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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결된 봄 Jul 16. 2020

해결된 봄:남편의 임신_ 아내는 다중인체(體)

걱정하는 일의 90%는 일어나지 않는다. <임신 8주차>

(목차 축소를 위해 윗글과 중복)


 임신 8주 4일차 아내는 요즘 '다중인체'이다. 내가 봤을 땐 생각보다 아내의 감정은 크게 요동하지 않고 있다. 어디까지나 내가 봤을 때 그렇다는 것이다. 스스로 평정심을 유지하기 위해 엄청난 노력 중일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인격은 다행히도 하나다. 하지만 그녀의 인체에서는 수도 없이 많은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대략 이렇다. 아랫배가 아팠다가, 위가 쓰리다가, 토할 것 같다가, 또 갑자기 배가 고파졌다가, 온몸이 몸살 걸린 것처럼 아프다가, 두통이 생겼다가, 잠이 쏟아졌다가, 또 몇 시간 컨디션이 회복되었다가.. 이 많은 일들을 하루 만에 다 겪기도 한다. 이렇게 아내의 하루는 몸 안팎으로 정말 많은 일들이 일어난다. 많은 초기 임신부들이 겪는 정상적인 증상들이다. 아내는 아이가 건강하다는 증거로 삼으며 이겨내고 있다. 하지만 괴로운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특히 힘들게 하는 것은 입덧이다. 이전에 입덧이 먹덧으로 와서 참 다행이다, 견딜만하겠다 생각했는데 먹덧 녀석이 어찌 듣고 기분이 나빴는지 동료들을 다 데려왔다. 그래서 현재 총체적 덧을 하고 있는 중이다. 검색해보니 입덧은 보통 12주까지 간다고 한다. 그런데 사람마다 달라서 막달까지 가는 사람도 있다고... 이 사례에 아내는 두려워 떨었다. 그리고 임신 기간 일어날 수 있는 수많은 경우의 수를 걱정하는 아내에게 말했다.


 예외의 경우가 우리에게 찾아올 확률은 아주 희박해. 걱정 덜어요.


 서점에서 [걱정하는 일의 90%는 일어나지 않는다]라는 책을 본 적이 있다. 몇 장 뒤적이고 돌아섰는데 이 제목이 때때로 나를 안도하게 했다. 사실 90%가 아니라 99%로 기억을 하고 있어서 더 그랬다. 내 기억 속에 책 제목은 [내가 걱정하는 일의 99%는 일어나지 않는다]였다. 지금 내 기억이 맞는지 확인하니 90%였고 앞에 '내가'라는 말도 없다. 내가 걱정하는 일들이 일어나지 않을 확률을 99%로 믿고 싶은 내 자아가 지우개질을 닳도록 했나 보다. 참 잘했어 자아. 앞으로도 잘 부탁해. 여하튼 이 말이 아내에게 위로가 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가만히 입 다물고 있는 것보단 100배 낫다.

  아내도 엄마가 처음이라 몸에 찾아오는 하나하나의 반응들에 민감하다. 내가 목격하는 것은 아내 몸의 변화에 대한 것들 뿐이지만 아내는 수도 없이 내적으로 전쟁 중에 있을 것을 생각하니 참.. 여전히 남편이 할 수 있는 것은 별로 없다. 


 며칠 전 나는 심한 어깨 근육통과 속 쓰림으로 잠도 못 청할 정도로 아팠었다. 다 낫고 나선, 임신한 아내와의 유대감이 깊을 때 임신 증상이 남편에게도 일시적으로 나타나는 '쿠바드 증후군'이었나 싶어서 자만심으로 똘똘 뭉쳐 뿌듯해했지만 그 당시에는 겨우 몇 시간도 죽을 맛이었다. 앉으나 서나 아프고, 잘 익지 않는 통삼겹마냥 누워서 이리저리 몸을 계속 뒤집어대도 괴로움은 여전했다. 아, 이건 말 그대로 ‘괴로움’이었다. 사람이 괴롭히면 국번 없이 112 신고라도 하겠는데 이건 괴롭힘을 당하는 방법밖에 없었다. 결국 약을 먹고 조금 나아져서 잘 수 있었는데 그때 제대로 체감했다. 약도 못 먹는 아내는 요즘 이런 통증을 안고 살아가고 있구나.

 아내는 지금도 침대에 누워 몸을 웅크리고 위를 부여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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