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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ll or review May 31. 2024

천사도 디테일에 있다

2024년 5월 다섯째 주

흔한 광화문의 점심시간 풍경. jpg
흔한 광화문의 점심시간 풍경. jpg

"우와 날씨 진-짜 좋다!"


잠시 숨을 돌릴 수 있는 점심시간, 연구원 대리님들과 광화문 광장을 산책하다가 저도 모르게 사진을 찍어댔습니다. 찰칵, 찰칵.


"... 이런 날에 한강에 돗자리 깔고 딱~ 누워있으면 좋겠다."

"그러게요. 요새 대학 축제 기간이기도 하고.."

"아 맞네~~ 나는 벌써 졸업한 지 한 10년 지났나?ㅎㅎ"

(꼰-감지)

"진짜 라떼는.. 대학 축제 때..."

그때부터 제가 한 말이라곤 "하하하" "아 그래요?" "우아" 밖에 없었죠.


어김없이 돌아온 축제 시즌입니다. 저 역시 얇아지는 옷의 두께감을 느끼며 수많은 연예인들의 레전드 영상들에 현혹됐죠. 잔나비 with 꽹과리부터 크러쉬의 레전드 짤 추가생성까지. 축제는 내내 이어졌습니다.


한세대·경기과학기술대(5월7일~8일), 서울대·인천대·순천향대(5월7일~9일), 가천대(5월8일), 한국외대 5월8일~9일), 이화여대·전북대(5월8일~10일), 한체대·한국항공대·한신대(5월13일~14일), 서강대(5월16일), 서울시립대(5월20일~22일), 경북대(5월21일~23일), 경희대 서울 캠퍼스(5월22일~24일), 경희대 국제캠퍼스(5월29일~30일), 고려대(5월21일~23일, 25일), 연세대(5월21일~23일, 26일), 제주대·경성대·한림대(5월21일~23일), 건국대(5월21일~24일), 협성대·단국대 죽전캠퍼스·가톨릭대(5월22일~23일), 광운대·한남대·한양대(5월22일~24일), 조선대(5월27일~29일), 중앙대(5월27일~31일), 한양대 에리카(5월28일~30일), 동국대·부산대(5월28일~30일), 아주대(5월29일~31일)


휴. 제가 졸업한 학교는 없지만, 일일이 찾아서 쓰는 것도 한 세월이네요. 이 길고 긴 축제가 마무리될 때까지 미루고 또 미뤄둔, 오늘의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Festival or Carnival?


출처 :  unsplash

흔히 축제는 두 가지의 영단어로 통용됩니다.


Festival 혹은 Carnival.


이 두 개의 유래는 각각 다릅니다.


먼저 카니발의 유래는 다소 종교적입니다. 고기를 뜻하는 스페인어 Carne에서 따온 말이기 때문인데요. 기독교엔 예수가 광야에서 40일(사순) 간 단식한 것을 따르는 '사순절' 전통이 있습니다. 이 기간 중엔 예수를 따라 자신의 삶을 회개하고 금욕 및 단식을 했죠. 사순절에 돌입하기 직전, 음식을 마음껏 먹어둬야겠죠? 따라서 '고기를 빼앗다' 혹은 '고기를 해치우다'라는 의미의 Carnislevamen 혹은 Carnisprivium에서 유래됐다는 설이 있습니다.


실제로 Carnival을 메리엄 웹스터 영영사전에 검색해 보면 "사순절 이전에 열리는 Festival"이라고 나옵니다.

A Festival held before Lent that includes music and dancing
(사순절 이전에 열리는 음악과 춤을 포함한 축제)


그렇다면 이제 Festival이라는 의미를 알아보죠. Festival은 '성대한 만찬'이라는 뜻의 feast라는 어원에서 출발합니다. 흔히 '향연'이라고도 하죠. 메리엄 웹스터 영영사전을 보면 Festival(축제)의 의미를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A Special time or event when people gather to celebrate something(사람들이 무언가를 축하하기 위해 모이는 특별한 시간이나 행사)

필요조건이 두 가지네요. 첫째, 축하할만한 '목적'이 있어야 합니다. 목적이 없다면 축제를 열 수 없겠죠. 둘째, 한날한시에 같은 공간으로 모여야 합니다.



축제는 원래 어렵다


출처 : unsplash

그러니 축제란 얼마나 어려운가요. 혹시 이 말이 마치 '바나나는 원래 하얗다'처럼 충격적인 명제로 느껴지시나요? 축제가 '즐겁다', '재미없다', '시끄럽다'도 아니고 '어렵다'니.


같은 공간에, 같은 시간에, 같은 목적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야 하니 어려운 게 당연하겠죠. '바쁘다 바빠' 현대사회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똑같은 생각을 공유하면서 한날한시에 모이는 건 그야말로 기적과 같은 일입니다.


물론 사람들이 모이기만 한다고 축제가 성료되는 건 아닙니다. 누군가는 축제를 준비해야 하죠. 어떤 음식을 세팅할 것인지, 공간을 어떻게 꾸밀 것인지, 아픈 사람이 발생하면 어떻게 할 것인지를 총 망라한 고민의 완전체를 선보입니다. 축제를 편하게 즐기는 사람은 준비한 사람의 노고를 알 턱이 없지만, 축제를 준비해 본 사람은 그 세심한 배려를 단박에 알아차립니다. 그러면서 혼자서 중얼거리는 거죠. "와.. 이거 준비하려면 얼마나 고생했을까?"


저 또한 최근 행사를 하나 열심히 준비했습니다. 새벽 5시에 스탠바이해야 하는 일정을 소화해 내느라 정신이 하나도 없었죠. 그런데 그렇게 열심히 준비한다고 해도 미처 챙기지 못한 부분이 있더라고요. 축제를 준비하는 사람들이 '완벽'이란 말을 잘 쓰지 않는 이유를 알 것 같았습니다. 대신 그들은 완벽이라는 무지개를 좇습니다. 완벽할 수 없지만, 완벽을 추구하는 '짝사랑'인 셈이죠.



클라-쓰의 디테일


출처 : SNS

이번주엔 임영웅 콘서트 진행요원의 선행이 화제가 됐습니다. 20240527 이데일리發 <임영웅이 인정한 진짜 '히어로'> 기사를 보면, 빨간 조끼를 입은 진행요원 A 씨가 거동이 불편하신 어르신을 보자마자 업고 가파른 계단을 올라 지정 자리까지 안내해 주는 영상을 샤라웃합니다. 


물론 임영웅 공연 미담이야 차고 넘칩니다. 공연장 주변에 티켓 색상별로 유도선을 깔아 둬서 바닥만 보고도 좌석을 찾아갈 수 있도록 한다든지, 에어컨이 나오는 ‘쿨링존’을 마련하거나 비가 온 전날 공연엔 모든 관객에게 방한용 우비를 증정한다든지, 축구장 잔디를 보호하기 위해 그라운드 밖으로 돌출 무대를 설치한다는 등의 이야기죠.


축제와 공연하면 빠지지 않는 인물인 싸이 또한 굉장히 비슷한 결의 이야기를 유퀴즈온더블럭에서 합니다.


"제가 쇼를 열심히 준비하는 것보다 선행돼야 하는 게, 최대한 기분 좋게 입장 동선이 정리돼야 하지 않을까. 그래서 기분이 좋은 상태에서 공연을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지하철 역에서 딱 나왔을 때 <싸이 공연장 가는길> 안내가 있고, 또 특히 공연장에서 여자 화장실 수가 항상 많이 부족하거든요. 그래서 공연장 진입하실 때 화장실 갔다 오시면서 포토존도 있고... 그래서 기분이 되게 좋은 채로 오셨으면 좋겠는 거죠."


박재상, 당신은 도덕책...


천사도 악마도, 모두 디테일에 있다



우리는 사소한 것에도 쉽게 기분이 뒤틀립니다. 마치 김수영의 시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를 떠올리게 하죠. 


왜 나는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가
 
50원짜리 갈비가 기름 덩어리만 나왔다고 분개하고
옹졸하게 분개하고

옹졸하게 반항한다
이발쟁이에게
땅 주인에게는 못하고 이발쟁이에게

구청직원에게는 못하고 동회직원에게도 못하고
야경꾼에게 20원 때문에 10원 때문에 1원 때문에
우습지 않느냐 1원 때문에

모래야 나는 얼마큼 작으냐
바람아 먼지야 풀아 나는 얼마큼 작으냐
정말 얼마큼 작으냐.....


너무 솔직해서 기억에 많이 남았던 시입니다. '한탄으로 가득한 절절한 김수영의 체념이 드러나네. 권력에 입바른 소리를 하지 못하는 지식인으로서의 절망이 담겨 있어!'를 달달 외워 시험 봤던 기억이 나네요. 


어쨌든 기분을 좋게 만들거나 불편함을 최소화하기 위해선 디테일을 챙겨야 합니다. 디테일을 챙기기 위해선 '나의 범위'를 확장시켜야 하고요. <복세편살(복잡한 세상, 편하게 살자)>이 아니라 <편세복살(편한 세상도 복잡하게 살자)>이랄까요.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는 말을 역으로 뒤집어버립시다. 악마도, 천사도 모두 디테일에 있다고. 그 디테일을 챙기는 사부작거림이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한 걸음이라 믿자고요. 저부터 그렇게 살겠습니다.


출처 : unsplash

지난 한 달간 축제를 즐길 수 있도록 뒤에서 수고하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담아 이 글을 올립니다.

아싸 그럼 저도 감사받는 거겠죠?



'노키즈 존'에 대한 피드백을 받았습니다. 노키즈존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호소하신 분이 계셨습니다. 제 글 중 오해의 소지가 있게 작성된 부분이 있는 같아 앞으로 글을 유의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지인이 "이제 브런치에 글 쓰는 거에 맛들렸다"고 웃더군요. 그만큼 열심입니다.


여러 피드백 주시면 제가 설명가능한 선에서 성심성의껏 말씀드리겠습니다. 이번주도, 다음 주도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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