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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ll or review May 17. 2024

스승과 선생의 갈림길에서

2024년 5월 셋째 주

Oh Captain, My Captain
출처 : 네이버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


오늘은 개인적인 이야기를 조금 길게 하겠습니다.



캡틴 노



제가 반장이던 고등학교 1학년 시절, 우리 반 담임이셨던 노OO 선생님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는 수많은 어록을 남겼습니다. "사람이 갑자기 변하면 뒈지는겨. 그치?", "느그들 졸업하면, 날 형이라 불러잉? Tlqk 노 형! 이렇게!" 역사를 가르치던 그는, 빠마머리(꼭 이렇게 발음해야 합니다)를 하고, 충청도 사람 특유의 능글맞음까지 장착한 '이상한 매력의 소유자'였습니다. 우리 반이 1학년 전체 12개 반 중 성적 평균 12등을 해서 꼴등 하는 건 참아도, 옆 반에 축구 지는 것은 못 참는 사람이었죠. 체벌이 금지돼도 "어제 야자 짼 쉐끼, 앞으로 나와서 엎드려"라며 출석부로 엉덩이를 후려갈기던 사람이기도 했고요.


어느 날은 갑자기 가방 검사를 하겠다고 합디다? "느그들 가방 다 책상 위로 올려" (반장도 모르는) 가방 검사에 모두가 의아해했지만, 그는 개의치 않았죠. 한 사람씩 가방을 털다가 한 친구의 가방에서 '담배'가 나왔고요. "이거 뭐여. 응? 이거 뭐여~ 담배 아녀?" 실실 웃으면서 물으니 그 친구는 대답을 대충 얼버무렸죠. "이.. 이게 뭐지..??" "이게! 담배가! 아니믄! 이건! 초콜릿이냐? 응? 초콜릿??" 머리를 한 두어 대 맞은 그 친구는 그 이후로 학교 근처에서 담배를 피우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 또한 초콜릿을 좋아해서 하루에 반 갑을 향유하던 사람이란 건 안 비밀.


1년이 지나, 고등학교 2학년으로 올라가는 겨울방학이 됐을 때쯤, 그가 야자 감독을 하다가 갑자기 공부하던 저를 불러냈던 적이 있습니다. 말도 안 하고, 검지 손가락으로 까딱까딱. 3초 간 온갖 생각을 다했죠. "설마 새벽에 영화 보려고 기숙사에서 튄 거 걸린 건가? 영화관 갔다 와서 팝콘 챙겨 온 거 제대로 안 치웠나? 누가 싸웠나? 내가 쌤이 시킨 일을 안 했나?" 저벅저벅, 저벅저벅, 저벅저벅. 끼이익 쾅. "... 반장! 고마워이. 아휴 이노무쉐끼들 웬통 다 골칫덩어리들인데.. 뭔 말인지 알지?" 


수학 문제집 한 바닥을 다 틀려서 기분이 안 좋았던 게 한 번에 완전히 회복되는 느낌이었습니다. 


"근데 쌤.. 사람이 갑자기 변하면 뒈진다고 그러셨는데.. 이렇게 갑자기.." 


"이 Tlqk! 지금 기어 오르는겨?"


갑자기 변했던 그 모습. 대학교 1학년이 되어, 그가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들은 뒤에야 그의 모습을 천천히 곱씹었습니다. 그리고, 그제야 그를 형에서 캡틴으로 바꿔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대학생이 되어 동창들끼리 의기투합해 '우리가 직접 산소를 찾아가자!'며 무작정 고속버스를 타고 청주로 떠났던 적도 있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정보는 'xx산에 묘가 있다더라'라는 전언 하나. 비가 추적추적 오는 날씨에서도 빨간 뚜껑 소주 1병을 사들고 기어이 산을 올랐습니다. 첫 번째 도전은 실패. 몇 달 뒤, 또다시 캡틴을 만나러 떠난 두 번째 방문. 산을 샅샅이 뒤져 겨우 묘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줄행랑 티처



고등학교 3학년 담임선생님 이야기도 잠깐 할게요. (제가 느끼기에) 그는 캡틴이 아니었습니다. 오로지 '대학 진학'이 최고의 목표였던 그는, 우리 반 아이들을 성적순으로 판가름했습니다.


고3 6월 모의고사를 본 직후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반장(그때도 반장이었네요)부터! 교무실로!" 2년 전과 똑같은 부름에도 제 발걸음엔 아무 생각도 녹아있지 않았습니다. 저벅저벅, 저벅저벅, 저벅저벅, 끼이익 쾅. 그리곤 툭 던져진 성적표.


"42414. 이번 모의고사 니 국수영사탐 등급이다. 수능점수로만 대학 가는 정시로는 서울권 대학? 당연히 못 간다. 자소서 기반으로 수시를 경기권까지 쓰고, 수능 최저 맞춰서 입학하는 걸 목표로 하자. 수능 때 긴장하면 모의고사보다 점수 안 나오니까..."


"......"


"... 뭐.. 너가 쓰고 싶은 대로 써도 좋은데! 내가 봤을 때는.. 쉽지 않다!" 


오기였달까요. 고3 여름방학. 기숙사 야자실 불을 가장 먼저 키면서 들어가서, 가장 마지막에 끄고 나오는 생활을 한 지 어언 2달 반이 지나고 나서 받아 든 9월 모의고사 등급 역시 43333.


굳이 고려대, 서강대 이하 수시원서 6개를 전부 서울 최상위권~상위권 대학으로 썼습니다.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았던 그에게, 제가 할 수 있는 말은 "수능.. 잘.. 볼게요! ^^"뿐이었습니다. 신탁하는 현자의 말을 거역하고 우둔한 죄인으로 전락해버린 심정이었죠.


11월이 되어서 본 수능의 등급은 32111. 태어나서 본 모든 모의고사 점수를 뛰어넘는 수준으로 잘 봤습니다. 서울권 대학을 정시로 뚫어볼 수 있을 만한 수준에, 수시로 최상위권 대학도 비벼볼 만한 상황이었죠. (천운이었겠지만) 용케 추가합격으로 서울권 대학에 입학합니다. "안녕하세요? xx대학교 입학팀입니다. 추가합격되셨다는 말씀드리려고 전화드렸습니다!" 


예비 8번, 그야말로 '문 닫고 들어간 대학'에 기뻐한 것도 잠시. 대학교 1학년이던 3월, 캠퍼스를 걷다가 그에게 전화가 옵니다. "야! 너 대학 갔다며! 왜 쌤한테 얘기를 안 해! 고등학교 실적에 연관된, 얼마나 중요한 일인데!" // "얘기하란 말씀 안 하셨잖아요" // "그래도 인마! 도리가 있어야지!" // "네. 죄송합니다." 


최소한의 안부도 묻지 않고, '대학 합격 = 너의 안부'라고 치부하는 그의 태도에 환멸을 느꼈습니다.


제 수능 등급 32111은 우리 반에서 두 번째로 잘한 성적에 불과했습니다. 


그래서였을까요. 그는 민망함 때문인지 졸업식에서 우리와 단체사진조차 찍지 않고 교무실로 줄행랑을 쳐버렸습니다. 졸업식 사진에는 저와 친구들만 방긋 웃고 있습니다. 강남 대성이니, 노량진이니 재수학원 얘기를 하더라도 '웃어야 한다'고. 재수해도 대학은 다 갈 거니까, 졸업식 사진만큼은 웃으면서 찍자고, 박살 난 분위기를 애써 수습하던 졸업식날의 분위기를 몸이 기억하고 있습니다.



스승과 선생의 갈림길


출처 : unsplash

서두가 좀 길었네요. 여느 때처럼 스승에 대한 정의부터 보겠습니다.

1. 자기를 가르쳐서 인도하는 사람.


바로 이 스승은 선생과 엄연히 다릅니다(공교롭게도 둘 다 자음이 'ㅅㅅ'이네요).

1. 학생을 가르치는 사람.


즉, 선생의 본질은 '가르치는 것'에 있다면, 스승은 단순한 가르침을 넘어, 피교육자의 '행동 변화'까지 이끌어내는 사람입니다. 실제로 국립국어원의 설명을 들어보죠.


'스승'은 자기를 가르쳐 인도하는 사람을, '선생'은 학생을 가르치는 사람을 이르는 말입니다. '스승'의 뜻을 견주어 볼 때, '선생'과 '강사'보다는 '스승'이 좀 더 포괄적인 개념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20100308 <'스승'과 '선생'의 차이> 국립국어원 답변)


그러니 스승이 더 포괄적인 개념이라는 말로, 우리는 왜 '선생님의 날'이 아닌, '스승의 날'이라고 하는지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내 인생의 스승은 세종대왕이야!'라는 하는 사람도 포용해 줄 수 있는 날인 셈입니다. 어쩌면 국립국어원은 이렇게 돌려 말하고 있는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내가 언제 초중고 선생님만 챙기라고 했어? 인생의 스승을 챙기는 날이라고 했지!


그러니 스승과 선생의 구분은 가르친 주체가 아니라 '가르침을 받는 객체에 달려 있다'는 흥미로운 사실을 알 수 있죠. '명명 권리'랄까요. "난 학생이고, 넌.. 넌.. 선생이야! 스승..스승은... 아니야!"


물론 '아무리 좋은 내용을 가르친다고 해서 스승이 되는 것도 아니'라는 점에서 뒷맛이 썩 개운치 않다는 점도 덤으로 따라옵니다.



"이거 해주면, 스승이라 해줄게. 콜?"



하지만 이런 경우라면 또 상황이 다릅니다. 


(20240515 머니투데이發) <스승의 날, 선생님 조롱한 배달앱 "OO 사주면 스승이라 부를게">


교권지킴이 인스타그램 캡처

이번주, 스승의 날을 맞아 개시한 음식 프랜차이즈의 광고 문구가 논란을 빚었습니다. "OO 사주면 스승이라 부를게~"라는 말이었습니다. 


기사에 따르면, 이 말은 '해당 음식만 사주면 스승으로 불러준다'는 느낌을 주어 '스승' 자체를 비하하고 조롱하는 것처럼 들릴 수 있었고, 교사 측은 "존중이나 억지 감사는 바라지도 않지만 이러한 비아냥은 양심이 있는 인간이라면 하지 말아야 할 짓"이라며 일침을 가했습니다. 결국 해당 업체는 사과문을 게시해야 했고요. '제가 글을 좀 더 일찍 썼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우리는 가르침을 준 분들을 '선생님'으로 대할 수도, '스승님'으로 대할 수도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상호 이익을 위한 등가적 맞교환(이른바 딜)은 요구되지 않습니다. 요구되어서도 안 됩니다.


그깟 상호이익을 위시한 '가정법'이 없어도 우리는 이미 선생님과 스승님을 구분해 왔습니다. '이 분은 선생님이고, 이 분은 스승님이야'라고 했을 때 차이를 감각적으로 알고 있습니다. 제가 고등학교 단 3년 간 느꼈었던 기억처럼 말이죠.



Gentle, Plain, Just and Resolute


그래서 오늘은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를 소환합니다. 많은 분들의 기억 속에 남는 명대사 "Oh Captain, My Captain"을 탄생시킨 명작이죠. 떠나려는 '키팅 선생'과 그를 붙잡는 어린 청춘들. 이들이 빚어내는 절절한 마지막 인사에서 사람들은 '사제의 우애'를 깨닫게 됩니다.


출처 : 네이버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

"Oh Captain, My Captain"이라는 명대사는 공연을 보던 도중 연극배우에게 암살당한 아브라함 링컨을 추모하는 휘트먼의 시에서 따온 겁니다. 그 시의 일부입니다.



오 선장님! 나의 선장님이시여! 섬뜩한 항해는 끝이 났고,

배는 모든 고난을 견뎌냈으며 우리가 찾던 보물 또한 얻었습니다.

항구에 가까우니, 종소리가 들리고 사람들은 환호합니다.

당당한 배, 불굴의 용감한 선박들은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습니다.


그러면서도, 아 가슴엔 가슴엔 가슴엔!

선장께선 싸늘히, 죽음에 쓰러지셔서,

그가 누우신 그 갑판 위에는,

아, 떨궈지는 붉은 방울방울만이.


아 선장! 나의 선장이시여! 일어나시어 종소리를 들으세요.

일어나시어, 당신을 위해 깃발은 나부끼고 나팔이 울립니다.

당신을 위해 꽃과 매듭으로 화관이, 해안가의 무리가 지어졌고,

당신을 위해 그들이 부르고 다 함께 손 흔들며, 열렬한 면면들이 요동칩니다.


해안가여, 환호하라! 쇠북이여, 울리거라!

해도 나는 비애에 젖은 발걸음으로,

선장께서 싸늘히, 죽음에 쓰러지셔,

누우신 그 갑판 위를 거닐 것이라.


<O Captain! My Captain!> by  Walt Whitman



링컨을 향한 휘트먼의 굳센 충성심이 느껴지는 시입니다. 이런 휘트먼은 링컨을 이렇게 표현하기도 합니다.


또 다른 시 <This Dust Was Once the Man(이 흙은 한 때 그 사람이었다)>를 보겠습니다.


This dust Was Once the Man, Gentle, Plain, Just and Resolute, under whose cautious hand. 

(이 흙은 한 때 그 사람이었으니, 그 세심한 손길 아래에서 온화하고, 솔직하고, 정의롭고, 의연했다.)


한 줌의 흙으로 돌아간 링컨에게 보내는 시인 휘트먼의 찬사는 이렇게 4가지로 압축됩니다.



그래서 저는, 이제야, 제 스승을 향해, 오늘의 이 길고 긴 이야기의 마무리를 지어볼까 합니다.

출처 : unsplash

노 스승님.


당신은 선생이기 이전에 스승이셨고, 스승이기 이전에 선생이셨습니다.

당신은 그 누구보다 솔직하고, 정의롭고, 의연했습니다.

물론 온화하진 않았죠.


그러나 그것은 '당신의 스승 됨'을 깎아내리는 흠결이 아닙니다.

그저 당신과 링컨이 같지 않다는 단 하나의 차이점일 뿐입니다.


그 대신 당신은 열정적이었습니다. 그 열정을 배워, 제 인생의 값진 동력으로 사용했습니다.

먹고 살기 바쁘단 핑계로 10번의 사계절 동안 당신을 잊고 살았습니다.

이제 늦게나마 안부를 묻습니다.

언제나 그래오셨듯, 하늘에서도 부디 안녕하시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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