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깜짝 메달'이란 말은 실례입니다

2026년 2월 둘째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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깜짝이라뇨.. 깜짝이라뇨..?


제25회 2026 밀라노 코르티나 동계올림픽이 개막했습니다. 수많은 선수들이 오랫동안 갈고닦은 기량을 뽐내는 시간입니다. 차가운 곳에서 쏟아내는 뜨거움을 봅니다. 자연스레 감탄과 환호가 쏟아집니다.

NISI20260209_0002059749_web_20260209203808_20260209210024079.jpg 대한체육회 제공

대표적인 사례가 김상겸 선수의 스노보드 경기일 텐데요. 하지만 저는 김상겸 선수를 조명하는 기사들이 조금 불편했습니다.


스노보드 '맏형' 김상겸 깜짝 은메달(YTN)

스노보드 평행대회전 김상겸, 깜짝 은메달…우리나라 400번째 올림픽 메달 영예(KBS)

스노보드 김상겸, 은메달 '대이변'…37세 맏형이 해냈다(한국경제)

'맏형' 김상겸, 스노보드 평행 대회전 깜짝 은메달 획득(연합뉴스TV)


이 기사들의 공통점이 보이시나요. '깜짝' 메달이라는 점을 강조한 건데요. 대부분의 언론이 이런 제목을 뽑았습니다.


편집 기자의 입장에서 보면, 형용사(깜짝)를 써서 생동감을 주는 건 일종의 공식입니다. 당연합니다.


하지만 '깜짝'이라는 건 누구의 기준인가요? 김상겸 선수도 '깜짝'이라고 생각할까요? 4년간 '깜짝' 메달을 위해 피땀을 흘렸을까요?


김상겸 선수가 꽃을 피운 건 국내 첫 스노보드 실업팀 창단이 결정적입니다. 2010년 이후 생계 걱정 없이 온전히 훈련에만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된 건데요. 매일 새벽 6시 반에 일어나 5~6시간씩 숨이 끊어질 듯 훈련하고 2시간씩 영상 분석을 했습니다. 휴식을 위해 10시간씩 잠을 자는 컨디션 관리도 병행했다고 합니다.


다시 물어보죠. 김상겸 선수의 메달을 깜짝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또 깜짝이라 그러네


NISI20260210_0021159927_web_20260210052442_20260210052522341.jpg 대한체육회 제공

못내 영 부대끼던 날들이 얼마 지나지 않아 유승은 선수가 우리나라에 또다시 메달을 안겼습니다. 나 홀로 '장하다, 유승은!'을 외칠 때, 또 그 단어가 나왔습니다.


유승은, 여자 스노보드 빅에어 '깜짝 동'…두번째 메달(TV조선)

'18세 고교생' 유승은, 스노보드 빅에어 깜짝 동메달(오마이뉴스)

18세 유승은, 스노보드 빅에어 '깜짝 銅'…한국, 이틀 연속 메달(종합)(뉴스1)


유승은 선수 스토리는 더 절절합니다.


2026021201000779100052572_20260211170418465.jpg 대한체육회 제공

지난해 12월, 유승은 선수는 올림픽 출전권이 걸린 월드컵 훈련 시작 이틀 만에 손목 골절을 당합니다. 유승은 선수는 학교를 자퇴하고, 선수 생활도 포기하려고 했습니다. 돈 때문에 더 이상 선수 생활을 지속하기도 어렵다고 판단해 엄마와 펑펑 울었다고 합니다. 유승은 선수의 마음을 다잡아 준 건 손목을 수술해 준 의사입니다. "대회에 꼭 나가게 해주겠다"고 용기를 불어넣어줬고, 손목 깁스를 한 채 올림픽 출전권을 따냈습니다. 그리고 결국 동메달까지 거머쥔 거죠.


이런 유승은 선수에게 '깜짝' 동메달을 땄다고 말해선 안 됩니다. 절망 속에서 바닥까지 찍고 올라온 분들에게 '생각보다 좋은 성적(깜짝)'이라는 말은 실례입니다. '깜짝 메달'이란 말은 언론에서 지양해야 합니다. 고생한 선수들에게 어딜 감히 '깜짝'이라고 합니까?



'유아적인 언론'이여, 각성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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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인 모범 언론으로 손꼽히는 영국의 공영방송 BBC.


이들이 그 자리에 오르기까지 몇 번의 결정적인 계기가 있었는데요. 그중의 하나가 '마가릿 대처 총리와 대립 사건'입니다.


1982년 포틀랜드 전쟁 당시, BBC는 '우리 군', '우리 정부'라고 표기하지 않고 '영국군', '영국 정부'라는 객관적인 표현을 씁니다. 이에 당시 마가릿 대처 총리가 '왜 영국 편을 들지 않느냐'며 격노했다고 알려지면서, BBC의 정치적 독립성을 나타내는 유명한 일화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언론은 어떻습니까. 객관성을 담보하는 단어를 쓰나요.


가장 주관적인 기사 행태는 별 의미 없이 '여의도 면적' 운운하는 버릇입니다.


지난 2주간 '여의도' 기준 면적을 줄줄 읊어대는 기사가 수도 없이 쏟아졌습니다.


<올해 여의도 면적 54배 토지 지적도 다시 만든다(YTN)>

<삼성물산, ‘여의도 두 배 면적’ 호주 태양광 매각… “미국 외 첫 수익화”(조선비즈)>

<'여의도 4.3배' 인천 송도 11공구 기반공사 올해 1단계 준공(연합)>


찾아가서 묻고 싶습니다. 왜 여의도 면적을 기준으로 합니까?


이 기사를 쓰는 기자는 여의도 면적이 정확히 몇 제곱미터인지 알고 있을까요? '여의도 면적이 체감하기 쉽다'는 변명은 지극히 서울 중심적인 사고방식 아닌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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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군은 커녕, 우리 진영과 우리 광고주 지키기에 급급한 언론이 아니길 바랍니다. 정치권에 물들어 '여의도 사투리'에 젖어들지 않기를 바랍니다.


피땀 서린 노력을 '깜짝 메달'이라 폄하하고, 여의도 면적을 운운하다니요. 지극히 주관적이고 게으른 태도에 이번주도 할 말을 잃었습니다.


오로지 자기 스스로만 존재 및 중시하고, 다른 것들은 가볍게 여기는 '유아적(오직 유(唯), 나 아(我))'인 언론이여, 반성하십시오. 각성하십시오.


갑작스러운 메달에 어버버하며 게으르게 '깜짝'이라고 마시길. 부디 여의도 바깥의 세상을 관찰해주시길. 선배 동료 후배 기자분들께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PS. 20240827 시사IN <여의도 안 개구리 [편집국장의 편지]>


어린 시절 여의도 면적이 몹시 궁금했다. TV 뉴스만 틀면 그 단어가 흘러나왔다. 수해 지역 규모든 도시개발 예정 용지 면적이든 웬만한 땅 넓이는 모두 ‘여의도 면적의 몇 배’로 표현됐다. 비수도권 농촌 거주 어린이는 그 표현이 마치 ‘콩 한 되’ ‘쌀 한 섬’처럼 준(準)공식적으로 쓰이는 도량형 단위 같은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어떤 장소가 얼마나 넓은지를 가늠하고 남에게 설명하고 싶을 때면 계산기를 옆에 끼고 꼭 여의도 면적(2.9㎢)으로 나눠보곤 했다. 여의도 땅을 한 번도 밟아본 적이 없는데도.

나중에야 깨닫게 됐다. 그냥 그건 방송사 기자들이 죄다 서울 여의도에서 일하기 때문에 생긴 표현이라는 걸. 자신들이 익숙한 지역이라 편하게 갖다 썼을 거고 자주 교류하는 취재원들 역시 여의도를 포함한 서울 지형에 익숙한 서울 사람들일 테니 여의도 면적을 표준 단위라도 되는 듯 써도 아무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했으리라. 문제는 그 가짜 표준이 진짜 표준, 보편적 잣대인 것처럼 둔갑한다는 사실이다. 여의도와 아무 관련 없는 시골 어린이가 표준 도량형인 줄 알고 따라 쓸 정도로.

목소리가 들려야만 그 실체가 존재한다는 착각은 무지할 뿐 아니라 대단히 위험하기까지 하다. 내가 어디에 살고, 내 옆에 누가 있으며, 내 귀에 들리는 목소리가 어떤 이들의 목소리인지를 끊임없이 ‘관찰’하지 않으면 여의도 면적 같은 우물 안에 갇혀 뱅뱅 돌 수밖에 없다. 그 가짜 준거가 시나브로 보편과 상식, 때때로 공정과 정의의 외피까지 쓰고 돌아다니지 않도록, 부단히 ‘여의도 면적’ 바깥의 세상을 살펴볼 일이다.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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