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다섯째 주
얼음을 나르는 사람들은 얼음의 온도를 잘 잊고
대장장이는 불의 온도를 잘 잊는다
허연 <내가 원하는 천사> 中
얼음과 불은 분명 양극단에 있습니다.
그래서 얼음을 나르는 사람들과 대장장이는 괴리됩니다.
괴리. 어그러질 괴(乖)를 씁니다.
괴리, 괴상, 괴팍 할 때 '괴'입니다.
괜한 괴리를 지켜본 한 주였습니다.
이번주엔 기자들과 여의도에서 송년회를 했습니다. 분위기가 한창 무르익었을 무렵이었습니다.
괜찮아. 너 열심히 살았잖아
그러니까, 이 얘기를 해준 건 경제지 기자였습니다.
같이 인턴을 하고, 지금은 경제지 기자가 된 그녀가 건넨 뜬금없는 응원이었죠.
남의 입으로 그런 말을 듣는 건 못내 겸연쩍었지만 딱히 부정할 수도 없었습니다. '누나와 내 삶은 서로 분명히 괴리돼 있었는데...'라고 생각할 틈도 없었습니다. 거리낌 없는 돌직구에 얼어버린 타자처럼 멍하게 앉아있었을 뿐이었죠.
지난주 언론사 필기 시험장에서 우연히 제가 아는 언시생을 만났습니다. 우연 of 우연으로 그녀는 제 바로 뒷자리에 앉아 필기시험을 쳤습니다. 끝나고 나오는 길에 몇 마디 대화를 나눴습니다. 끝엔 이런 말도 덧붙였죠.
- 와, 오빠 진짜 열심히 사네?
-...
또다시 '한 사람'조차 되지 못'한 사람'이 되어버렸습니다.
재수해서 제가 다니던 대학에 1년 후배로 입학한 고등학교 친구가 있습니다. 그때도 연말 송년회였습니다.
- 이제 와서 얘기하지만, 난 너가 서울대 갈 줄 알았어.
-... 뭐래
- 공부밖에 안 하고, 심지어 잠도 안 자.
- (주위 고등학교 동창들이 일제히 끄덕끄덕 하며) 맞지.
'이제 와서 하는 얘기'는 또 있습니다. 고3 같은 반 친구와 같은 시험장에서 수능을 봤습니다. 그 친구가 저 때문에 재수를 했다고 털어놨습니다.
- 이제 와서 하는 얘기지만, 나 너 때문에 재수했어.
- 응?
- 수능 국어 치고 쉬는 시간에 너가 나한테 '망했다'고 했잖아. 그때 '아 얘는 망하면 안 되는데..' 그 생각이 영어 듣기까지 계속 드는 거야.
-...
- 진짜로 멘탈이 흔들렸다니까?
리액션을 잃고 헤매는 단 몇 초간, 제 삶을 생각합니다. '하지만 누군가 인정해 줄 정도로 열심히 살아도 결국 내 꼬락서니는 이런 걸?'이라고 말입니다.
젊은이들에게 말해주고 싶어요. 자신을 들볶지 말고 자기 한계를 긍정할 때 자존감이 회복된다고. '이래야 해'라는 기준을 세우고 그 기준에 발목 잡히지 말라고.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받아들이는 편안함이 있다고. 나는 세상에 하나뿐이라고. 익히 들은 말일 수 있겠지만, 정말로 그렇다고.
장명숙(밀라논나), 이경신 <오롯이 내 인생이잖아요> 中
여의도 송년회는 새벽이 다 되어서야 끝이 났습니다. 현직 기자들의 '스터디할 때, 너가 글 쓰는 거 보고 벽 느꼈을 정도로 잘 썼다'거나 '기자 하면 잘하겠다'거나 '벌써부터 앵커랑 대담하는 장면이 상상된다'라는 말을 뒤로할 때쯤엔 치킨집에 아무도 남아있지 않았죠. 새벽 1시. 각자 집에 가기 위해 짐을 챙기고 나왔습니다.
거짓말처럼, 첫눈이 휘날리고 있었습니다. 모두 택시를 타고 집에 갔습니다. 전 혼자 지하철 막차에 몸을 실었습니다. 몇 시간 뒤에 출근을 해야 하지만, 조금은 늦게 들어가도 괜찮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사회학과 출신 어느 사업가가 했던 말도 곱씹으면서요. '한국사람들은 자기 탓을 많이 한다. 당신 잘못이 아니라고, 사회도 잘못이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게 사회학이다. 사회학은 위로의 학문이다.'
아, 사회학을 복수 전공한 건 접니다. 남들이 아니라.
위로 받는 사회학과 출신입니다.
2023년 12월 8일(금)에도 눈이 왔습니다. 전 대학생이었고, 취업준비를 하고 있었죠. 학생회관 2층 자동문 버튼엔 이런 문구가 있었습니다. '합격의 문. 이 문을 여는 학생은 모든 시험에 합격합니다.'
뭐, 나름대로 생각한 잔꾀였겠죠. 피식 웃고 말았던 그 자동문을 사진 찍어뒀습니다. 혹시 몰라서요. 괜히 담아두면 좋을 것 같아서요.
계단을 올라 밖으로 나갔을 때, 그때도 눈이 펄펄 내리고 있었습니다. 올해처럼요. 그날 써놨던 글이 있습니다.
눈이 왔다. 정말 거짓말처럼 갑자기. 뜬금없이 눈이 펄펄 내렸다. 이상했다. 나보다 자연이 더 극성맞은 게 아닐까. 이제 12월이라고, 진짜 겨울이 왔으니 단단히 준비하라고 충고하는 걸까. 이제 2023년은 채 30일도 남지 않았다. 황혼을 맞은 솔로몬은 '모든 것이 다 때가 있다'*고 했다. 지금은 어떤 때일까. 어떤 때여야 할까. 어떤 때가 다가올까.
2024년 11월 첫눈이 내린 주, 작년과 같은 성경 구절을 펼쳐봅니다.
이제는 옅게나마 답할 수 있겠습니다.
그게 어떤 때든 전혀 상관없다고,
열심히 사는 내 하루에 꼬리표를 달아주지 말자고,
여느 때처럼 주어진 하루를 성실히 채워나가자고 말입니다.
퍼퍼위** 하면서요.
* 범사에 기한이 있고 천하만사가 다 때가 있나니.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 심을 때가 있고 심은 것을 뽑을 때가 있으며. 죽일 때가 있고 치료할 때가 있으며 헐 때가 있고 세울 때가 있으며. 울 때가 있고 웃을 때가 있으며 슬퍼할 때가 있고 춤출 때가 있으며. 돌을 던져 버릴 때가 있고 돌을 거둘 때가 있으며 안을 때가 있고 안는 일을 멀리 할 때가 있으며. 찾을 때가 있고 잃을 때가 있으며 지킬 때가 있고 버릴 때가 있으며. 찢을 때가 있고 꿰맬 때가 있으며 잠잠할 때가 있고 말할 때가 있으며. 사랑할 때가 있고 미워할 때가 있으며 전쟁할 때가 있고 평화할 때가 있느니라.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전도서 3:1-11)
** 나는 인디언들이 잃어버린 단어 하나를 기억하고 있다. 퍼퍼위. 아메리카 원주민의 말인데, 퍼퍼위는 '버섯을 밤중에 땅에서 밀어 올리는 힘'을 뜻하는 단어다. 내가 이 단어를 발견한 것은 아메리카 원주민 부족 출신의 로빈 월 키미러가 쓴 <향모를 땋으며>라는 책에서였다. 이 단어를 만든 사람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생명을 만드는 에너지가 우리를 감싸고 있음을 알고 있었다. 그런 것이 주변에 있다고 생각하면, 그런 것을 느끼기 시작하면 더 잘 살 수 있다. 키머러가 만난 그녀 부족에서 증조할머니뻘 되는 위치를 차지하는 원주민 할머니의 말에 따르면 언어는 그냥 말이 아니라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이 담겨있는 문화다. 인디언들이 사라질 때 세상을 바라보는 가장 좋은 방식 하나가 사라져 갔다. 가끔 아침 출근길에 공원에서 '퍼퍼위'하고 속으로 한 번 속삭여본다. 밤새 생명을 키운 보이지 않는 힘에 조금 더 가까이 있고 싶어서다. 우리는 보이지 않는 힘들과 함께 힘을 낸다.
언제나 발걸음을 멈추게 하는 멋진 보름달과 별을 위한 단어들, 상처받았지만 아직 남아 있는 아름다움에 대한 단어들, 우리의 다정함, 저마다 다른 웃음에 대한 단어들, 우리가 여전히 공유하고 있는 가치에 대한 단어들, 우리 모두를 위해 창조될 새로운 커다란 단어들, 새로운 인간 가능성에 대한 단어들, 산산이 흩어진 우리를 묶어줄 단어들.
지금 우리에게는 그런 단어들이 필요하다. 우리는 이렇게 삶을 언어로 바꾼다.
정혜윤 <앞으로 올 사랑> 中
시기심이라는 말이 없는 마을이 있대요. 그 마을 사람들은 아무도 시기하지 않아요. 이게 이제 비트겐슈타인의 <말>이라는 책에 나오는 건데, 내가 쓰는 말대로 산다는 거죠. 소쉬르가 한 얘기도 비슷한데. 프랑스에는 나방이 없잖아요. 왜냐면 '나방'하고 '나비'를 프랑스 사람들은 구분하지 않아요. 둘 다 '빠삐용'이라고 얘기한다는 거죠. 사람들은 그 말에 예속되어서 살고 있기 때문에 내가 부정적인 말을 많이 하면 부정적인 삶에 예속이 되고 긍정적인 말을 많이 하면 긍정적인 삶에 예속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