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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올랜드 Jul 04. 2024

낮보다 아름다운 밤의 빛과 한설

나를 사랑하나요? 4화



 믿음이 쓰러진 순간 정말 나무가 쓰러진 듯 나뭇잎들이 흩날렸고, 내 시선도 뿌옇게 흐려졌다. 조용히 낮게 햇살이 가라앉고 있었다. 현관문이 쾅 닫혔고, 몸을 움직이지 못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그 감정이 나를 덮쳤고, 도무지 그 이유를 모르겠었다. 정말로 떠난 것이었다. 신호음은 야심 차게 그 울음을 시작했고, 울음이 그칠 때쯤 나는 주저앉은 채 다리를 부여잡고 혼란스러운 마음에 울음을 터트렸다. 모든 것이 일렁이고 흐려지는 시선만이 남아있을 때가 되기 시작했을 때 가까스로 주먹을 쥘 수 있었다. 나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방법을 찾아야 했다. 신호가 가지도 않는 전화는 이만하면 되었다. 친구를 먼저 찾았다. 괜히 엄마를 친구에게서 찾는 건가 싶어 머뭇거리던 아침과는 달리 이제 더 많은 생각이 남아 있지 않았다. 그 애한테 전화를 걸었다. 짧은 신호음과 함께 차분하지 않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니, 차분하지 않았다고 하는 건 말투이고, 목소리는 은근하게 감미로웠다. 아까의 그 점원들 마치 도끼질 치는 듯하는 그 사람들과 달리 내겐 어떤 전언과 같이 깔끔하고 부드럽게 들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목소리가 들릴 때쯤 입가에 슬픔이 머물렀지만 천천히 말을 이었다.


‘여보세요?’

‘어! 무슨 일이야! 저녁 같이 먹으려고?’

전날 밤 그리고 잠에 들기 전 대충 먹었던 빵이 식사의 끝이었다.  나는 그걸 기억했다. 그 애가 기억하게 했다. 순간 배가 아린 느낌이 들었다. 엄마가 보고 싶었다.

‘아니 그런 건 (말줄임표)’


그 애한테 입가에 머물던 슬픔이 들렸나 보다. 눈치채지 못한 건 내 쪽이었다. 외려 영악하리라 그 애는. 영악하게도 그 애는 나를 너무 잘 알았다.


‘뭐야, 너 무슨 일이야. 괜찮아?’


나는 입가에 머무는 슬픔을 합. 하고 머금었고, 그 틈 사이로 새어 나온 말이었다. 공기가 소리를 가졌다. 떨렸다.

‘아니 잘 모르겠어’

‘잘 모르겠다니. 집이야? 거기 있어 내가 갈게.’

‘엉’

공기를 삼키는 듯한 음성이 수화기를 감쌌고, 그대로 전화를 끊었다. 나는 먼저 신발을 벗었다.


거실에 나 있는 창문 밖엔 별이 흐르기 시작했고, 물레방아가 돌아가듯이 하늘이 유영하고 있었다. 그 물레는 하늘의 빛을 낮보다 더 아름답게 짜내고 있었고, 그 빛이 내 얼굴에 닿기 시작했다. 흘러가는 시간은 앞에 있었다. 눈을 깜빡이는 채. 하지만 혼란스러운 건 아니었다. 뭘까. 계속해서 피어오를 뿐이었다. 궁금증은 감정에게 늘 도망 다닌다. 감정은 궁금을 쫓지만 잡지 않는다. 잡히지 않는다. 그래서 궁금증이 먼저 앞서고 감정은 그 뒤에. 나는 그대로 눈을 말똥거리며 앉아 있었다. 초인종이 눌렸다. 그 애다. 나에게서 엄마 다음으로 많이 나에 대한 정보를 가져간 아이. 그 애는 여느 때 같은 맑은 눈으로 머리를 쓸어 넘기며 문 앞에 서있었다. 내 생각에 대답하듯 그 애는 마이크에 음성을 흘렸다.


‘나야 수연아.’


형편없었다. 내 몸짓이 너무나도 형편없어서 하마터면 비웃을 뻔했다. 갓 태어난 짐승처럼 팔을 뻗었고, 해초가 해류에 휩쓸리듯이 몸을 일으켰다. 문을 열었고, 그 애의 손엔 무언가 들려있었다. 아 눈치 빠른 내 친구.


‘뭐야 수연아. 너 왜 그래. 울었어? 왜?’

‘어디 갔다 온 거야? 근데 옷은 왜 이래. 어머님은?’

‘잠도 못 잤나 보네? 왜 누구랑 싸웠어?’


그만. 그만 아까의 점원들은 믿음을 도끼질했다면 이제 이 친구는 겨우 잡은 정신의 문에 무참한 도끼질을 가했다. 커다란 물풀에 구멍이 여기저기 뚫리는 거 같았다. 나는 한 곳을 막았고, 또 한 곳이 뚫렸고, 또 한 곳으로 손을 뻗었고, 그 애는 또 도끼질을 했다. 아까 점원들과 다른 점은 의도가 있었다. 그 점원들은 단순히 응대였고, 의도 따윈 없었다. 그 애는 내게 보이는 감정들에게 도리질을 치는 것과 같았고, 확실하게 나를 위한 의도가 있었다. 그래서 마음이 아련해졌다. 아. 울진 않았다. 당연하다. 이젠. 조용하게 떠나야 할 감정은 아니었지만, 더 시끄러울 감정도 아니었다. 그 애에게 옅은 미소를 지었고, 분명히 떨렸다. 미소가. 답했다.


‘설아. 나 잘 모르겠어.’

‘뭔데, 내가 들어줄게 나야 한설. 얘기해 줘.’

‘엄마가 어디 갔는지 모르겠어. 엄마가 안 보여.’


그 애의 얼굴에도 물음표가 떠올랐다. 아까 달력을 보던 내 얼굴에 뜬 물음표처럼. 내가 밥을 안 먹은 지 너무 오래됐거나, 무엇을 잘못 먹고 체했나 하는 물음표 동시에 얘가 원래 이렇게 엄마를 졸졸 따라다녔나 하는 물음표. 하지만 그 애도 알았다. 내가 그러하지 않았단 것을 물음표에 대한 답은 그 애가 더 잘 알았다.


‘언제부터?’

‘어제 아침’

‘어? 지금까지 집에 안 들어오신 거야? 전화는 해봤어?’

‘엉, 없어. 그냥.. 없어. 전화도 해봤고, 안 받아. 신호음은 갔었는데 병원에 찾으러 갔을 때 다시 걸어봤거든? 근데 그때는 이제 전화기가 꺼져 있었어. 그냥 꺼져있었어. 설아 엄마가 어딜 간 걸까. 나 정말 모르겠어 왜 갑자기 전화도 안 받으시고, 울 엄마 치매일까? 설마 그럴 리가 없잖아. 이유를 모르겠어. 엄마가 자주 가던 곳은 다 들렸어 다 찾아봤고, 어디에도 없었어. 문자는 당연히 오지 않았어. 혹시라도 어디 가서 다치신 거면 분명 나한테 전화가 왔을 거야. 그래서 잘 모르겠어.’


나는 멍청해지고 있는 듯했다. 뭔가 아침드라마 혹은 절정으로 치닫는 소설의 전개처럼 엄마가 원래는 생모가 아니진 않을까. 하는 멍청한 기분도 들었다. 그러나 그것까지 그 아이에게 얘기하진 않았다. 멍청함이 더해지는 건 내 분석이 땅바닥에 나뒹구는 것 같았고, 그 애는 잽싸게 그걸 낚아챘다.


‘신호음이 가다가 전화가 꺼졌다고? 일단 실종으로 생각하자. 차라리 여기에 집중하는 게 나아. 그래야 경찰의 도움이라도 받을 수 있잖아. 혹시라도 어머님이 정말 계획한 일이 있었는데 우연찮게 너에게 못 알려준 걸 수도 있잖아. 그러면 돌아오시겠지. 만약 무슨 일이 생기신 거라면, 우리끼리는 할 수 있는 게 없어. 무슨 수로 찾을 건데. 우선 경찰에 알리자.’


멍청해진 내게 어울리는 답변이었다. 난 그게 필요했다. 또 그 애는 우리라고 했다. 마치 사건이 시작되자마자 나와 너는 한 팀이라는 듯이. 고마웠고 감사했다. 현실적이고 적절한 답변이었고, 마른세수를 했다. 아. 난 왜 멍청해졌지. 감정에 사로잡힌 거뿐만 아니라 멍청해지기까지. 엄마가 봤으면 한참을 놀렸으리라. 어제 그 프라이팬 때보다 더. 한바탕 시원하게 웃고 나면 차분해질 감정이었지만, 겨울이었다. 시원하지 않았다. 너무나도 추웠다. 그 애는 당연하게도 그 느낌을 자기도 알고 있다는 듯이 쉽게 나를 어루만졌다.


그녀는 먼저 들고 온 것을 주섬주섬 펼쳐놓기 시작했다. 그것의 뚜껑을 열자 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랐고, 나는 그것의 향을 느낄 수 있었다. 한설의 어머니는 반찬가게를 운영하셨다. 계절의 한 철이 다가오면 그녀는 항상 대량으로 반찬을 만들고, 설이에게 우리 집까지 그 반찬들을 배달시켰다. 항상 그런 날이면 설이는 우리 집에서 늦은 시각까지 집에 가지 않고, 나와 이야기를 나누고, 책을 보기도, 또 영화를 보기도 하고 간식을 먹으며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어느 순간 밤이 찾아오면 설이의 집 앞까지 저녁 산책을 나갔다. 배웅을 하기 위함이기도, 아직 남은 이야기를 다 털어버리려 함이기도 했다. 나는 특히 그녀와 산책하는 것을 즐겼다. 그것은 아주 어린 시절부터 일상에 스며든 것들이었고, 정말로 익숙한 일들이었다. 이번에도 다르지 않았다.


마른 눈물 위로 눈동자가 꽤나 바쁘게 움직였다. 우리는 자리를 식탁 위로 옮겼고, 그녀가 가져온 것들을 정리하였다. 나는 무심코 반찬통에 담긴 채로 모든 것들을 먹으려 했으나 설이가 이를 저지했다. 설이는 다소곳하고도 정갈하게 반찬을 냉반찬을 그릇에 담고, 반찬통은 냉장고로 넣어버렸다. 그리곤 수저를 갖고 왔다. 나의 엄마도 요리를 잘했지만, 설이의 어머니는 뭐랄까 먹는 걸 거부하면 죄스러운 수준이었다. 사골국이 있었고, 그 애는 파 고명을 한 움큼 집어서 풀었고, 후추 그리고 약간 소금을 쳤다. 깍두기도 겉절이도 있었고, 장조림도 있었다. 먹음직스러웠고, 나는 수저를 들고 감사하다고 이야기했는지 기억도 안 날 정도로 올라온 것들을 해치우기 시작했다. 몰랐다. 이렇게 배가 고팠을지는. 인간은 한 번에 2개의 감각에 집중할 수 있다고 하는데, 어떤 극단적인 순간엔 또 다른 것 같았다. 눈으로는 다음에 입으로 넣을 것을 생각하고, 입으로는 씹고, 맛보았으며 코로는 또 향을 맡았고, 수저로 음식의 촉감을 느꼈다. 설이도 이를 눈치챘는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애는 그저 나를 바라보았다. 밥을 먹자마자 내게 목욕을 하라고 조언했다. 어제 씻긴 했지만 밤을 새우고 밤도 먹지 않고 여기저기 헤매던 내 몸이 그닥 깔끔하지 않은 걸 돌려 이야기하는 건가 싶었지만, 그녀는 덧붙였다.


‘일단 씻어야 그다음이 있어. 일단 따뜻한 물로 씻고 나오는 게 좋겠다.’


정말로 맞는 말이었다. 다른 것은 신경도 쓰지 못하고, 욕실로 들어갔다.

집중했다. 그 순간에 집중했다. 머리에 샴푸가 잘 묻었는지 얼굴에 있는 먼지가 다 씻겨나갔는지 그리고 몸에 남은 거품기가 얼마나 사라졌는지에 집중했다. 눈물이 나기도 했다. 어떤 습관 같은 건 아니었다. 그건 마치 말을 하지 못하는 아이의 표현과 똑같았다. 처음 느끼는 감정과 상황에 나는 울었다. 전혀 다른 어떤 걸로는 표현할 방법을 몰랐다. 적절한 타이밍에 울음이 나왔고, 그래서 나는 그 감정을 울음으로 표현했다. 그냥 그것뿐이었다.


 몸을 말리곤 욕실에서 나왔다. 차가운 바람이 느껴지지 않았다. 설이가 난방을 틀어놓은 것 같았다. 나는 그 애를 먼저 찾았다. 그 애는 내 옷을 정리해주고 있었고, 나는 그 애를 바라봤다.


‘왜, 옷이라도 입혀주랴?’

아, 겨우 가운만 걸치고 있다는 것을 깜빡했다. 옷을 꺼내 입었고, 그녀에게 물었다.

‘너 여기 계속 있어도 돼?’

‘누가 계속 있어준대?’

‘아 그렇지.. 그래 얼른 가야지.’


그녀는 특유의 목소리로 깔깔대며 웃었다. 머리를 흔들기도 하고, 나를 보고 꺄르륵 댔다.

‘당연히 있어주지. 네가 낙담하던 순간은 항상 내가 너를 위로할 자리가 나거든. 그럼 내가 네 옆에 있어야 해. 지금껏 그래왔잖아. 너도 기억할걸?’

‘아 엄마가 걱정할까 봐 그런 거면 신경 안 써도 돼. 이미 말해두었거든. 엄마도 놀라셨어. 내일 아침에 여기로 온대.’


그 애는 더 이상 웃지도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채 내 손목을 잡고 부드럽게 침대로 데리고 왔다. 밤은 부드럽게 내게 놓였고, 나는 그대로 잠에 들었다. 밤은 그렇게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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