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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결된 봄 Jul 18. 2020

해결된 봄:남편의 임신_ 네가 좋으면 나도 좋아

여보 때문에 힘든 게 아니라 임신이 힘든 거야. <임신 9주차>

(목차 축소를 위해 윗윗윗글과 중복)

 연휴의 마지막 날이다. 이제 막 연휴가 시작해도 모자랄 판인데 연휴가 끝났단다. 현실을 인정하며 다시 아침 기상시간 알람을 활성화시킨다. 오늘 하루를 돌아보니 얼마 전 썼던 [슬기로운 남편생활]의 지침을 아주 잘 실행한 하루라고 생각됐다 마치 내가 쓴 글대로 살아볼 거야 작정이라도 한 듯한 날이었다고나 할까. 늘 말하는 대로, 글 쓰는 대로 살지 못할지라도 내가 뱉어 놓은 것에 대한 최소한의 양심으로 조금이나마 분발하게 되는 스스로를 보면서 글쓰기의 유익함을 경험한다.




 충분한 수면을 취하고 적당히 늦은 오전 시간에 정신이 들었다. 출근이 없기 때문에 조금 더 여유를 부림과 동시에 간 건강을 위해 몇 분 간 반수면 상태를 유지하며 내 신체의 대사들에게도 마음의 준비를 시킨다. 이 정도로도 간에는 우루~사 값을 아낄 수 있다.

 거실로 나와 잠시 우중충한 날씨를 만끽한다. 해가 뜨면 해 뜬 대로 좋고, 흐리면 흐린 대로 좋다. 슬슬 발코니 앵글에 물방울이 맺히기 시작하는 게 비가 오나 보다. 살짝 찬기가 몸을 겉도는데 그 마저도 좋다. 이내 아내의 뒤척임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는데 아내가 일어나면 일을 시작해야 한다는 두려움이 스친다. 여보 제발 조금만 더 자.

 드륵. 아내가 일어났다… 잠귀 밝은 아내의 숙면을 위해 아내가 일어나기 전까지는 소란스러운 어떤 것을 하지 않으려고 한다.(임신을 하면 잠이 많아지고, 잘 자야한다) 이제 아내가 일어났으니 어젯밤 입었던 운동복을 세탁기에 넣고 능숙하게 전원 버튼과 작동 버튼을 순식간에 눌러 빨래를 시작했다. 다음 미션은 아점을 준비해야지. 평일엔 못해주는 것들이기 때문에 쉬는 날은 내가 다하고 아내는 온전히 쉬게 해주고 싶었다. 퇴근 후 집에 가면 저녁까지 차려져 있어서 늘 마음이 불편해서 목이 매이기는커녕 다이슨 V11급으로 잘 흡입한다.  


 오늘은 찜닭을 만들 것이다. 아내가 찜닭이 먹고 싶다고 했다. 그래서 며칠 전 혼자 장을 보며 닭을 사 왔다. 이 닭은 사연이 있는데 1+1 닭을 한팩만 가져온 것이다. 비싼 닭이다. 비린내에 약한 임신 중 아내이기 때문에 특별히 더 잘 세척하고 닭의 지방을 샅샅이 제거한다. 호수가 꽤 큰 닭인데 껍질을 모두 벗겨내니 배고플 때 배달된 교촌치킨처럼 작다. 어차피 둘이 먹을 거니까 뭐.

 물에 당면을 불려놓고, 전분물도 준비해놓고, 닭을 먹기 좋게 다듬고 끓는 물에 한 번 데쳐뒀다. 양념을 계량하여 믹스하고 닭에 잘 버무려 재워 놓는다. 생강과 마늘, 그리고 커피가루도 잊지 않고 준비했다. 이들은 비린내 제거 삼총사. 참 잘 잡아준다. 그 사이 야채를 다듬어 투하 준비시키고 지금까지 사용했던 식기와 싱크대를 잘 씻는다. 닭 껍질과 야채 껍질이 가득한 음식물 쓰레기를 먼저 한 번 정리했다. 날것이 묻었던 싱크대와 그 주변, 식기와 고무장갑은 더욱더 깨끗하게 세척한다. 균이 남아있을 수 있다. 그리고 다시 본격적인 찜닭 조리를 시작했다.  



 찜닭이 완성되었고 식탁에 올려졌지만 아내의 표정이 좋지 않다. 닭을 다듬을 때부터 그 냄새가 너무 역해서 속이 너무 안 좋다는 것이다. 준비한 남편의 노력을 생각해서 먹어보려 노력하지만 한 입이라도 제대로 먹으면 당장 토해버릴 듯 힘들어했고, 결국 당면 조금 입에 댄 후 먹기를 포기한다. 그리고 미안해한다. 이게 찐 고역스러운 임신부의 입덧이다. 나중에라도 먹으라고 쓰지 않은 국자와 집게로 밀폐용기에 찜닭을 반 정도 담았다. 침이 닿은 음식은 부패되기 쉬우니 이럴 땐 꼭 쓰지 않은 집기로 해야 한다. 그리고 냉장고나 냉동고에 넣기 전에 어느 정도 식혀 뚜껑을 닿은 후 넣어야 한다. 뜨거운 상태로 넣으면 냉장고의 온도도 바뀔뿐더러 뜨거움에 직접 닿는 음식이 부패될 수도 있다. 남은 찜닭에 혼자 밥까지 비벼 먹은 후 먹은 자리 정리와 설거지까지 마쳤다.




 청소를 시작했다. 잠깐의 환기에도 꽃가루들이 금세 앉아버렸다. 온 집안 문을 다 열고 청소기를 돌린 후 꼼꼼히 걸레질을 시작한다. 다 마치면 문을 닫고 공기청정기로 잠깐의 환기에도 들어왔을 미세먼지들을 잡아낸다. 그 새 땀이 났다. 요즘 갑작스레 여름이 온 것처럼 따뜻해지다 못해 후텁지근하다. <뭉쳐야찬다> 정형돈은 갑작스러운 상대팀의 슈팅에 ‘시어머니 방문 슛’이라고 해서 한 참을 웃었던 적이 있는데 정말로 여름이 봄을 즐길 새도 없이 ‘시어머니 방문’처럼 와버렸다. 벌써 '입하'란다.

 땀난 김에 욕실 청소를 시작했다. 두 개의 욕실에 모든 물건들을 물에 닿지 않을 곳들로 옮긴 후 락스와 세제를 물에 희석했다.(지금에서야 안 사실인데 락스와 세제를 희석하면 안 좋은 뭐가 나온다고 한다. 하나만 쓰자) 파워 청소 시작. 벽과 바닥의 타일은 물론, 그 사이사이도 박박 거품을 내며 닦아 낸다. 욕조와 세면대, 변기 등 용도에 맞는 도구를 수술실 의사처럼 바꿔가며 전문적으로 청소한다. 수채라고 해야 하나, 물이 흘러들어 가는 그곳도 하나하나 분리해서 청소를 하고 다시 조립해 놓는다. 까다로운 천장은 두 달에 한번 정도만 해도 되니 패스하고 마지막으로 욕실화도 싹싹 닦아내고 건조한다. 아마 대한민국 남자 중 화장실 청소만큼은 내가 탑이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 시간도 오래 걸리고 체력 소모도 크다. 두 개의 욕실을 모두 청소하고 나니 오늘도 블링블링하다. 새 아파트로 최초 입주 한 지 1년째 되어가는데도 화장실만큼은 처음 컨디션보다 더 좋은 것 같다. 이렇게 청소를 하고 나면 희열을 느낀다. 그 희열 가득한 현장에서 샤워한 후 나오면 천국이 따로 없다.



 아내도 마침 씻고 나왔다. 책에서 배운 대로 튼살크림을 발라준다. 손을 깨끗이 씻고 손을 비벼대서 손의 온도를 높인다. 그리고 크림과 오일을 2:1 섞어 꼼꼼히 마사지하듯 바른다. 끙끙대며 튼살크림을 바르고 있는 중에 아내가 너무 미안해하면서 나에게 말한다.

 여보 불쌍해, 무수리 같아, 미안해 


같이  참을 웃으며 튼살크림 마사지를 마무리했다.  튼살 크림 바르는 시간은 교감의 시간이. 정말 감사한 시간이다.




 이 모든 것을 마치고 나니 오늘 무엇도 잘 먹지 못한 아내가 배고파한다. 그러면서 얼마 전부터 노래를 부르던 야끼우동이 먹고 싶다고 한다. 우리가 즐겨 먹던 건데 농*에서 나오는 생생 야끼우동을 말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게 어찌 된 일인지 요즘 잘 팔지를 않는다. 하지만 어디엔가는 있겠지 하고 옷을 주섬주섬 챙겨 입는다. 아내는 같이 가자고 하지만 빈속에 차를 타면 멀미할 것 같고, 혼자 다녀오는 게 조금 더 빠르기 때문에 혼자 길을 나섰다.

 농* 생생 야끼우동은 집 앞 마트에도 없었고 근처 편의점에도 없었고 노브랜드에도 없었고 결국 이마트까지 갔다. 근데 이마트에도 없다. 임신한 아내가 먹고 싶은 음식은 무조건 구해오리라 다짐했었고 로망으로 여기던 본인이기에 고객센터까지 가서 사진을 보여주며 물건이 있는지 확인해보지만 없다고 한다. 대신 아쉬운 대로 다른 야끼우동을 카트에 집어넣었다. 요즘은 하루 걸러 장을 보기 때문에 야끼우동만 사가려고 했는데 동선에 걸쳐 나를 부르는 아이들을 몇몇 더 구해냈다. 차로 돌아와 아내가 먹고 싶어 하던 던* 도넛을 사기 위해 또 20여분의 드라이브를 했다. 도넛을 사고 아이스크림도 사서 돌아가는 길에 야끼우동에 대한 미련이 남아 근처 롯데마트에 갔는데도 농*생생 가락국수는 없었다. 2, 3월 KF94 마스크보다도 구하기가 힘들다. 하, 인터넷으로 사야겠다.

   

 야끼우동만 사 온다는 사람이 거의 한 시간 반 이상을 돌아다니다가 왔다. 비가 와서 그런지 교통정체가 심했다. 미안해하며 너무 고생했다고 하는 아내의 한 마디가 내 페이가 된 듯 위로가 됐다. 거의 저녁시간이 다 된 시간이었다. 농* 야끼우동을 공수하지 못했음에 아내의 얼굴은 생기가 없었고, 충격적인 것은 이제 야끼우동이 먹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이게 리얼 임신부 아내의 현실이다. 무거운 눈꺼풀에 패배하여 한 시간 정도 낮잠을 자고, 늦은 저녁으로 *마트표 야끼우동을 나름 맛있게 먹었다. 그리고 원활한 소화를 위해 아내의 손을 잡고 단지 산책을 하는데 곳곳에 활짝 핀 꽃들이 우리의 마실을 반겼고, 밤이 되어 차가워진 공기는 온몸에 돌며 우릴 정화시키는 것 같았다.


 

 하루 동안 많은 일들이 있었다. 순간순간 쉼의 욕구가 고갤 들었지만 쉼보다 더 달콤한 아내의 미소에 힘이 났다. 네가 좋으면 나도 좋아 생각하고 있는데 아내가 말한다.

나 때문에 힘들지..

심쿵 두 번 할만한 멋진 미소 한 번 찡긋 보이고 뒤돌아서면서 마음속으로 대답했다.

여보 때문에 힘든 게 아니라 임신이 힘든 거야.


 이제 9주 차이지만 벌써 안다. 임신은 힘든 것이다. 힘든 이 과정을 아내 혼자가 아닌, 남편도 함께 해야 하는 것이 당근 빠따이고 이 과정을 통해 부부의 유대감은 깊어질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남편도 임신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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