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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결된 봄 Jul 15. 2020

해결된 봄:남편의 임신_ 임신한 아내의 생일에는

태아의 욕구는 엄마가 채우고, 엄마의 욕구는 남편이 채운다.


 어느 날 신나게 게임하고 있는 내 뒤통수에 아내가 읽어주는 말이 있었다. 


태아의 욕구는 엄마가 채워주고, 엄마의 욕구는 남편이 채운다.


 하던 게임을 10분 내로 접었다. 이 말은 내 양심을 파고들었다.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명언이다. 임신 중 남편의 포지션이 어디인지 정확히 말해준다. 이 한 문장을 곱씹으면 곱씹을수록 맞는 말이다. 아내의 역할이 분명한 만큼 남편의 역할도 분명한 것이었다.




 임신 초기, 아내의 생일이 다가왔다. 임신 기간이 총 열 달, 생일은 열두 달에 한 번이니 거의 대부분의 가정은 임신 중 생일을 맞게 된다. 나는 아내의 생일 전 날, 그리고 생일 다음날까지도 대명절 연휴처럼 특별하게 보내게 해주고 싶다는 마음이지만 현실은 쉽지 않다. 하지만 임신한 아내의 생일은 전보다 더 특별해야 한다. 어느 때 보다도 축복받아야 하며, 어느 때 보다도 행복해야 한다. 기념일이라는 날은 행복하면 더할 나위 없이 좋지만, 어디에선가부터 꼬여버리면 되돌리기가 쉽지 않다. 특별한 날의 슬픔은 기쁨보다 수명이 길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아내는 코로나 사태로 인해 선물을 받지 않겠다고 했다. 여러 상황이 좋아지면 선물을 고르겠다고 했다. 아내는 단호하게 선물을 미루며 말하길, “예쁜 케이크 하나면 돼!” 나는 그 날부터 폭풍 검색에 들어갔고 마음에 쏙 드는 스타일의 케이크를 발견했다. 그리고 주문했다.

 드디어 생일 전 날. 케이크를 픽업하고 집으로 향했다. 숨기고 싶었지만 냉장고에 넣어 놓은 붉은 케이크 케이스는 분명한 존재감을 뿜뿜하며 나 여기 있다 말하고 있었다. 결국 생일 전 날 잠들기 전 빨리 축하해 주고픈 내 마음과 아내의 궁금 궁금 콜라보로 몇 시간 이르게 급 생파를 했다. 괜찮다. 아내의 생일은 전날부터 당일과 다음날까지 3일간이다. 준비한 꽃과, 케이크, 파티 모자, 파티 안경, 용돈, 편지를 올려놓았다. 그리고 생일이 왜 평일이야 서프라이즈 하기 힘들게.. 핑계를 해대며 어설프게 하나하나 장착시켜 주었다. 


 여보 사랑해. 진심으로 축하해. 태어나줘서 고마워. 나랑 살아줘서 고마워. 나 버리지 말아줘.

태아의 욕구는 엄마가 채워주고, 엄마의 욕구는 남편이 채운다.


 매년 하던 생파 패턴이긴 하지만 내 마음은 그 어느 때보다도 더 임신한 아내의 생일을 더 축복하고 있었다. 그게 내 할 일이니까. 그래야만 하는 나는 임신한 아내의 ‘남편’이다. 


 아, 며칠 후 아내는 가방을 샀다. 흔히 말하는 그 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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