5화

 

 삶은 그대로 놓인 순간을 가만히 두지 못한다. 나 또한 삶에 놓여있었고, 또 다른 아침은 결국 찾아오고야 말았다. 그 삶에서 내 공간은 없는 듯했으며 그렇게 놓인 삶이야말로 내가 가질 수 있는 유일한 한 칸의 선택인 듯했다. 또 다른 아침이라 해야 별 것 없겠지만 꽤 다른 상황이 몇 가지 있었다.


그때 내 삶은 당연하게도 팽창하고 있었다. 삶에서는 사라지는 것조차 기억이 되고, 존재가 된다. 사라졌다는 것이 기억이 되고, 무엇이 사라진 그 자리, 바로 그곳이 존재가 된다. 그래서 삶에서는 정말로 슬프게도 팽창하기만 한다. 유일하게 죽을 때가 되어서야 더 이상 팽창할 곳이 없을 때에야 풍선이 터지듯 작은 바늘 하나가 삶을 터트린다. 그 안에 담긴 것이 무엇이었는지는 죽은 그 사람만이 알 수 있다. 어쩌면 그 사람조차 정확하게 알지 못할 수 있지만 확실한 것 하나는 형체도 없이 터져버린 삶을 보는 그 누구든지 그것이 도대체가 무엇인지 모른다. 지레짐작. 겨우 지레짐작하는 것뿐이다. 저 사람의 삶이 어땠을지.


나의 아침은 그것과 별 다르지 않은 아침이었다. 결국 또다시 아침이 밝아왔고, 나는 다른 상황 몇 가지를 인식하는 것뿐. 그게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어려서부터 물어왔던 가장 기쁜 질문들. 왜 그런 것인지 어떻게 그렇게 된 것인지 무엇으로 된 것인지 물어볼 수 있는 대상이 없었다. 그리고 그 대상이 없다는 건 내가 정확하게 인식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었다.


마침 설이가 나를 불렀다. 지금 내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짐작하고 있는 사람이 나를 불렀다.


‘수연! 일어났어?’


그 애는 침대에서 나를 끄집어냈다. 분명 눈을 뜬 건 새벽이었는데, 왜 지금에서야 깨어난 건지 모르겠다. 새벽에 눈을 떠서 누운 채로 여러 상상을 하고, 기억을 하면서 새벽을 버티고 있었던 거 같은데, 얼마 지나지 않은 듯한 시간은 사라져 버렸고, 나는 겨우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갓 태어난 송아지처럼 쉬이 걷지 못하는 모습은 얼마나 형편없고 웃기겠는지. 설이는 집에 있는 단호박으로 죽을 끓여두었다. 달큰한 향이 풍겨왔다. 자리에 앉자마자 설이는 수저를 내게 건넸다. 나는 이미 오래전부터 해왔던 의식을 행하는 듯이 그것을 받아 들고는 천천히 죽을 한 술 떴다. 약간 풍겨오는 뜨거운 연기, 나는 그대로 입에 넣었다. 단 맛이 입 전체를 감싸고, 단호박의 향을 음미하기 시작했을 때 바로 목구멍 뒤로 넘어가는 침과 단호박죽.


나는 천천히 맛을 음미하려 했으나, 그건 내 맘대로 되지 않았다. 어느 순간 목이 막히기 시작했다. 뭐랄까. 온몸에 있던 피가 성대, 갑상샘, 식도, 기도 그것들 그 사이로 넘실거려서 다른 것들이 움직이지 못하는 느낌이었고 그게 나를 무섭게 했다. 조금 몸이 떨리는 게 느껴질 때쯤 되자 결국 눈물이 새어 나왔다. 앞에 설이가 있다는 건 중요한 게 아니었다. 엄마가 갑자기 미워지기도 했고, 그렇게 밉다 생각하는 내가 이해가 안 되기도 했다. 엄마가 보고 싶기도 했고, 그렇게 단순하게 생각하는 내가 싫어지기도 했다. 상황을 정리해보려고도 했고, 쉽게 정리되지 않는 감정과 상황에 놓인 곳에서 무력감을 느끼기도 했다. 나는 고개를 떨구고 망울망울 맺히는 눈물을 마치 다시 눈 안으로 집어넣으려는 듯이 몸을 떨고 있었다.


어느 순간 떨림이 멈추기 시작했을 때는 설이의 감촉이 느껴졌다. 그 애는 나를 감싸 안고는 등을 토닥이고 있었다. 뭐라 해야 할지 모르겠었다. 계속 울어야 하나? 아니면 변명이라도 해야 할까. 그 애한테 내가 원래는 감정적이지 않은 것을 너도 알지 않느냐 물어보고 싶었고, 그렇게 변명이라도 해야 하나 싶었다. 사실 무슨 행동을 취해야 할지도 몰랐다. 그때 먼저 말을 꺼낸 건 그 아이였다. 그 애는 나를 한 번 보더니 다시 따뜻하게 안아주었다. 그리곤


‘그래. 괜찮아. 괜찮기만 한 걸. 괜찮을 거야.’


무엇이 괜찮다는 것일까. 또 그것이 정말로 괜찮을까. 왜 괜찮다 할까. 그 말을 듣자마자 나는 잠시 영원할 거 같은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계속해서 질문을 던졌고, 그 질문이 내 생각에 중요하다고 느껴질 때마다 나는 눈물을 흘렸다. 얼마쯤 지났을까. 단호박죽이 너무 식어버려 식은 죽먹기라는 속담이 효과를 볼 수 있을 정도의 시간? 난 그 시간 동안 그 품에 안겨 영원한 질문을 반복하였다.


그러다 스스로 몸을 일으켰다. 아까까지 나를 꽉 감싸 안았던 설이의 팔은 너무나도 쉽게 스르륵 풀려버렸다. 나는 고개를 들었다. 눈물을 조금 닦아내고 설이의 얼굴을 보고 다시 주방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프라이팬이 떨어진 자리를 바라보았다. 잠시의 간극이 지나가고 난 뒤 나는 조용히 몸을 일으키며 설이에게 말을 건넸다.


‘미안해 그리고 고마워 덕분에 진정됐어. 정말이야. 이제 괜찮아.’

 

나는 그렇게 말하고는 옷을 주섬주섬 꺼내 입기 시작했다. 모자도 집어 들고, 장갑을 끼고 나서야 밖으로 향했다. 설이와 함께 경찰서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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