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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혜 Dec 29. 2022

2018 제주 한 달 살기

퇴사 후 떠납니다, 제주로.


; 어쩌다 제주

2017년, 스물다섯의 나는 한 대형 프랜차이즈 카페의 말단 직원으로 일하고 있었다. 3월에 입사해 마의 3,6,9 중 3과 6을 보내고 9를 앞둔 10월 어느 날이었다. 당시 습진이 너무 심해 '겨우 1년만 채우겠는데..' 싶었고, 1년 근무 후 퇴직금을 받아 휴식기를 갖기로 마음먹었다. 열심히 일한 나에게 주는 선물로, '제주 한 달 살기'를 택했고 특가로 뜬 제주행 항공권을 질러버렸다.


**마의 3,6,9 : 3개월-6개월-9개월, 3년-6년-9년 단위로 찾아온다는 직장 생활 슬럼프.



당시 엄마 아는 분께서 제주에 한 달 살기용 주택을 운영하고 계신다 해서, 거기서 한 달간 지내면 되겠다 싶었다. 마지막으로 제주에 갔던 게 중학생 때였던가? 여행을 좋아하는 나였지만, 그동안 제주를 가봐야겠다는 생각은 못 했었다. 이참에 구석구석 구경하고 오면 되겠다 싶었다. 시간은 쏜살같이 흘러갔고, 어느덧 제주행이 코앞이었다.




; 2018년 4월 3일

한 달의 시작인 4월 1일도, 월요일이었던 4월 2일도 아닌, 어딘가 애매한 화요일 3일로 출발일을 정했었다. 왜인지 모르겠는데, 그냥 이끌리듯 3일 자 티켓을 사버렸다. 그래서 이번 제주행은 내게 좀 더 의미가 있어졌달까.


그 전에는 전혀 몰랐었는데, 이번 해에 제주 4.3 사건에 대해 알게 되었다. 4월 3일 날 제주에 왔다고 하니, 제주에서 지내시는 분들이 자연스레 4.3 이야기들을 들려주셨고, 더 의미 있게 다가온 내 제주 한 달 살기의 시작이었다.


그전까지는 제주에 큰 관심도 없었다. 코로나19 이후로 하늘 길이 막히면서 국내 여행이 부흥기를 맞았지, 2018년까지만 하더라도 "제주도 갈 돈이면 조금 더 보태서 동남아를 가지." 할 정도였으니. 나 역시 제주를 '요즘 애들 수학 여행지'쯤으로 여겼던 것 같다. 바닷물 색 예쁘고 야자수 나무를 볼 수 있는 조금 특별한 국내 여행지쯤으로. 아마 지금도 여전히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많겠지.


알고 보니 제주는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당했던, 그 푸르고 예쁜 바닷물이 한때는 붉은 피로 물들었던 섬이었다. 70주년이 되어서야 겨우 육지 사람들이 그 사건을 전해 듣게 된, 통곡의 섬.




녹산로 유채꽃도로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표선면 가시리


벚꽃과 유채꽃이 만개하는 3~4월에 제주에 간다면 반드시 들러야 할 곳. 길게 뻗은 도로를 중심으로 양 옆에 벚꽃과 유채꽃이 만발해 있다.



블랑로쉐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우도면 연평리 712-1


우도의 특산물 땅콩으로 만든 아이스크림과 라테를 맛볼 수 있는 카페. 예쁜 오션뷰는 덤.




; 춥고 아픈 제주의 4월

비행기 표를 끊을 때만 해도 '4월이면 제법 따뜻하겠지?' 싶었다. 벚꽃도 일찍 피는 남쪽 지역이니까. 하지만 예상과 달리 섬의 바닷바람은 매서웠고, 꽃샘추위까지 기승을 부리는 4월이었다. 게다가 지난 1년간 만근 개근을 했던 첫 직장생활의 여독과 긴장이 풀리면서 과로에 장염까지 찾아왔다. 다행히 장롱 면허를 가지고 운전하겠다는 딸이 못 미더웠던 엄마가 1주일간 함께 제주 여행을 하겠다고 같이 날아왔기에 죽이라도 입에 댈 수 있었던 나날이었다.


'퇴사' '제주'. 얼마나 이상적인 단어들인가? 꽃 같은 앞날이 펼쳐질 줄 알았는데, 나를 기다리고 있던 건 추위와 아픔이었다. 게다가 1주일이 지나 엄마도 떠나버리고, 나만 덩그러니 남아버렸다. 내가 생각했던 제주 한 달 살기는 이런 게 아니었는데..?




; 그래도 어떡해 해야지

'이참에 배낭여행을 해보자!'하고 커다란 배낭 하나를 둘러메고 나섰다. 빌렸던 렌터카도 엄마를 공항에 데려다주며 반납했기에, 버스를 타고 뚜벅이 여행을 시작했다. 한 달 동안 지낼 집이 있었지만, 게스트하우스에서 묵으며 사장님이 추천해주신 맛집에도 다녀왔다.


제주에 왔으니 한 번쯤은 가봐야 할 것 같은 한라산 백록담도 봤다. '할 수 있을까?' 싶었는데 하면 되더라. 날씨는 점점 따뜻해지고, 내 체력도 천천히 회복해 갔다. 어느덧 제주에 온 지 2주가 되었고, 내 생일이 가까워왔다.




한라산 백록담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토평동 산15-1


삼대가 덕을 쌓아야 볼 수 있다는 한라산 백록담. 한라산을 온전히 즐기고 싶다면, 관음사-성판악 코스를 추천한다. 한라산 등반 전용 게스트하우스를 이용하면 등산 장비도 대여해 주고, 픽업과 도시락까지 준비해 준다. 성판악 코스로 내려오면서 사라오름 산정호수까지 보고 꼭 오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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