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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결된 봄 Jul 14. 2020

해결된 봄:남편의 임신_ 눈에 힘 좀 빼세요

임신 5주차 하혈과 입덧, 미션의 시작  <임신 5주차>

 언제부턴가 하혈이 잦아지고 색이 심상치 않다. 아내가 하혈을 한다고 할 때마다 몰래몰래 검색창에 서칭 했었다. #임신4주하혈 #임신초기하혈 #착상혈언제까지 등등의 키워드로 말이다. 그러면 수많은 이 땅의 위대한 갓머님들의 경험담이 많이 나온다. 그중 내 아내와 비슷한 상황에 놓인 사람의 글을 읽어본다. 그리고 이후의 글들도 쭉쭉 본다. 결과를 알고 싶어서. 그러다가 결국 유산(정말 입 밖에도 꺼내기 싫고 타이핑도 하기 싫은 최악의 단어이다)이라는 결과를 보게 되면 내 심장이 멎는 듯하다. 내 일이 아닌데 곧 내 일이 될 수 있다는 두려움이 엄습한다. 그리고 일찌감치 지은 태명, 예쁨이에게 속으로 되뇐다. 잘 견뎌줘. 제발 잘 있어줘. 


 하혈은 임신 초기에 충분히 있을 수 있다고 한다. 수정된 배아가 자궁 내막을 파고들며 착상하는데 그때 출혈이 일어나는 것을 ‘착상혈’이라고 한다. 보통은 갈색 빛의 피나 연한 분홍색의 피까진 괜찮다고들 한다. 맘 카페 피셜이기도 하고 전문가 피셜이기도 하다. 그래서 신뢰하게 된다. 




 아내가 하혈을 한 지가 꽤 되어가고 이제 임신 5주차를 바라보고 있을 때였다. 집에 돌아오니  아내가 내 퇴근시간을 맞춰 저녁을 준비하고 있었다. 미안한 마음에 얼른 씻고 나왔는데 갑자기 사색이 되어 병원에 가야겠다고 한다. 갑자기 많은 양의 새빨간 피가 나왔다는 것이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찌개와 정갈하게 담긴 반찬들을 식탁에 막 얹어 놓은 상태였다. 하지만 지금 가장 중요한 건 내 아내, 그리고 예쁨이. 아무 일 없기를 바랐지만 아무 일 없기엔 너무 많은 글들을 봐버렸다. 그래도 제발 아무 일 없어다오. 


 다행히 다니던 병원이 야간 진료를 하기에 바로 출발했다. 보통 차로 15분~20분 걸리는 거리인데 그날은 급박한 우리 마음을 하늘도 아는지 교차로마다 홍해가 갈리듯 녹색불로 변하면서 10분 만에 병원에 도착했다. 나의 비장함은 모세 버금갔고 코너링은 신세기 사이버 포뮬러 강진우보다도 앞섰다. 


 그런데 그럼 뭐하나. 진료 대기실에서 30분 이상 기다렸다. 그 30분은 나에게도 아내에게도 견디기 힘들었다. 정말 생각해서도 안 될 상황까지 생각했으니까. 지금이니까 농담 섞어 글을 쓰는 거지 그땐 정말 어떻게 되는 줄 알았다.

 처음 뵙는 의사 선생님을 만났고 아내는 곧장 초음파실로 들어갔다. 의사 선생님께서는 나에게 아내가 어떤 약을 복용하고 있는지, 언제까지 복용했는지, 하혈이 언제부터였는지 등등에 대해 물으셨는데 지금 돌아보니 나름 정확히 잘 대답했던 내가 기특하다.

 초음파실에서 몇 마디의 대화가 오가는 중에 들려온 천국의 소리. “아기집은 잘 있습니다.” 할렐루야. 두려운 중에 평정심으로 꼭꼭 막아뒀던 눈물샘이 안도감에 느슨해져 버렸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마음으로 수없이 외치며 최종 진료 결과를 기다렸다. 의사 선생님이 먼저 나왔고 나오자마자 한 마디 하신다. 


이제 눈에 힘 좀 빼세요



 긴장 그만 하고 눈에 힘 빼고 마음 편히 먹으라는 것이다. 사실 내 눈 생김새 자체가 약간 궁서체다. 이어 말씀하시길 큰 문제는 없지만 아기와는 상관없는 부위에서 출혈이 있다며 지혈조치를 했다고 한다. 그러니 일단 안심하시라고. 그래서 일단 안심했다. 아내와 함께 돌아오는 길, 나에게 이렇게 말하면서.. 그제야 웃음을 찾았다. 


눈에 힘 좀 빼래ㅋㅋㅋ


  이 오가는 대화들은 마치 서로에게 '나 이제 괜찮으니 당신도 마음 놔, 고생 많이 했어.' 하는 것 같았다.

 


#임신초기 주의사항

임신 4주~6주까지는 임신 극초기라고도 한다. 극초기인만큼 가장 조심해야 할 때이기도 하다. 간단히 주의 사항에 대해 알아보자면.
1.담배나 술 등 몸에 해로운 것은 끊는다. 그리고 이건 내 생각인데 과도한 맘&임신까페나 포스트 검색은 정신건강에 좋지 않다. 하지만 검색을 끊는 게 쉽지 않다. 
2.배란일 이후부터 다음 생리 예정일까지 CT 스캔, X선 촬영 등은 피한다. 
3.태아의 각 기관이 형성되는 시기이므로 약을 복용할 때는 의사와 상담한다. 
4.태반이 불안정해 유산의 위험이 있으므로 작은 행동에도 신경 쓰고 항상 배를 따뜻하게 유지한다. 격한 운동이나 성관계 또한 삼가고 휴식을 충분히 취한다.
5. 음식 섭취에 주의하라. 생각보다 임산부에게 안 좋은 영향을 끼치거나 위험할 수 있는 음식이 많다. (ex: 카페인, 날음식, 팥, 파인애플, 알로에, 녹두, 생강, 율무, 인스턴트, 탄산음료 등등) 소량은 괜찮지만 꾸준히 많은 섭취가 일어날 경우 안 좋은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니 조심해서 나쁠 건 없다. 
임신 초기 주의사항은 삼성출판사 임신 출산 육아 대백과 2019 전면 개정판 참고 인용했습니다.




입덧, 미션의 시작


 아내는 확실한 임신부다. 임신을 하면 체온이 높아지는지 이제 알았다. 아내는 연일 37.7도 정도를 기록하고 있다. 심각하게 코로나19를 의심해보았지만 워낙 조심하며 자가격리 수준으로 사람도 안 만났던 우리였고, 다른 증상 또한 없었으며 원래 기초체온이 남들보다 높은, 몸도 마음도 열정적인 여인이었으니 이 체온이 임신한 아내에겐 정상인 것이다. 덕분에 자다가 추우면 살짝 붙어 그녀의 온기를 빌린다. 그럼 꿀잠이다.



 우리에게 찾아온 기쁜 소식은 눈보다 코로 더 빠르게 찾아왔던 봄꽃의 내음처럼 우리의 매일을 은은하게 설레게 했다. 그리고 이 엄청난 사실을 아직 자랑하지 못하고 꼭 꼭 잠가둬야 하는 마음은 조금만 돌려버리면 치익 하고 터져 올라버릴 것 같은 흔들어진 탄산음료 같았다. 휙 돌려 따서 콸콸콸 마셔버리면 참 시원하련만.. 조금만 더 참자. 아, 임신부에게 탄산음료는 옳지 않다.


 때는 바야흐로 임신 5주 5일. 말로만 듣던 아내의 입덧이 시작된 것 같다. 그런데 내가 알고 있던 입덧이랑은 좀 다르다. 드라마에서는 밥 먹다가 우엑우엑 하면서 자리를 뜬다. 이게 입덧인 줄 알았는데 입덧에도 종류가 있더라. 아내에게 찾아온 입덧은 그 이름도 귀여운 먹덧이었다.(입덧의 종류로는 먹덧 이외에도 토덧, 냄새덧, 침덧, 남편 입덧 등이 있다고 한다) 음식의 호불호가 분명히 갈렸으며 호감인 음식은 잘 먹되 많이 먹지 못하였고 불호감인 음식은 먹기 힘들어했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무엇을 어떻게 먹었던지 간에 대략 한두 시간 후면 다시 배가 고프다고 말한다. 마치 나처럼. 난 평생을 먹덧으로 고생하고 있다. 


 난생처음으로 겪어보는 이 허기짐으로 인해 하루에서 수없이 당황스러운 기색 역력히 나 배고파, 나 배고파 말하는 아내는 사랑스럽고 귀엽다. 하지만 정작 본인은 많이 힘들어했다. 그 배고픔이 진짜 배고픔이 아니라 자꾸만 올라오는 허기와 울렁거림을 잠재우기 위한 후라이였기 때문이다. 배고픔뿐만 아니라 냄새에 대해서도 굉장히 민감해졌다. 


 아내는 원래 후각이 매우 발달한 알아주는 개코셨는데 이제는 한 단계 더 업그레이드가 되어 인천 국제공항에서 마약이나 무기류도 찾아낼 수 있을 것 같다. 꽁꽁 봉해진 소량의 음식물 쓰레기 냄새에도, 얼마 차지 않은 쓰레기통의 냄새도 알아차렸다. 냉장고를 열면 나는 특유의 찬 냄새도 불편해했고, 잘 지어진 쌀 냄새, 기름 요리의 냄새도 불편해했다. 하지만 제대로 된 먹덧을 시연하기라도 하는 듯 금방 배고파져 먹을 수 있는 새로운 음식을 찾기 시작했다. 킁킁킁.


 임신 때 서운한 것은 평생 간다고들 한다. 난 다시 한번 최고의 서비스를 선보일 것을 굳게 다짐했다. 그리고 아내가 정말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음식들을 찾아 나선다. 아내는 젤리 광이다. 하지만 건강에 상당히 좋지 않기에 젤리 및 불량식품을 제외한 세상에 있는 모든 먹거리의 이름을 대며 어떤 것을 먹어야 아내도 예쁨이도 만족해할지 찾아가기 시작했다. 




#미션

 집이 중심상가권과는 꽤 거리가 있었어서 그런지 배달 어플로 주문한 마카롱은 연신 주문 취소 안내를 받았다. 아내는 조금 과장해서 오열 직전이었다. 자 이제 내 차례다. 주문 취소 안내를 받았던 자가용으로 15분 거리에 있는 마카롱 가게에 호기롭게 전화를 했다. “아니 결제까지 했고 주문을 한 번 받았으면 책임을 지셔야지 왜 취소를 하고 그러십니까? 제 아내가 그 위대한 임신부란 말입니다.”라고 말하지는 않았고 “제가 찾으러 갈 테니 상품을 준비해놔 주세요. 15분 걸립니다. 네네 감사합니다.”라고 한 후 츄리닝 하나 걸치고 겁나 멋있게 출발했다. 


 15분 거린데 모든 교통법규와 질서를 잘 지키고도 10분 만에 도착했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 마카롱 집을 조금 지나 주차를 한 후, 살벌하게 싸우는 젊은 커플을 뒤로하고(평소 같았으면 살짝 구경했다), 매장 앞에 개똥을 누고 있는 비숑과 없는 똥 봉지를 찾는 견주의 당황스러움을 뒤로하고 마카롱을 픽업해서 집에 돌아가는 길.


 이 마카롱을 보며 행복해할 아내의 모습에 눈물이 났다. 슬픈 장르가 아니었는데 눈물샘이 막 나대더라. 이런 걸 ‘헌신’의 기쁨이라고 해야 할까. 아내가 무엇을 원하고 기뻐하는지 고민하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실행하는 것. 수고와 소비가 동반됨에도 불구하고 세상 그 어떤 것보다 기쁘고 보람 있는 그 일. 집에 돌아와 환호성과 함께 마카롱을 맛보는 아내보다 분명 내가 더 행복했다. 그리고 이 즐겁고 재미난 일을 또 할 생각에 벅차올랐다. 마카롱은 정말 맛있었고, 다음날은 소프트 콘에 꽂히셔서 바로 먹었으며 그다음 날은 소프트콘을 여러 개 사서 냉장고에 쟁여놓았다. 한 밤 중에 가면 보통 아이스크림 기계 청소 중인데 다행히 팔고 있었다.



 나는 지금 임신한 아내로 인해 이런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며 편안하게 글을 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런 썰에서 느껴지는 소소한 행복? 약간의 다사다난? 이걸로 끝이 아니다.


 한 시간에도 몇 번씩 느껴지는 불편한 감정들과 몸의 반응으로 휴전도 협상도 없이 늘 최전선에서 싸우고 있는 아내의 모습이 현실이고 팩트다. 


 남편도 임신해야 한다. 하지만 생물학적 한계로 임신하지 못하니, 이 시기의 상황들을 보며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잘 찾아보자. 




#아내의 임신 초기, 특히 입덧 시기에 남편이 할 수 있는 일을 정리하자면.

1.음식물 쓰레기 치우기 : 두 말할 것 없다. 보이는 대로 치우자.    
2.쓰레기 치우기: 바로바로 버리기엔 종량제 봉투의 공간이 남을 테니 봉투를 늘 잘 밀폐하고, 냄새 날 수 있는 쓰레기는 세척하고 건조한 후 버리면 좋겠다.    
3.욕실을 청결히: 자주 환기 및 청소를 하고 향이 강하지 않은 은은한 디퓨저 하나 놓아도 도움이 되겠다.    
4.식사 준비하기: 조리 시 냄새나 밥 짓는 냄새에도 예민해지는 임신부이니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도맡아 해보자.    
5.식단 맞춰주기: 아내의 식성은 호불호가 분명히 갈린다. 아무리 내가 좋아하는 음식이더라도 아내가 역해한다면 참자.    
6.냉장고 정리 및 힘들어하는 음식 정리하기: 냉장고에 상해 가는 채소나 과일이 있다면 즉시 폐기하고 역하게 느껴질 만한 음식은 다시 한번 잘 밀폐하자.    
7.대체식품, 선호식품 찾아주기: 영양이 가장 중요할 때다. 못 먹는 게 많으면 먹을 수 있는 것을 더 많이 찾아야 한다.    
8.자주 조금씩 먹을 수 있도록 해주기: 아무리 찾던 음식도 많이 못 먹는다. 남긴다고 뭐라 하지 말 것, 막상 사 왔는데 안 먹어도 당연하게 여길 것, 다만 소화와 영양균형을 위해 건강한 식습관 권면하기.    
9.과잉보호하기: 은근히 좋아한다.    
10.힘든 일, 무리가 되는 일은 무조건 남편이: 무조건.    

*참고로 순번은 중요도와 전혀 상관이 없다. 다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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