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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ll or review Dec 06. 2024

우리는 비상계엄이 어떻게 가능했는지 질문해야 한다

(총정리 ver.) 2024년 12월 첫째 주

수요일 출근길은 평온했습니다. 새벽까지 잠을 설치며 뉴스 특보를 봤다는 사실과는 딴판으로 '일상적'이었습니다. 고작 3시간 전에 '비상계엄'이 해제됐었다는 말이 믿기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도저히 안녕할 수 없"었고, "영화보다 황당한 현실에 불안에 떨어야 했"으며, "거짓말이라고 생각하고 싶을 만큼 믿기 힘든 일"이 벌어졌습니다.


자세하고 친절한 설명이 없어서, 비상 계엄 관련 내용을 직접 정리했습니다. 그래서 좀 깁니다.



'계엄'이란?


우리나라에서 제일 중요한 가치는 '헌법'입니다. 그 누구도 헌법을 넘어설 수 없습니다.


헌법이 약속하고 있는 건 대략 이런 겁니다. "행복을 추구할 수 있게 해줄게(10조). 원하는 곳 아무 데나 놀러가도 돼(12조). 돈을 벌어서 재산을 불리는 것도 아무 문제없어(23조). 너가 아무리 잘못했더라도 판결이 내려지기 전까지 무죄라고 생각해(27조)."


하지만 정말 정말 급한 상황에선 어떨까요?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당장 총 들고나가서 싸워야 하는데 너도나도 '행복을 추구하겠다'고 우기면 안 되겠죠. 그래서 '정말 어쩔 수 없을 때를 대비'해서 헌법 77조와 '계엄법'을 따로 만들어뒀습니다. 헌법 77조에는 대략적인 내용을, 계엄법에는 자세한 내용을 적어둔 겁니다.


계엄은 경계할 때 '계(戒)'와 엄하다 할 때 '엄(嚴)'을 합친 표현입니다. 엄하게 경계해야 할 때를 대비해 두고 만든 말입니다. 영어로 이해하면 조금 더 쉽습니다. 계엄법은 영어로 'Martial law'입니다. 여기서 Martial은 '전쟁의(에 적합한)', '호전적인(warlike)', '군인다운'이라는 뜻입니다.


그렇습니다. 모두 '전쟁'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계엄법을 만든 이유(제정 이유)'에도 이런 말이 있습니다.(심지어 얼마나 이 법에 관심이 없었으면 제정사유에 '수삭'이라는 오타를 그대로 내버려둘 정도였을까요. '수삭'이 아니라 '수색'입니다.)


전시·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에 대처하기 위하여 계엄을 선포하고 군사상 필요한 때에는 체포·수삭·언론·집회 기타 단체행동 등에 관하여 특별한 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하려는 것임.



언제 계엄을 선포하나?


쉽게 말하자면 3가지 경우에 '특별 조치'를 하려고 만들었다는 겁니다.

 

1. '전쟁이 벌어졌을 때(전시)'

2. '전쟁은 아니지만 경찰의 힘으로는 도저히 막을 수 없어 강제로 힘을 사용해야 할 때(사변)'

3. '그 정도로 아주 심각한 비상 상황일 때(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


이 3가지 경우에 계엄을 내릴 수 있습니다.

이런 상황을 앞으로 '졸라 심각한 상황'이라고 얘기하겠습니다.


실제로 비상계엄이 선포된 시기를 보면 이른바 '졸라 심각한 상황'이 어떤 건지 대충 유추할 수 있습니다. 대한민국 역사상 비상계엄 선포는 총 13번입니다.


1948년: 여순사건 및 제주 4.3

1950년: 6.25 전쟁

1952년: 부산 정치 파동

1960년: 4.19 혁명

1961년: 5.16 군사쿠데타

1964년: 6.3 항쟁

1972년: 10월 유신

1979년: 부마 항쟁, 10.26 사태


계엄은 두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바로 '비상계엄'과 '경계 계엄' 입니다.


먼저 경계 계엄은 대통령이 '졸라 심각한 상황'에서 '경찰이 시민들을 안전하게 보호(치안)할 수 없는 경우'라고 판단하면 발동할 수 있습니다.


비상계엄은 한 발 더 나가야 합니다. 그 '졸라 심각한 상황'에서 '사회가 극도로 어지러워 (경찰은 커녕) 도저히 대통령 일을 할 수 없을 때' 발동합니다. 경찰이 시민들을 보호하는 걸 넘어서서, 경찰이 아닌 '군인이 필요한 경우'에 비상계엄(계엄법 2조)을 결정합니다. 그렇게 동원되는 군인을 '계엄군'이라고 부릅니다.



계엄이 선포되면 어떻게 되나?


자, 비상계엄이 선포됐다고 칩시다. 그러면 어떻게 되는 걸까요?


비상계엄이 선포되면, 계엄군이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투입됩니다. 대통령이 4 스타 군인 중에 1명을 계엄군 총책임자(계엄사령관)로 지명합니다. 그 책임자가 군사상 필요한 경우 '특별한 조치'를 통해 헌법을 넘어설 수 있게 됩니다.


특별한 조치라는 건 이런 겁니다. 이를테면 '마음대로 체포해서 감옥에 넣'을 수도, '함부로 말하지 못하도록 통제'할 수도, '필요한 물건을 마음대로 가져다 쓰거나 파괴'할 수 있습니다(계엄법 9조).



계엄은 어떻게 해제하나?


끔찍하죠. 영원히 계엄 상태로 살 순 없을 겁니다. 언젠간 계엄을 해제해야 합니다. 그러면 계엄을 어떻게 해제할 수 있을까요.


방법은 크게 두 가지(사실상 한 가지)입니다(계엄법 11조).


1. '다시 평상상태로 회복됐을 때'

2. '국회가 해제하라고 요구하는 경우'


이 두 가지 '계엄 해제' '질질 끌지 말고 즉시(지체 없이)' 해야 합니다(계엄법 11조).


(평상시를 회복했을 때는 대통령이 스스로 해제하는 거니까 그렇다 치고) 여기서 질문. '그럼 국회는 도대체 어떻게 계엄 해제를 요구할까요?


바로 '국회의원 300명 중 151명 이상(재적의원 과반수)' "계엄 해제하세요!"라고 하면 됩니다. '계엄 해제 할까요, 말까요?'를 투표해서 151명 이상 찬성하면 해제되는 거죠.


그럼 이렇게 생각해 봅시다. '국회의원이 계엄을 해제하지 못하도록 막아 버리고, 아직 평상 상태로 회복되지 않았다고 우기면 영원히 계엄이 유지되겠네?' 맞습니다.


그래서 대통령이 계엄을 선포하면 곧바로 그 사실을 국회에 바로 알려야 한다(통고)고 적어놨습니다(헌법 77조). 계엄 선포를 국회에 알렸을 때, 계엄을 해제할 수 있는 국회의원을 함부로 잡아갈(체포 또는 구금) 수도 없습니다(계엄법 13조). 쉽게 말해 계엄을 해제할 수 있는 '국회'와 '국회의원'은 건드리지 않고 놔둬야 하는 겁니다.



실화: 비상계엄 선포됨


자, 본격적인 얘기는 여기서부터 입니다.

https://www.youtube.com/live/ptSK_EhQltU?feature=shared

지난 화요일 밤 10시 25분, 우리나라에 바로 그 '비상계엄'이 선포됐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비상계엄을 선포하는 이유를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저는 대통령으로서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국민 여러분께 호소드립니다.

지금까지 국회는 우리 정부 출범 이후 22건의 정부 관료 탄핵 소추를 발의하였으며, 지난 6월 22대 국회 출범 이후에도 10명째 탄핵을 추진 중에 있습니다. 이것은 세계 어느 나라에도 유례가 없을 뿐 아니라 우리나라 건국 이후에 전혀 유례가 없던 상황입니다. 판사를 겁박하고 다수의 검사를 탄핵하는 등 사법 업무를 마비시키고, 행안부 장관 탄핵, 방통위원장 탄핵, 감사원장 탄핵, 국방 장관 탄핵 시도 등으로 행정부마저 마비시키고 있습니다.

국가 예산 처리도 국가 본질 기능과 마약범죄 단속, 민생 치안 유지를 위한 모든 주요 예산을 전액 삭감하여 국가 본질 기능을 훼손하고 대한민국을 마약 천국, 민생 치안 공황 상태로 만들었습니다. 민주당은 내년도 예산에서 재해대책 예비비 1조원, 아이돌봄 지원 수당 384억원, 청년 일자리, 심해 가스전 개발 사업 등 4조1천억원을 삭감하였습니다. 심지어 군 초급간부 봉급과 수당 인상, 당직 근무비 인상 등 군 간부 처우 개선비조차 제동을 걸었습니다.

이러한 예산 폭거는 한마디로 대한민국 국가 재정을 농락하는 것입니다. 예산까지도 오로지 정쟁의 수단으로 이용하는 이러한 민주당의 입법 독재는 예산 탄핵까지도 서슴지 않았습니다. 국정은 마비되고 국민들의 한숨은 늘어나고 있습니다.

이는 자유대한민국의 헌정질서를 짓밟고, 헌법과 법에 의해 세워진 정당한 국가기관을 교란시키는 것으로써, 내란을 획책하는 명백한 반국가 행위입니다. 국민의 삶은 안중에도 없고 오로지 탄핵과 특검, 야당 대표의 방탄으로 국정이 마비 상태에 있습니다.

지금 우리 국회는 범죄자 집단의 소굴이 되었고, 입법 독재를 통해 국가의 사법·행정 시스템을 마비시키고,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전복을 기도하고 있습니다. 자유민주주의의 기반이 되어야 할 국회가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붕괴시키는 괴물이 된 것입니다.

지금 대한민국은 당장 무너져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의 풍전등화의 운명에 처해 있습니다. 친애하는 국민 여러분, 저는 북한 공산 세력의 위협으로부터 자유대한민국을 수호하고 우리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약탈하고 있는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들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합니다. 저는 이 비상계엄을 통해 망국의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는 자유 대한민국을 재건하고 지켜낼 것입니다.

이를 위해 저는 지금까지 패악질을 일삼은 망국의 원흉 반국가 세력을 반드시 척결하겠습니다. 이는 체제 전복을 노리는 반국가 세력의 준동으로부터 국민의 자유와 안전, 그리고 국가 지속 가능성을 보장하며, 미래 세대에게 제대로 된 나라를 물려주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입니다.

저는 가능한 한 빠른 시간 내에 반국가 세력을 척결하고 국가를 정상화 시키겠습니다. 계엄 선포로 인해 자유대한민국 헌법 가치를 믿고 따라주신 선량한 국민들께 다소의 불편이 있겠습니다마는, 이러한 불편을 최소화하는 데 주력할 것입니다. 이와 같은 조치는 자유대한민국의 영속성을 위해 부득이한 것이며, 대한민국이 국제사회에서 책임과 기여를 다한다는 대외 정책 기조에는 아무런 변함이 없습니다.

대통령으로서 국민 여러분께 간곡히 호소드립니다. 저는 오로지 국민 여러분만 믿고 신명을 바쳐 자유 대한민국을 지켜낼 것입니다. 저를 믿어주십시오. 감사합니다.


세 줄로 요약하자면 이런 말입니다.


1. 자유 대한민국 내부에 반국가 세력이 있다.

2. 이 반국가 세력이 대한민국 체제를 갈아엎으려고 한다.

3. 대통령은 이러한 반국가 세력으로부터 국민들의 안전을 지키겠다.


이때부터 모든 방송사가 뉴스 특보를 시작합니다. 기자들이 국회와 대통령실 앞으로 뛰어가기 시작합니다.


30분 뒤인 23시. 육군참모총장 박안수 이름으로 계엄사 명령(포고령)이 떨어집니다. '전군 비상경계태세'도 발령됩니다. 본격적이고 공식적으로 군대가 움직이기 시작한 겁니다.


그 내용도 그대로 인용합니다. 꼭 한번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자유대한민국 내부에 암약하고 있는 반국가세력의 대한민국 체제전복 위협으로부터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고, 국민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2024년 12월 3일 23:00부로 대한민국 전역에 다음 사항을 포고합니다.

국회와 지방의회, 정당의 활동과 정치적 결사, 집회, 시위 등 일체의 정치활동을 금한다.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부정하거나, 전복을 기도하는 일체의 행위를 금하고, 가짜뉴스, 여론조작, 허위선동을 금한다.

모든 언론과 출판은 계엄사의 통제를 받는다.

사회혼란을 조장하는 파업, 태업, 집회행위를 금한다.

전공의를 비롯하여 파업 중이거나 의료현장을 이탈한 모든 의료인은 48시간 내 본업에 복귀하여 충실히 근무하고 위반 시는 계엄법에 의해 처단한다.

반국가세력 등 체제전복세력을 제외한 선량한 일반 국민들은 일상생활에 불편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조치한다.

이상의 포고령 위반자에 대해서는 대한민국 계엄법 제9조(계엄사령관 특별조치권)에 의하여 영장 없이 체포, 구금, 압수수색을 할 수 있으며, 계엄법 제14조(벌칙)에 의하여 처단한다.

2024.12.3.(화) 계엄사령관 육군대장 박안수


같은 시각인 23시쯤, '국회의장 긴급 공지'가 전달됩니다. 우원식 국회의장은 "모든 국회의원들은 본회의장으로 모여달라"고 전달합니다. 어쩌면 계엄을 되돌릴 수 있는 처음이자 마지막 기회. 계엄을 해제할 수 있는 사실상 유일한 방법. '국회의원들이 모여서 계엄을 해제하자'는 겁니다.



이제부턴 시간 싸움이다


손에 땀을 쥐는 시간 싸움에 돌입합니다. 누가 먼저 국회로 모이느냐. 군인이냐, 국회의원이냐.


23시부터 국회의원들이 하나둘씩 여의도 국회의사당에 모이기 시작합니다. 아니 뛰어가기 시작합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국회로 이동하는 차 안에서 유튜브 라이브 방송을 켜 "시민들도 여의도 국회 앞으로 모여달라"고 부탁했고, 한동훈 국민의힘 당대표는 "비상계엄은 잘못된 것이며 국민과 함께 (계엄을) 막겠다"는 영상을 찍어 공유했습니다.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은 취재진과 국회의원 그리고 시민들이 한 데 뒤엉켜 아수라장으로 돌변합니다.


출처 : 연합뉴스

하지만 국회 앞에는 이미 경찰 병력이 대기 중이었고, 국회의원들은 경찰과 마주치지 않으려 국회 의사당 담을 넘어 들어갔습니다. 심지어 "본회의장으로 와달라"고 호소한 우원식 국회의장마저도 담을 넘었죠. 코미디가 아닌 실제상황이라 웃을 수도 없었습니다. 지금 체면이 중요한 게 아니니까요.


뉴스 특보를 보면서 되뇌었던 말은 하나였습니다. "빨리.. 빨리.."


마침내 장갑차가 서울 한복판에 등장했다는 전언이 들리기 시작합니다. '설마, 가짜뉴스겠지'(실제로 일부 가짜뉴스가 있었습니다)라는 생각도 잠시. 특수부대가 탑승한 군 헬기가 국회 마당에 착륙하기 시작합니다. 시각은 23시 50분. 특전사 707 특수임무단, 제1공수특전여단, 수도방위사령부 군사경찰특임대 등 280명이 국회에 들이닥칩니다.


물론 국회의장을 포함한 국회의원들도 하나둘씩 국회 본회의장에 모입니다. 4일 0시 기준, 국회 본회의장 내 국회의원 수는 약 60명. 아직 목표 인원을 채우기 위해선 90명이 더 모여야 했습니다. 국회의원 100명이 넘은 수요일 새벽 0시 29분부터 국회에서 본회의가 시작됩니다.



계엄군이 창문을 깨고 들어왔다


출처 : 뉴시스

동시에, 계엄군이 국회에 들어가기 위해 국회 의사당 창문을 깹니다. "국회의원 다 끌어내라"는 명령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국회 직원들은 소화기를 뿌리거나 출입구에 온갖 물건을 갖다 놓으며 바리케이드를 세웁니다. 국회 본회의장에 들이닥치기 전에 그야말로 극렬히 저항한 겁니다.


마침내 인원수 파악이 끝난 국회의원들은 "빨리 표결(투표)하자"고 국회의장을 닦달합니다. 우원식 국회의장은 "나도 마음이 급해요. 하지만 절차가 틀리면 안 되는 거 아닙니까"라며 국회의원들을 안심시킵니다. 하지만 국회의장 또한 못내 불안함을 떨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본격적인 투표를 시작한 건 새벽 1시. 거짓말 하나 안 보태고 국회의원들이 투표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10초도 안 됐습니다(아무리 전자투표라지만 원래는 다들 느긋하게 투표해서, 순식간에 끝나니까 조금 놀랐습니다). "투표를 시작하겠습니다"부터 "투표를 마치겠습니다"까지 걸린 시간은 15초도 안 됩니다(제가 직접 체크해 봤습니다).



계엄이 해제됐다. 국회에선. 일단.


출처 : 연합뉴스

결과는 계엄 해제. 국회 본회의장에 있는 국회의원 190명 중 찬성 190표로 국회에서 '계엄 해제 요구'가 발동됩니다. 여야 가릴 것 없는 만장일치였습니다. 대통령의 계엄 선포 이후 해제까지 150분 걸렸습니다.


경찰이 국회 앞을 버티고 있으니 우회해서 담 넘어 국회에 들어가 '계엄 해제' 안건을 만들고, 특수부대가 헬기 타고 국회에 창문 깨면서 쳐들어가니 국회 직원들이 바리케이드 세우고, 그렇게 벌어들인 시간 동안 190명이 투표하기까지 걸린 시간이 고작 150분.


우원식 국회의장은 "국회의 의결에 따라 대통령은 즉시 비상계엄을 해제해야 합니다. 이제 비상계엄 선포는 무효입니다. 국민 여러분께서는 안심하시기 바랍니다. 국회는 국민과 함께 민주주의를 지키겠습니다. 국회 경내에 들어와 있는 군경은 당장 국회 바깥으로 나가주시기 바랍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군인들은 곧 국회를 빠져나갔습니다.



대통령도 계엄을 해제했다. 일단.


출처 : YTN

한동안 보이지 않던 윤석열 대통령은 새벽 4시 20분에 다시 등장합니다. 계엄 해제 요구 이후, 약 3시간 만이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국가의 본질적 기능을 마비시키고 자유 민주주의 헌정 질서를 붕괴시키려는 반국가 세력에 맞서 결연한 구국의 의지로 비상계엄을 선포하였지만, 국회의 계엄 해제 요구가 있어 계엄 사무에 투입된 군을 철수시켰다"고 말했습니다. 대통령 계엄 선포 후, 계엄 해제까지 6시간이 걸렸습니다.


계엄이 해제되면 모든 일은 다시 평상 상태로 돌아갑니다(계엄법 12조). 그야말로 간밤에 나라가 한번 뒤집어졌다가 평상시로 돌아온 겁니다. 개인적인 소감을 뛰어넘어, 법적으로도 그렇다는 겁니다.



실화냐?


출처 : 슬로우 뉴스

아침 신문은 그야말로 가관이었습니다. 9개 조간신문 중 서울신문과 한겨레는 아예 호외를 발행했습니다. 심지어 한겨레는 아예 맨 뒤에 있는 사설 코너를 1면 상단으로 옮겨다 놓으면서 강하게 반응했습니다. 경향신문과 동아일보, 국민일보는 '한밤 중' 또는 '돌발'이라는 표현으로 시기를 강조했습니다. 반면 조선일보와 중앙일보는 국회에서 해제시켰다는 내용을 비중 있게 드러냈습니다. 한국일보는 아예 계엄 자체가 불법이었다는 점을 강조했군요. 아침 신문 1면들을 보다가 문득 '비현실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김미화 씨 말대로 '실화냐?'고 묻고 싶었습니다.


그러니까, 계엄은 현실에선 들을 수 없는 말이었습니다.


영화 <서울의 봄>, 한강 작가의 <소년이 온다> 같은 비현실이요.

실화를 바탕으로 해도, 각색을 통해 접하는 바로 그 비현실이요.


계엄사 명령에 나온 '선량한', '처단한다'라는 말 또한 '마피아 게임'할 때나 듣는 말이었죠. 최후의 발언을 하면서 "나 진짜 선량한 시민이야. 죽이지 마! 나를 처단하면 진짜 큰일 나!"라고 호소할 때. 그럴 때.


반면 '반국가 세력'은 여러 번 들었습니다. 김민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2년 동안 대통령이 한 번도 사용되지 않았던 개념으로서의 반국가 세력을 이미 여태까지 8번을 썼습니다. 공식석상에서."라고 말했습니다.



반국가 세력=민주당?


'반국가 세력' 얘기를 언론에서는 자세히 다루지 않는 것 같아 (지루하시겠지만) 조금만 더 자세히 얘기해 보겠습니다.


현재 법적으로 반국가 세력(혹은 반국가 단체)은 '북한'입니다.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헌법상 대한민국 영토는 한반도와 한반도 옆에 딸린 섬들(헌법 3조)입니다. 헌법상 함경북도, 평안남도 같은 곳도 대한민국 영토입니다.


따라서 엄밀한 의미로(대법 판례상) 북한은 국가가 아닙니다. '군사분계선 이북을 불법 강제 점거한 반국가 단체'입니다. 안 믿기시겠지만 대법원 판례(대법원 1991. 2. 8. 선고 90도2607 판결)가 그렇습니다(북한을 옹호하거나 배척하고자 함이 아닙니다).


실제로 우리나라가 북한이탈주민을 어떻게 대하는지 생각해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은 대한민국 국민으로 대우받습니다. 탈북한 이후, 북한이탈주민은 우리나라에서 별도로 '국적 취득 절차'를 밟지 않습니다. 대신 주민등록번호를 부여합니다. 해외에선 북한이탈주민을 대한민국 국적자로 간주해 난민 지위를 거부하기도 합니다.


정리하자면, 윤석열 대통령이 말하는 그 '반국가 세력'은 법적으로 북한을 말합니다. 그 세력이 우리나라의 틀(체제)을 뒤엎으려(전복)고 했다는 겁니다. 이때 법적인 증명 책임은 윤석열 대통령에게 있습니다. '더불어민주당=반국가 세력=북한'이라는 것을 대통령이 명확하게 증명해야 합니다.


자, 다시 계엄 선포문을 잘 읽어봅시다. 이제 안 보이던 게 보이기 시작합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말하는 반국가 세력은 더불어민주당을 의미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계엄 선포문'이라기보다는 '증명 책임 설명문'에 가깝습니다.



뭐하자는 거냐


수요일 오전부터 윤석열 대통령은 '졸라 심각한 상황'이 아니었는데도 비상계엄을 결정했다는 비판을 받습니다. 군 병력을 동원할만한 상황도 아니었고, 계엄을 선포한 뒤엔 국회에 알리지도 않았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헌법 위반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더불어민주당은 '윤석열 대통령을 탄핵하자'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국민의힘은 윤석열 대통령 탄핵에 반대하고 있고요. 뭐가 됐든 내일 저녁 7시에 국회의원 300명의 투표 결과가 나올 겁니다. 아무리 한국 정치가 '다이내믹 코리아'라고 한들, 이렇게까지 요동치는 걸 보고 싶진 않았습니다.


살면서 제 눈으로 비상계엄을 볼 줄 몰랐습니다. 제 눈으로 본, 잊히지 않는 장면 하나 더.

우리나라 대통령은 대통령 취임식에서 이런 선서를 합니다(헌법 69조).


나는 헌법을 준수하고 국가를 보위하며 조국의 평화적 통일과 국민의 자유와 복리의 증진 및 민족문화의 창달에 노력하여 대통령으로서의 직책을 성실히 수행할 것을 국민 앞에 엄숙히 선서합니다.


대통령은 헌법을 준수해야 하는데, 국가를 보호해야 하는데, 국민의 자유를 늘려야 하는데, 분명히 그렇게 하겠다고 공식적으로 선서했는데 말입니다.


도대체 2022년 5월에 전 뭘 본 것일까요. 대통령은 뭘 선서한 걸까요.


(이 내용 외에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300명이 넘는 군인이 들이닥쳤고, 환율이 요동쳤으며, 계엄 사령관이 '내가 계엄 사령관이라는 걸 뉴스 보고 알았다'거나, "해외에서 더 놀라더라"라는 내용들은 과감히 뺐습니다. 중요하지 않아서는 아닙니다.)



눙치면 안 되는 문제


유시민 작가는 <그의 운명에 대한 아주 개인적인 생각>에 이렇게 썼습니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은 정치적 사고(事故)였다. 표를 준 유권자들도 그가 이토록 무지하고 무능하고 포악한 사람인 줄은 몰랐다. 그는 대통령의 권한으로 사회적 선과 미덕을 이루고 싶어서가 아니라 대통령이 되는 것 자체를 목적으로 삼았다. 모든 불행의 원인은 잘못된 만남이다. 대한민국 대통령 자리와 인간 윤석열은 만나지 말았어야 했다. 그는 대통령직을 감당할 능력이 없다.


2024년 7월 둘째 주엔 이 말이 '과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5개월이 지난 이제는 과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NYT도 161년 만에 정정보도를 하는 마당에, 저라고 못하겠습니까. 비상계엄은 정말 심각한 판단 착오입니다. 경계 계엄도 아니고 비상계엄입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많이, 그리고 세게 넘었습니다. 비상계엄은 대충 눙치고(어떤 행동이나 말 따위를 문제 삼지 않고) 넘길 문제가 아닙니다.


헌법상 보장된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뺏을 수도 있다는 '선전포고'였습니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솔직히 국회 제대로 봉쇄하려 했으면 못 했겠나"라거나 김용현 전 국방부장관이 "중과부적(적은 수로는 대적할 수 없다)이었다"는 말 역시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제가 아는 한 기자는 당시 본인 SNS에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비상계엄 사태의 심각성을 느끼지 못하는 지인들이 있는 것 같다.

어젯밤 국회 앞 도로에서 총 든 계엄군이 내쪽으로 달려들었을 때 다리가 후들거렸다. 떨고 싶지 않은데 그게 맘처럼 잘 안 됐다. 지금도 그 감각이 지워지질 않는다. 국회 안에 있던 내 동료는 계엄군이 창문을 깨부술 때 심장이 미친듯이 뛰었다고 했다. 우리는 놀란 가슴을 뒤로한 채 사진을 찍고 기사를 썼다. 당신들에게 전하기 위해.

단순 유머나 재미로 치부할 사안이 아니다. 이제라도 정신 차리시길.


약 8년 전 칼럼 하나(20160726 중앙일보發 <우병우·진경준, 비밀은 없다>)로 오늘의 긴 이야기를 마무리하겠습니다.

생각하자. 생각하자. 생각하자. 정신 똑바로 차리고 생각하자.

생각하지 않으면 우린 또 다른 함정에 빠지고 만다.

 본질은 검찰정치다. 왜 우병우 같은 사람을 민정수석에 앉혔느냐는 물음은 핵심을 비켜간 것이다. 그는 도덕적이어서가 아니라 검찰정치를 집행할 유능한 기술자로 간택됐다. 현혹되지 않으려면 우리는 인간 진경준에 대한 분노를 넘어 그의 범죄가 어떻게 가능했느냐고 질문을 던져야 한다.

정신 똑바로 차리고 생각하자. 검찰이 바뀌지 않는 한 제2, 제3의 우병우·진경준은 계속해서 나올 것이다. 그들을 검찰정치의 아바타, 검찰권의 아바타로 만든 시스템의 책임도 끝까지 물어야 한다. 무대 뒤편에서 ‘시스템 복원’ 키를 만지작거리는 자들의 가면을 벗겨야 한다.


이렇게 바꿔말할 수 있겠습니다.


생각하자. 정신 똑바로 차리고 생각하자.
 
윤석열 대통령이 왜 비상계엄을 선포했느냐는 물음은 핵심을 비켜간 것이다.
 
우리는 비상계엄이 어떻게 가능했는지 질문을 던져야 한다.
 
우려했던 것처럼 제2, 제3의 검찰정치가 윤석열이라는 이름으로 부활했다.
 
이 복원된 시스템의 책임도 끝까지 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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