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사랑하나요? 6화
아, 햇살이 나를 비췄다. 정오의 햇살은 그 무엇보다 강력한 힘을 갖는다. 태고의 신, 심해를 가진 바다 같은 것들과 비슷하게 강력한 힘을 가진다. 나는 그것들에 압도당하는 기분을 느끼면서도 발걸음을 옮기지 않을 수 없었다. 어제 그리고 그저께 동안 쌓인 눈의 하얀색에 햇살이 반사되기도 했다.
어쩐지 소설에서 본 경찰의 모습이 생각나기도 했다. 그들은 너무나도 끔찍한 일들을 일상적으로 겪고 있느라 일상의 실종 같은 것 특히 다 자란 성인의 실종 따위는 사건으로 생각하지도 않는 경찰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래서 나는 최대한 그들이 심각한 일로 받아들이게 하려면 어떤 식으로 이야기를 꺼내야 할지 생각하면서 발걸음을 옮겼다.
문은 열려있었고, 나는 천천히 설이와 함께 들어갔다. 안에 있는 모두가 일제히 나와 설이를 쳐다보고 무슨 일로 왔는가 추궁할까 봐 두려운 감정이 들기도 했지만 그건 정말로 멍청한 생각이었다. 내부의 한 명만이 나와 눈이 마주쳤고, 그마저도 잠시 뿐이었다. 나는 데스크로 다가갔고, 거기 앉아있는 경찰분 한 명이 응대하였다.
‘무슨 일이세요?’
너무 나긋하고 부드러운 말씨에 나는 순간 그 경찰관의 모자를 벗겨버릴 뻔했다. 혹시 대머리는 아닐까 하고 갑자기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 잠시 미친 생각을 해보고 나서야 정신을 붙잡았다. 어느 순간부터 내가 제대로 된 생각을 하지 않는 거 같은 기분이 들었지만, 붙잡은 정신으로 말을 이어나갔다.
‘엄마가 실종되신 거 같아요. 마지막으로 본 건 1월 6일 저녁이에요. 1월 7일 오전에 일어났을 때 엄마는 안 계셨어요. 같이 살고 있고, 전에 이런 일이 있진 않았어요. 연락이 안 되지도 않았고요. 아직까지 연락이 안 되세요.’
뭐랄까 그 데스크에 앉은 경찰관은 전에도 이런 일이 있었다는 듯이 쉽게 표정을 짓지 않았다. 다만 우선 안쪽에 마련된 자리에 앉으라고 했다. 그때부터 정오의 햇살같이 압도되는 분위기가 시작되었다.
나는 경찰관이 간단하다고 이야기한 간단하지 않은 서류 몇 가지를 작성하고, 엄마에 관한 인적사항도 같이 적었다. 기억하는 한 엄마의 많은 것들을 적어내려 갔다. 특징 그리고 생김새 외모 나는 꽤 많은 것을 적어 내려 갔지만 그건 간단하지 않았다. 또 더 많은 것을 적어야 하나 고민되기도 했다. 그게 문제였다. 경찰관은 이제 조금 재촉하는 것 같았고, 나는 더 많은 것을 적어야지 더 심각한 상황이라 인식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설이는 옆에서 내 등을 쓸어주었다. 기입되는 정보의 속도가 줄어들기 시작할 때 아까 그 경찰관이 다시 돌아왔고, 자리에 앉았다. 그리곤 정말 부드러운 말투로 내게 말을 건넸다.
‘혼란스러우시겠어요. 여기까지 오느라 고생하셨어요 이제 거의 다 적어가시나요?’
‘천천히 적으셔도 괜찮답니다. 여기는 핍박하고 억압하기 위해서 존재하는 곳이 아니니까요.’
놀라웠다. 나는 하마터면 법에 관해서 생각할 뻔했다. 엄마라는 중요한 문제를 눈앞에 두고도 경찰은 법을 수호하는 자가 아니던가. 하면서 마치 철학자나 사상가가 된 양 그가 왜 나에게 이런 이야기를 꺼내는지 진지하게 고민할 뻔했다. 그러나 그럴 필요는 없었다. 나는 천천히 손을 뻗었고, 그에게 종이를 건넸다.
‘전에 정말 이런 일이 없었거든요. 어떻게 이렇게 된 건지 모르겠어요. 엄마 무사하시겠죠? 그럴 분이 아니시거든요. 그래서 저는 정말…’
‘맞아요. 아닐 겁니다. 혹시라도 무슨 일이 생기신 것이라면 저희가 더욱 빠르게 찾도록 노력할 것입니다. 이미 48시간이 지나서 바로 접수가 됐고, 담당부서로 넘어갈 겁니다. 관련 자료나 다른 특이사항이 있으면 저희에게 직접 연락 주시면 됩니다. 이건 저희 부서 전화번호이고요. 이건 담당부서 전화번호입니다. 아마 집에 돌아가시면 몇 시간 내로 전화가 갈 겁니다. 몇 가지 추가적인 질문이 있을 수 있는데, 수색과 조사에 필요한 것들이라 협력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예상치도 못한 일이 실 텐데 천천히 그리고 자세하게 적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자택에 돌아가계시면 바로 연락드리겠습니다.’
나는 순식간에 얼어버렸다. 정말이지 얼어버렸다. 이렇게 엉망인 적도 없었을뿐더러, 내가 예측한 많은 것들이 모두 틀리자마자 나는 얼어버렸다. 그건 당연한 순서였다. 예상하던 것들이 모두 빗나간 것도 맞고, 무슨 일을 해야 할지 모르겠는 것도 맞았다.
설이는 그런 나를 이끌고 인사를 했다. 그리고 경찰서에서 나와선 집으로 향했다. 그 애는 잠시 부모님에게 전화하는가 싶더니 이내 내게 와서는 반갑게 웃음을 건넸다. 그건 위로의 웃음 일수도 어쩌면 정말 내 지금 초라한 모습이 웃겨서 웃었을지도 모르지만 나는 괜히 그 웃음에 힘이 났다. 처량하게도 하나의 웃음에도 힘을 얻을 수 있었다. 처량한 웃음이 얼어버린 정신을 깨부수어버렸다. 나는 전에 느끼든 내 정신의 상태를 그대로 다시 느낄 수 있었고, 그대로 다시 생각의 끈을 붙잡았다. 생산적이지 않은 모습에 환멸만 느낄 필요도 지금 놓인 상황을 제대로 직면하지 못할 필요도 없었다.
나는 정말로 그럴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서 나도 한 번 더 그 아이에게 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대로 집으로 발걸음을 옮긴 이후 바로 밥을 챙겨 먹었다. 점심은 내가 준비하였다.
먼저 고기를 볶기 시작하다가, 그대로 냄비에 된장을 집어넣었다. 그리곤 집에 남은 각종 버섯과 양파 그리고 여전히 신선해 보이는 야채들을 대충 썰어 넣었다. 물을 넣고 끓였다. 오랜만에 된장찌개를 끓이는 듯했다. 마지막에 썰어놓은 두부를 집어넣고 한소끔 더 끓였다. 냉장고에서 여러 반찬들을 꺼냈다. 먹음직스러워 보이는 것은 무엇이든 그냥 다 꺼냈다. 그리곤 밥을 퍼선 설이와 함께 밥을 먹었다. 오랜만이었다. 고기의 감칠맛 그리고 된장의 구수함이 잘 어우러진 국물맛. 탱글 하지만 부드러운 두부가 그리고 국물을 잘 머금은 야채와 버섯이 식감을 더해왔다. 밥은 더할 것 없이 맛있었다. 그래서 꽤 평화롭고 만족스러운 점심을 해치웠다.
나는 그대로 설거지를 했다. 마치 엄마가 해왔던 것처럼. 사실 딱히 바뀐 건 없었다. 오늘은 월요일이었고, 학교를 빠진 건 나나 설이나 마찬가지였다. 아. 생각이 났다. 담임 선생님께 부재중 통화가 몇 건 와있었다. 그녀에겐 내가 ‘실종상태’ 이겠구나 하면서 전화를 걸었다. 대뜸 전화를 걸자마자 나는 이상하게 기침이 나와버렸다. 공기가 차가워서인지 아까 된장찌개에 넣은 고춧가루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기침이 나왔고, 선생님은 바로 그에 대한 답변을 주었다.
수화기 너머에서는 ‘그래 아픈가 보구나 많이 아프니? 졸업식이 내일인데, 내일은 나올 수 있겠니?’
나는 얼버무렸다. 못 나가겠다는 부정도, 나갈 수 있다는 긍정도 아니었지만 어찌 됐건 선생님께는 부정의. 의미로 들렸나 보다. 마치 내가 너무 심한 열병에 걸려서 잠시 언어에 마비가 왔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조금 곁들였나 보다. 그러곤 다시 내게 말했다.
‘그래 그게 문제니. 빨리 몸을 회복하는 게 먼저이긴 하지. 얼른 낫길 바란다. 그래도 내일 나올 수 있다면 나오는 게 좋겠구나. 선생님도 그렇고 다른 네 친구들도 아쉬워할 거 같아.’
사실 나는 지금이라도 학교에 가도 되는가 하는 심정으로 전화를 걸었는데, 너무 아픈 나머지 집에서 골골대며 시간을 썩히고 있는 불쌍한 아이로 남아버렸다. 또 심지어는 내일도 나가지 못하는 몸상태를 가지고 선생님께 겨우 전화를 건넨 여러모로 처량해 보이는 애로 보인 거 같았지만, 지금 내 생각에 무엇이건 상관없었다. 거짓말을 한 건 아니지만 어찌 되었건 학교에 가지 않아도 되는 정당한 요건을 만족했고, 마저 설거지를 했다. 설이에게 물었다.
‘너 학교 안 가도 괜찮아?’
‘그럼. 나야 뭐. 나한테 혹시 개근상을 바라는 거 아니냐고 물어볼 생각이었니. 그런 거라면 너 머리가 정말 잘못된 걸 수도 있어.’
‘그렇지. 그런 거 같아. 그런데 이제 갑자기 괜찮아졌어.’
‘흠.. 그래? 그렇다면 나야 기쁘네. 그래도 빨리 어머님이 돌아오셔야 하는데 말이야.’
나는 설거지를 부리나케 마치며 오늘 하루쯤은 설이와 함께 더 있어도 괜찮다는 생각에 저녁에 무엇을 먹을까 고민했다. 그리고 내일 일어난다면 같이 졸업식에 갈 생각을 했다. 조금은 무섭지만 그래도 괜찮았다. 나는 슬픔에 잠기는 것에 권태를 느꼈고, 이번엔 설이의 얼굴을 보곤 아무 이유 없이 웃음을 터트려버렸다. 한바탕 아니 꽤 되는 잠깐의 시간 동안 크게 웃었다. 그리곤 말했다.
‘고마워 덕분에 정신이 드는 거 같아. 그런데 네 얼굴 꽤 웃기게 생겼다 오늘.’
‘엥 그 반대 아니고?’
나는 말없이 거울을 불쑥 내밀었다. 그 애는 나와 똑같이 한바탕 웃으며 말했다.
‘아니 내가 얘기한 건 네 정신에 관한 얘긴데, 아 아침에 안 씻어서 그래 기집애 좀 살아나더니 너무 막말하는 거 아냐?’
그녀는 말을 이으면서 끊임없이 재미를 느끼는 거 같았다. 그러면서 팔짱을 끼더니 내게 물었다.
‘그래서 오늘 네 계획이 뭔데.’
‘일단 우리 같이 영화를 보자.’
선반에서 과자를 몇 개 갖고 와서는 테이블 위에 올려두었다. 그러곤 함께 TV로 영화를 틀었다. 설이는 옆의 침대에서 잠들어버렸고, 나는 그대로 그 자리에서 나와 내가 앉은자리와 테이블을 정리해 두었다. 설이가 깨지 않게 조심스레 몸을 움직였다. 분명 설이도 많이 피곤했으리라.
오늘 하루가 끝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이 모든 일들은 그 애도 처음 겪는 일이었을 테니. 나는 충분히 감사를 느꼈다. 불안해서 미칠 지경이었던 순간에 설이는 마치 주문을 거는 듯 내 곁에서 괜찮다는 이야기를 되뇌었으며, 물론 그저 같이 있음에도 충분히 위안이 되었겠지만 그 애는 더해서 내가 미친 듯이 웃으며 이상한 말을 할 때에도 평소에 그랬던 양 나를 대했다. 그래서 더욱 지금에 집중할 수 있었다. 너무나도 귀찮게 몰려오는 죄책감이 오후 내내 나를 괴롭혔지만 그건 그런대로 나쁘지 않았다. 나를 경각시키기에도 너무 좋았고, 덕분에 생각이 정리되기도 했으니 어찌 보면 각성제나 진통제 같은 느낌으로 작용한 것이다. 간단한 것일지 모르지만, 내게 필요하디 필요한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