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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ll or review May 10. 2024

어린이날과 어버이날이 붙어있는 건 축복일까 비극일까

2024년 5월 둘째 주

어린이날과 어버이날이 붙어있는 건 축복일까 비극일까
출처 : unsplash

너무나도 어리석고 간단한 질문이지만, 한동안 머리를 싸매고 생각했습니다. 고작 이틀의 기간을 사이에 둔 <어른과 어린이의 자존심 싸움> 같은 느낌이랄까요.


그래도 '어린이의 편'을 들어주는 게 맞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린이와 어버이날이 서로 붙어있는 건, '온전히 축하받아야 할 어린이날의 관심이 분산되는 비극'이라고, 생각하기로 결정한 겁니다.


어른들은 모두 어린이였으니까요. 생텍쥐페리가 <어린 왕자>의 서문에서 말했던 것처럼 말이죠.

출처 : unsplash
어른들은 모두 처음에는 어린이였다. 그러나 대부분 그것을 기억하지 못한다.


오늘은 바로 이 '어린이날'과 '모두 어린이였던, 어버이들의 날'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정부 "법대로 행사 개최합니다"



매년 반복되는 어린이날과 어버이날. 정부는 매년 5월, 꼬박꼬박 돌아오는 이 기념일마다 행사를 열 수 있습니다. 법에 쓰여있기 때문입니다.


'..?? 행사를 법적으로 규정해 놨다고?'
'우리 집에서도 대충 넘어가는 날을 국가가 책임지고 행사를 연다니..'

이상하게 생각하실 수도 있겠습니다.


각종 기념일 등에 관한 규정(기념일규정)을 보면, 어린이날과 어버이날 '행사의 목적'이 쓰여있습니다.


주무부처는 '보건복지부'

어린이들을 옳고, 슬기롭게, 씩씩하게 자라도록 하기 위한
행사를 한다(2024년, 어린이날)

조상과 어버이에 대한 은혜를 헤아리고,
어른과 노인 보호와 관련된 행사를 한다(2024년, 어버이날).

"어린이날엔 어린이가 ①올바르고 ②슬기롭고 ③씩씩하게 자라기 위한 행사를 하고,

어버이날에는 조상과 어버이에 ④감사하고, ⑤어른과 노인 보호 관련 행사를 해!"라는 건데요.


어린이날의 목적이 단순히 선물 주고, 칭찬해 주는 게 아니라는 겁니다. 물론 어버이날의 목적 또한 카네이션을 사거나 "엄마 아빠 사랑해요" 편지 쓰기에 급급한 날이어선 안 된다는 의미겠죠.


그러면 '도대체 어떻게 어린이를 ①올바르고 ②슬기롭고 ③씩씩하게 자라나게 도울 수 있지?'라는 생각이 자연스레 따라붙습니다. '뭐가 옳은'지, '어떤 모습이 슬기로운 모습'인지, '어떤 태도가 씩씩한 것'인지 사회적으로 명확히 합의된 게 없으니까요. 


그런데 최소한 아이들에게 "xx아, 국영수를 잘해야 의대에 갈 수 있단다. 공부 열심히 하렴", "공부 못하면 더울 때 더운 데서 일하고, 추울 때 추운 데서 일한다"처럼 우리 사회에서 널리 통용되는 말은 ①, ②, ③ 모두를 위반하는 말이라는 건 알 수 있습니다.  



'우리 사회는 어떻게 변해왔나' by 기념일



기념일규정도 [시대의 흐름]에 발맞추고 있습니다.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한 발짝씩 뒤따라오고 있었죠.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7-80년대 당시 기념일규정엔 이렇게 쓰여있었습니다. 


사랑과 불우아동에 대한 구호 등으로
어린이의 건전한 성장에 관련된 행사를 한다(1982년, 어린이날).
조상과 어버이에 대한 은혜를 헤아리고
어른과 노인에 대한 존경과 보호에 관련된 행사를 한다(1973년, 어버이날).


어떤가요? 차이점이 느껴지시나요?


당시 <어린이날>의 목적은 아이들을 잘 성장시키는 것이 목적이었습니다. "무럭무럭 쑥쑥 커라!"가 통용되던 시기였달까요. 그렇기에 가정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을 돕는 불우아동 구호가 전면에 있었습니다. 올바르고, 슬기롭고, 씩씩한 아이를 길러내는 건 그야말로 '먼 나라 이웃나라' 얘기였던 셈입니다. 그런 아이들이 이제 다 큰 어른이 되었겠네요.


<어버이날> 역시 바뀌었습니다. 오늘날과 비교한다면 한 단어가 빠졌죠. 바로 '존경'입니다. 


출처 : unsplash

이 대목에서 3가지 생각이 들었습니다.


1. "하긴 어른을 존경해야 한다는 도덕을 법으로 규정할 수는 없지. 어떻게 '법적으로 존경하는' 행사를 해?"

2. "하지만 '존경'이 빠진 게, 오늘날 우리 사회가 어른을 경시(가볍게 생각)하게 된 영향을 받은걸까?"

3. "'조상과 어버이에 대한 은혜를 헤아리는 것''어른을 보호해야 한다'는 말은 바뀔 필요가 없었던 걸까?"


최소 50년 전부터 기념일에 행사를 할 수 있도록 규정해 놓은 우리 법은 이렇게 시대의 흐름에 따라 변해왔습니다. 법은 사회의 산물이며, 그 산물은 우리 사회를 대변하고 있다고들 하죠. 그렇다면 이 법이 우리 사회의 모습일 텐데, 동의하실 수 있나요?



법대로 할까? 법대로?



보시다시피, 지금의 법이 우리 사회를 온전히 담아내고 있는 건 아닙니다. 심지어는 법 조항끼리 서로 충돌할 수 있는 여지도 있죠. 기념일규정 제4조엔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모든 기념일의 의식과 그에 부수되는 행사는 엄숙하고 검소하게 실시하여
해당 기념일의 의의를 높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여러분이 어린이날과 어버이날 행사를 주최하는 실무자라고 가정해 봅시다. 


어린이들이 ①올바르게 크라고 독려하기 위해 '강사 초빙 교육'을 준비합니다. ②슬기로운 삶을 살아내도록 베스트셀러 책 선물을 할 수도 있겠네요. ③'씩씩하게 자라라'라는 의미로 태권도 시범단을 초청해서 공연도 기획합니다. ④조상과 부모님에게 감사한 마음을 표현하기 위해 음식을 준비하고, ⑤어른과 노인 보호 관련 경품 추첨도 진행합니다.


과연 이 기획은 그야말로 법대로 한 것일까요? 엄숙하고, 검소하지 못한 기획으로 법을 어기려는 기획(감히!) 아닐까요?


'법의 맹점(미처 생각지 못한 점) 혹은 모순'은 우리 사회의 뭉툭한 단면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노키즈존'을 'No'? 


출처 : unsplash

우리 사회의 뭉툭한 단면은 참 많습니다. 그 사례 중 하나가 바로 '노키즈존(No-Kids Zone 혹은 Kids-Free Zone, 아동출입 제한구역)'이겠네요.


20240423 (뉴스1 發) <길거리 분식집까지 노키즈존, 국물도 직접 뜨라고…"서러워 눈물 났다">


이 기사엔 노키즈존인지 모른 채 '길거리 분식집'에 들어갔다가 발걸음을 돌려야 했던 A 씨의 사연이 나옵니다. "국물을 직접 뜨라고 하고, 그러다가 다쳐도 가게에서 배상 못해준다"는 말과 함께 "서러워서 눈물이 났다"고 전합니다.


그러다가 마지막에 튀어나온 한 마디.


"나라에서 노키즈존 어느 정도 제지해 줬으면 좋겠다"


이번 어린이날과 어버이날에 '노키즈존' 표시를 보고 발길을 돌려야 하는 가족이 있다면, 그 상황이야말로 진정한 비극일 겁니다. 애써 "다른 데 가자!"라고 밝게 웃으며 돌아설 수 있겠지만, 마음이 영 편치 않겠죠. 그럼 'No Kids Zone을 No'하는 게 답인걸까요.


'No Kids Zone을 No'하는 것조차도 문제가 있다는 시각도 있습니다.


20240425 (매일경제發) <[매경의 창] 어린이날, 민폐와 환대 사이>

지난 3월, 서울의 한 어린이 공원에 걸린 한 현수막이 SNS에서 화제가 됐다. 현수막에는 "어린이 공원 내 공놀이를 자제해달라"며 "이웃 주민들이 공 튀기는 소음에 힘들어한다"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어린이' 공원에서 '어린이' 놀이를 자제하라니 그럼 '어린이'들은 어디서 놀아야 한다는 말일까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중략) 노키즈존을 금지하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금지를 금지로 풀면 또 다른 문제가 생긴다. 우리 사회의 아이에 대한 태도가 변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아이와 함께하는 삶을 과연 우리가 '환대'하고 있었을까. 그저 '민폐'로만 보고 있지는 않았을까. 


2주 전의 이야기들을 잊지 않고 한참 골똘히 생각하다가, 극단 '학전'을 이끌었던 김민기의 이야기를 담은 기사에 숨이 턱 막혔습니다.


20240509 (동아일보發) <그는 ‘학전’도 ‘김민기’도 지운다… “내가 뭐라고 이름 남기겠나”>


우리 모두의 미래는 어린이라고 생각한다.

우리의 미래는 어린이이며, 그 어린이의 미래는 다시 어버이가 되는 역사의 아이러니. 그런 아이러니 속으로 침투하는 비극은 때론 '사소하다'는 것을 우리 모두 알고 있기에, 이번주 수많은 이슈들 속에서도 이번 어린이날과 어버이날만큼은 잊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제 지인이 지난 글을 읽고, '법대 나왔냐'고 물어보던데요. 아닙니다. 철학과 나왔습니다.


손금이나 사주 볼 줄 모르고요. 부자 아닙니다. 철학관에는 태어나서 한 번도 가본 적도 없고, 철학관을 열 생각도 없습니다. 가장 좋아하는 철학자(사회학자)는 지그문트 바우만입니다. 이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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