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해결된 봄 Jul 05. 2024

아빤 생선가시를 가장 좋아해

어머니는 짜장면이 싫다고 하셨어

 나는 바다를 낀 작은 도시에서 나고 자랐다. 그러다보니 매일의 밥상엔 갖가지 생선이 튀겨져 놓였다. 단순히 사는 곳이 항구도시라서 생선을 자주 먹은 것은 아니었다. 아버지는 생선 반찬이 없으면 밥을 안 드시는 ‘생선 킬러’였기에 더 그랬다. 집 마당은 늘 수산시장 같았다. 생선을 말리는 ‘망(網)’이 늘 대롱대롱 매달려 바람을 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생선 말리는 망은 요즘 쉽게 볼 수도 없는 레트로의 끝판왕이다. 그 망엔 서너 개의 층이 있었고, 층마다 시장에서 사 온 젖은 생선들이 말라져가고 있었다. 생선을 넣거나 꺼내려면 아치 모양으로 되어 있는 지퍼를 열고 닫아야 했다. 진동하는 비린내와 들끓는 파리, 주변을 서성이는 길고양이는 망과 늘 세트였다.


 이름 모를 그 망에서 잘 말려진 생선은 기름이 둘러진 프라이팬에서 탁탁 소리를 내며 노릇하게 튀겨진 후 빨간색 사각 교자상에 올라왔다. 보통 고등어, 조기, 갈치, 박대 따위의 생선을 먹곤 했는데, 아버지가 가장 좋아하는 부위는 그 생선들의 가시였다. 대가리 밑으로 시작해서 꼬리까지 이어지는 두꺼운 뼈대를 제외한 잔가시는 모두 와그작 와그작 맛있게도 씹어 드셨다. 아버지는 미식가였던 것 같다. ‘어두일미’를 제대로 아시고 대가리를 드시기도 했다. 무시무시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생선살은 싫어하셨나보다. 생선살은 모두 내 밥 그릇 위로 올라왔다. 다행히 난 생선 대가리에 붙은 자잘한 살점이나 생선 몸통의 가장자리에 있는 거친 부분에는 관심이 없었다. 여하튼 내 생각은 틀림없었다. 아빠는 가끔 본인이 드시던 부위를 가리키며 말했었기 때문이다. “생선은 여기가 진짜 맛있는 거야.” 부자(父子)의 식탁은 ‘윈윈’ 그 자체였다.     


 그런 줄로만 알고 계란 한 판 이상을 살다가 이제 나도 아빠가 됐다. 아빠가 되어 보니 내 자식 눈에 넣어도 안 아플 거라는 말은 팩트였다. 사랑한다는 말이 가볍게 느껴질 정도로 너무 귀하고 소중하다. 자녀를 향한 부모의 마음은 부모가 되어 봐야만 아는 것이었다. 한편 아버지의 ‘생선 가시 사랑’은 기억 어딘가에 무심히 남겨져있었다. 어느 날의 저녁 식사시간이었다. 아내가 생선을 튀겨주었다. 바르는 건 내 몫이다. 아이의 그릇엔 생선살을, 내 그릇엔 겨우 살점 조금 붙어있는 잔가시들을 놓으며 말했다.     


아빠는 이런 생선 가시를 제일 좋아해. 여기가 제일 맛있어.

 소름이 돋았다. 내가 내 아이만 할 때 아버지로부터 종종 듣던 이야기를 내가 내 아이에게 똑같이 하고 있다. 

 

 아, 아빠.. 아버지..      


 아버지의 ‘생선 가시 사랑’은 개뿔.. ‘어머니는 짜장면이 싫다고 하셨어’랑 같은 맥락이다. 이는 내새끼에게 좋은 것만 주고 싶은 부모의 마음이었다. 좋은 것을 줄 수 있다면 잔반도 반가운 삶, 살 한 점 못 먹고 가시만 씹고 있어도 행복한 삶, 그게 부모고 그게 아빠였다.

작가의 이전글 자기 전 비는 소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