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사랑하나요? 8화
나는 기울어진 몸을 그대로 내달려 그녀에게 다가갔다.
그녀의 어깨를 붙잡고 눈길을 맞췄다. 나는 어느 순간 내가 정말 무례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녀는 내가 생각한 사람이 아니었다. 나는 너무나도 잘 아는 뒷모습이라 생각한 나머지 쉽게 단정해버린 순간 비극적인 감정이 쏟아져내렸다. 천천히 그리고 완벽하게 모든 것이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나는 그 순간 역겨움을 느껴 구토를 할 뻔했다. 그리곤 무언가 안에서 화끈거리는 것이 있는 것 같아 그 공간에서 빠져나왔다. 친구들은 아직 안에 있었고, 누군가 하나 내 뒤를 쫓아 나왔고, 다른 이들은 그 애를 쫓아서 나왔다. 길거리에 나오자마자 나는 크게 한 번 시야를 넓혔고, 저녁시간이 되어가는 거리의 풍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시끄럽고, 많은 것이 넘쳐나는 것들 그리고 여러 불빛들이 순식간에 지나가면서 나는 순간 그곳에서 고립되었음을 느꼈다. 사람들이 거리에서 쏟아져 나왔으며 나는 그 발걸음 소리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였다. 그 순간 나는 더 이상 역함을 견디지 못하고 무작정 내달렸다.
조금씩 몸이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심장에서 출발한 피가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느끼게 되었고, 온몸에서 땀이 조금씩 나오기 시작했다. 숨소리가 거칠어졌다. 점점 무거워지는 다리를 나는 겨우겨우 이끌었고, 입으로도 도저히 숨을 쉬기 힘들어지기 시작했을 때에야 나는 어느 강가의 다리 앞에서 멈춰 섰다. 바람이 강하게 불어왔다. 발걸음이 흔들리고, 머리칼이 바람에 크게 휘날렸다.
어느덧 해가 완전히 져버렸고, 그때에서야 나는 온몸에서 더운 열이 올라오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너무나 더운 나머지 겉옷을 잡아 뜯어 버리듯이 벗어버렸고, 나는 한기의 얼얼함을 느꼈다. 천천히 불어오지 않는 바람, 나는 그 다리 위에서 천천히 흔들리고 있었다.
집으로 돌아왔을 때는 몸에서 열이 나고 있었다. 감기였다. 옅게 뜬 눈으로 집안을 바라봤고, 그대로 침대에 쓰러지듯이 누워버렸다. 나는 이불을 덮었고, 아프듯이 추워왔다. 추위는 아프다. 아팠다. 밤이 시작됐고, 나는 혼자였다.
어린 시절 열을 감당하지 못하여 잠에 푹 빠져버렸을 때 그때처럼 나는 다시 잠에 들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지는 감으로도 알지 못하는 것이 당연했다. 나는 잠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고, 다시 일어났을 때는 하루가 지나간 상태였다. 중간중간에 한 번씩 깨어났을 때, 물을 찾으러 나가려 했지만 팔이 그리고 손과 발이 너무 시린 나머지 이불 밖으로 나가지 못했다. 그건 꽤나 심한 고통으로 이어졌다. 단순히 추운 것만으로도 나는 고통을 느꼈다. 하루가 지나고 다시 일어났을 때, 조금 정신을 차렸다. 나는 집 안에 있는 상비약을 뒤져서 해열제를 먹었고, 몸을 씻었다. 분명 아프지 않을 때였으면 미지근하다고 느꼈을 물의 온도, 나는 그 물에서 몸을 씻어냈다. 집에 있는 간단한 밥을 대충 먹었고, 내게 온 연락을 확인할 틈도 없이 다시 잠에 빠졌다.
꿈은 순식간에 가장 편안한 것을 내게 확인시켰다. 아무것도 없이 평화로운 그 순간 꿈은 내게 그랬다. 기억나지 않았다. 단순히 편하기만 했다. 그게 전부였다. 그러나 너무나도 편한 나머지 나는 꿈에서 깨어나면 안 된다고 느꼈을 정도였고, 또 다음 날이 되었다.
배가 고팠다.
아무런 감정도 들지 않고, 무작정 배가 고팠다. 그래서 나는 곧장 주방으로 찾아가 마치 전쟁을 일으키는 군단의 병사처럼 용감하게 냉장고를 열어젖혔다. 간단하게나마 먹을 수 있을 거 같은 것은 모두 챙겨서 식탁 위로 올려버렸고, 나는 밥을 안치고 겨우 첫 술을 떴다. 휴대폰이 울렸다. 그 채이현이라는 형사였다. 나는 밥을 먹으면서 그녀의 전화를 받았다. 그녀는 내가 잠들어 있는 여러 순간에 전화를 걸어왔었던 거 같다. 그 이와 약속한 시간은 어제 오전 10시였고, 지금은 약속한 다음 날 오후 3시였다.
그녀는 또 괜찮은 말투와 목소리로 내가 안부를 물었고, 어떻게 된 건지 물었다. 나는 조사에 임하듯 꽤 성실하게 답했고, 그녀는 그런 내가 조금 더 편하게 답변하도록 배려하려는 눈치였다. 그녀는 내게 오늘 오후 5시도 괜찮다며 필요한 것들을 챙겨서 올 수 있냐고 이야기했다. 나는 그것이 좋겠다고 했다.
오후 5시. 나는 그녀를 찾아갔고, 생각보다 더 앳되어 보이는 얼굴에 조금 놀랐지만 원래의 생각이 너무나 많은 나이를 생각했던 건 아닌지 고민해 보았다. 감기가 여전히 나를 괴롭히고 있었지만, 나는 그녀의 모든 질문들에 성실하게 답해나갔다.
캘린더의 표시, 1년 전 혹은 2년 전부터 일어난 많은 일들 심지어는 아빠에 관한 이야기들까지 그리고 이후 내가 혼자 있을 때 겪었던 많은 일들이 모두 설명해야 했다. 그녀는 답변을 들으면서 내 많은 것을 지켜보았고, 심지어는 나를 당장이라도 끌어안아주고 싶어 하는 것 같이 몸을 기울였다. 그녀는 답변을 모두 듣고 난 뒤에도 타이핑을 멈추지 않았고, 나는 그 시간 동안 그녀를 관찰하였다.
은은하게 붉은빛이 도는 머리카락 그리고 긴 눈매 오똑해보이는 코, 나는 노트북 뒤로 보이는 그녀의 얼굴과 생김새를 유심히 관찰했다. 머리가 지끈거리는 동안에도 그저 계속 관찰했다. 늦은 오후에 시작된 조사가 막을 내리기 시작했고, 그녀는 꽤 많은 이야기를 덧붙였다. 마치 이런 일이 흔하지 않다는 듯이 꽤 상세하고도 자세하게 앞으로 어떤 식으로 조사와 수사가 이뤄질 것인지 알려주었고, 그동안 내가 취해야 할 태도나 생각을 설명했다. 나는 말없이 그대로 고개를 끄덕였고, 그녀가 나를 연민의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눈치챘다.
집에 돌아와서는 하염없이 지나가는 시간을 느꼈다. 시간이 흐른다는 것보다 시간을 보낸다는 것이 더 적절한 표현이었다. 왜냐면 그때 그 시간의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으니 말이다. 이따금씩 창문을 바라보긴 했지만 그건 무언가 바라는 것보단 습관에 가까웠다. 엄마를 찾아야 한다고 생각은 했으나 시간이 보내지면 보내질수록 더욱 짙어지는 생각은 엄마가 의도적으로 떠났다는 생각뿐이었다. 적어도 내가 아는 엄마는 그랬다. 이유는 알 수 없었다. 이해해보려고 했지만 오히려 그 이해하려는 시도가 반복되면 반복될수록 나는 더 아파왔다.
생각의 구조는 보통 이제 엄마가 너무 지쳐서 혼자만의 삶을 갖고 싶었다거나, 내가 다 컸으니 독립할 수 있다는 것을 이렇게 강력한 방식으로 보여주고 싶었다는 그런 여러 발상이 꼬리를 무는 구조였다. 나는 그 생각들을 반복하면 반복할수록 창문을 바라보는 시간이 길어졌다. 언젠가 사람과 세계의 관계에 대해서 들었던 적이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무관심한 세계에게 합리적인 시각을 대입하여 세계를 이해하려고 애쓰기 때문에 우리는 고통받는다고 들었다. 정말 그러하다. 엄마와 나의 관계는 세계와 사람 사이의 그 무엇과 같이 생각해야 할지 모른다. 그 생각이 들자, 나는 더 이상의 엄마에 관한 생각을 멈춰버렸다. 그건 내가 의도한 것이었고, 심지어는 내가 스스로 합리적인 결론에 도달했다고 판단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없어 보이기도 했고, 나는 엄마를 완전히 파악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게 다였다. 그리고 덧붙일 수 있는 여러 가지 논리들은 경찰에서 이미 수사가 진행되고 있다는 점. 그리고 엄마가 두고 떠난 단서가 아무것도 없다는 것 그 많은 것들이 논리에 힘을 더했고, 나는 그것을 생각의 힘이라고 믿었다. 그게 겨울의 거의 마지막 밤이 되어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