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이라고?
오 지쟈스..! 아내가 임신했다. 적어도 한 달에 한 번은 함께 마음 아파했었기에 내 눈앞에 펼쳐진 명확한 빨간 두 줄은 그간의 고생 끈을 가로질러 싹둑 잘라냈다. 마치 오늘은 눈이 내릴까 하고 무심한 척 내밀고 있던 손바닥에 하얀 눈송이 하나가 영롱히도 앉은듯했다.
아내는 손바닥만한 카드에 테스트기를 붙이고 ‘아빠 겨울에 만나요’라는 메모로 서프라이즈를 했다. 잠깐 뇌의 사고 회로가 길을 잃어 오작동이 일어나다가 다시 제자릴 찾기 시작했다. 그리고 만감이 교차했다, 시련의 기억들과 함께 기쁨과 기대의 감정이 차오르면서 아내에게 한 말은,
피검사까지 해봐야 확실한 거지?
이런 병.. 등신이 따로 없다. 못났다. 아내는 첫마디가 그거냐며 무척이나 실망하려던 찰나에 나는 감격의 눈물과 기쁨으로 내 감정을 최대한 표현했다. 그제야 우린 함께 기뻐하며 감사했다. 계속해서 테스트기와 서로를 번갈아보며 우리의 새 삶을 환영했다. 꿈인지 아닌지 계속해서 확인해달라고 하며 볼도 꼬집어 보고 스스로 따귀를 때려보기도 했다. 사실 난 꿈이 아닌 것을 금방 깨달았으나 이 만큼 내가 아내를 사랑하고 이 사실을 기뻐한다고 더 극적으로 어필하고 싶었다.
임신을 이제 막 경험한 나는 처음 달려보는 트랙 위에서의 경주를 시작한 기분이었다. 출발 전의 그 흥분과 긴장이 온몸 구석구석을 감싸기에 나름의 방법대로 충분히 몸을 풀었다. 이내 출발 총성이 울리자마자 미친 듯이 잘 달리고 싶었지만 처음 달려보는 길인지라 마음처럼 앞서 나가 지지 않았고 뛰는 내 폼이 어째 계속 어색하다. 밟는 곳마다의 질감은 늘 새롭고 펼쳐진 길은 어디도 낯설다. 혼자 시작한 경주라면 일등을 하지 못할 바에 그냥 앞으로 걷든 뒤로 걷든, 뛰든 기든, 오직 완주만 목표일 것이다. 하지만 기쁘지만 고단한 냄새가 나는 단어, 바로 [임신]이라는 멍에를 함께 지고 가는 내 아내가 있기에 나는 가능하면 늘 옳은 길을 선택해야 하고 정확한 자세로 아내의 속도에 맞추어가야 할 것이다. 더 나아가 아내가 잘 달릴 수 있도록 최고의 페이스 메이커가 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 경주의 지도를 잘 이해해야 하고 나의 파트너를 잘 이해해야만 한다. 한 마디로 임신에 대해 잘 알아가려는 노력이 절실한 예비 아빠가 되어야 한다. 이것은 선택이 아니라 의무이며 내 의무에 대한 책임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는 남편이, 아빠가 되기를..
*임신에 대한 남편의 바람직한 반응
남편분들 기억하십시오. 첫 반응이 정말 중요합니다. 무조건 최고의(진정성있게) 퍼포먼스를 보이십시오. 아내의 서프라이즈는 놀라움의 반응을 기대하고 하는 것입니다. 좋아서 날뛰어도 좋고 감격해서 크게 울어도 좋습니다. 무반응, 혹은 저와 같이 초치는 대답은 삼가십시오. 이럴 때만큼은 침착하지 않아도, 차분하지 않아도 좋을 것 같습니다. 아내의 태에 생명이 싹튼다는 사실에 대해 가장 큰 축복으로 반응해주세요. 충분히 사랑받아 마땅합니다.
아내분들 기억하십시오. 남편의 반응이 남편의 심리상태의 전부가 아님을 알아주세요. 남편은 정말 미칠 듯 기쁘고 감사했을 거랍니다.
임신은 새 삶으로의 초대였다. 시간마다 수없이 피어오르는 행복한 소름으로 밤잠을 설쳤다. 그리고 다음날 퇴근하며 꽃을 샀다. 절대 절대 빈 손으로 들어가지 말자. 아내의 작고 소중한 아름다운 빈손으로 때려 맞는 수가 있다.
다행히 선물해야 한다는 사고가 생겼다. 어디서 학습했는지는 모르겠으나 아내가 임신을 하면 남편들은 꽃을 사가는 게 맞는 것 같았다. 그런데 난 꽃 선물이 썩 탐탁잖다. 뿌리까지 있는 화분이라면 모를까 꽃은 이미 허리가 잘려나가 생명을 서서히 잃어가는 과정 중에 우리 품에 온다. 제 아무리 예쁘고 향내 나는 꽃도 길어야 며칠 화병에 꽂혀 있다가 결국 시들어 쓰레기통에 들어가 내 코 푼 휴지와 함께 소각행이다. 사람들이 말하는 가장 아름답다는 그것이 얼마 안 돼 가장 무가치한 것들이 모인다는 그곳으로 향하는 역설. 나에겐 그게 꽃이다. 하지만 이제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다. 합리적이고 효율적이고 가성비고 그런 생각 다 버리자. 이제 내 기준이 아니라 더 아내 기준으로 살아야 한다. 아내가 좋으면 만사 오케이다.
아내는 행복해했고 난 성공했다. 아내는 그저 꽃이 예뻐서 행복해한 것이 아닐 것이다. 임신한 아내를 위해 무엇을 할까 고민했을 남편, 꽃을 사러 화원을 찾은 수고와 쥐뿔 알지도 못하면서 어떤 꽃을 다발에 꽂을 것인가 고민했을 그 모습, 꽃이 다치지 않게 집까지 고이 모셔온 모든 과정들과 그 마음에 행복한 것이다. 남편들아 꽃을 사자. 많이 말고 자주 조금씩.
그리고 또 한 가지. 내가 생각하는 꽃의 가치와 정 반대인 것이 하나 있다. 가장 돈이 안 드는 반면 가장 사람을 감동시키는 도구. 바로 글이다. 글로 표현하는 감정은 보이지는 않지만 추운 날 무형의 모습으로 세상을 녹이는 온기와 같다. 말보다, 타이핑에 찍힌 딱딱한 글자보다, 고개 숙이고 손날을 문대며 눌러쓴 손글씨는 무조건 옳다. 이렇게 직접 쓴 손편지는 아마 최고의 선물일진대 명품백과 손편지를 고르라면 빽을 고르겠지. 어쨌든 정말 사랑받고 있다고 느낄 수 있도록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자. 첫 임신소식에 대한 반응 그 3초가 30년을 좌우할지니.
1.생리가 일주일 이상 늦어진다. 착상 시 생리가 중단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착상의 이유가 아니더라도 생리주기가 늦어질 수 있으므로 다른 임신 증상들이 동반하는지 잘 살펴야 한다.
2.체온이 높고 으슬으슬 춥다. 임신을 하면 배란기처럼 보통 36.7~37.2의 체온이 유지된다.(우리 아내는 37.5 이상으로 유지되어 코로나가 의심되기도 했음)
3.쉽게 피로감을 느끼며 기미와 주근깨가 두드러지고 여러 신체에서 색소침착이 나타난다.
4.아랫배가 당기고 변비가 생길 수 있으며 유방이 커지고 아프다. 또한 질 분비물 또한 많아지고 빈뇨를 겪기도 한다.
5.그리고 드라마에서 많이 봐 온 것처럼 입덧을 한다. 우엑우엑 입덧이 아니더라도 계속 먹고 싶어 하는 먹덧, 음식이나 냄새에 대해 강한 거부감을 나타내는 입덧, 구토 증세가 있으면 토덧이라고 한다.
이렇게 임신 초기 증상이 있을 때에는 임신테스트기(aka.임테기), 소변검사, 피(혈액)검사, 초음파 검사 등을 통해 임신 사실을 확인할 수가 있다. 이 증상들은 초기 증상이다. 매우 불편할진대.. 이게 고작 시작일뿐이다. 비교도 안 될 더 험난한 여정이 남아있다고 한다. 남편님들, 아내가 안쓰럽고 미안하다면 정신이라도 함께 제대로 임신해봅시다.ㅠㅠ
임신기본지식관련 글은 삼성출판사의 임신출산육아대백과 2019년 전면개정판을 인용했습니다.
임테기(임신테스트기)에 빨간 두 줄이 뙇 작렬해도 100% 마음 놓을 순 없었다. 계속해서 넘어야 할 산이 많겠지만 가장 먼저 넘어야 할 산은 두 차례의 피검사이다. 임신을 피검사로 확인하는지 처음 알았다. 아주 기본 상식 조차 없던 나였구나. 낫 놓고 'ㄱ'자 모르는 분야가 나한테는 임신이었다. 처음이니 모른다고 둘러대기엔 유독 더 모른다.
테스트기에 두 줄을 확인하면 병원에 가서 피검사로 다시 한번 임신을 확인한 후 2-3일 뒤에 또다시 피검사를 하게 된다. 피 수치가 처음 수치의 두 배 이상으로 뛰면 일단 정상적인 임신이라고 본다는 것이다. 워낙 인생이 험했던 탓일까.. 기쁨과 기대와 함께 노파심과 불안이 공존한다. 그래서 2차 피검까지의 며칠은 몇십일 같았다. 늘 간절한 기다림은 시간을 지체시킨다. 방학이 그리도 돌아오지 않은 이유도, 오지 말아야 할 개학이 그리도 빨리 돌아오는 이유도 이 원리와 비슷한 것 같다.
그 몇 십일 같은 며칠이 지나고 아내의 휴대폰에서 여전히 같은 벨소리지만 평소와는 뭔가 다른 분위기의 벨이 또박또박 울리기 시작한다. 역시나 병원에서 결과를 알리는 전화였고, 아내의 수화기 너머로 혈액검사 결과가 정상 수치라는 소식을 들었을 땐 이미 건강한 아이를 낳은 기분이었다. 내가 이렇게 감정 기복이 큰 사람인지 처음 알았다.
사실 임신과 출산이라는 과정 중 1할도 되지 않는 산을 넘은 것뿐인데 이미 낳은 것과 다름없었다. 앞으로 초음파로 아기집도 확인해야 하고 심장소리도 들어야 하고 기형아 검사도 잘 통과해야 하고 또 피검사를 해야 하고 등등 계속해서 많은 관문이 있을 것이다. 이 과정에서 많은 경우의 수가 있는 것을 보았는데,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오직 건강한 아이가 쑥쑥 자라고 있다고 믿으며 좋은 생각만 하는 것이 최고의 태교일 것이다.
피검사를 마치니 아이에 대한 확신이 더 서게 된다. 그래서 이름을 지어주기로 했다. 태명을 태아가 듣기 좋은 발음으로 지어주면 태교에 도움이 된다고 한다. 또 태아의 오감 중 가장 먼저 발달하는 부분이 바로 ‘청각’이라고 한다. 임신 7개월이 되면 태아는 자궁 밖의 소리를 분간할 수 있으며, 즉 태명을 부르며 안정적 태교를 한다면 태아의 뇌 발달을 촉진시킬 수 있다고 한다. 또한 아내와 아이를 위해 매일 기도할 건데 “우리 태아가 건강하게 해주세요”, “뱃속에 있는 우리 아이가 안전하게 해주세요” 보다는 태명을 불러주면 더 좋지 않을까?
자 이제 태명을 지어보자. 와, 막상 지으려고 하니 어렵다. 겨우 9개월 쓸 이름인데도 평생 쓸 이름마냥 신중해진다. 성별이 결정되면, 또는 출산을 하게 되면 평생 쓸 진짜 이름을 지어줄 텐데 그때도 만만치 않겠다. 그때까지 나는 우유부단, 결정장애를 완전히 극복해놔야겠다.
알아보니 태명에도 기왕이면 지켜야 할 부분들이 있더라. 예를 들면, 태명은 아이가 엄마의 뱃속에서 듣기 좋은 된소리로 지어야 하며 좋은 의미가 담겨야 하며 등등의 조건을 충족시켜야 한다고들 하기에 더 어렵다. 이미 센스 있는 부모들은 정말 예쁘고 건강하게 들리는 태명을 잘 지어놨더라. 하지만 그런 태명은 너무 흔한 태명들이었다. 튼튼이, 복덩이, 기쁨이, 조이, 으뜸이, 다복이.. 싫진 않지만 좀 유니크했으면 했다. 임신 사실을 안 최측근들도 센스 있게 태명을 잘도 지어 추천해 준다. 삼쁨이(삼월의기쁨), 열무(열달동안무럭무럭자라라), 딱풀이(엄마에게 딱 붙어 있어라) 등등 어쩜 이리도 잘 짓는지.. 하지만 그 이름으론 안 한다. 이상한 오기가 단전부터 올라오기 시작해서 우리 아이 태명은 내가 짓는다는 고집이 생겨버렸다. 그 결과 2박 3일 후 태명을 짓게 됐다. 바로바로.
예쁨이♥
예비하신 기쁨, 예수님의 기쁨, 예쁜 우리 아이라는 여러 의미가 담겨있다. 다 좋다. 난 아직 보지도 못한 우리 아이가 벌써부터 너무너무 예쁘니까 예쁨이가 맞다. 아내도 나도 만족해하고 있다. 예쁨아 널 믿는다. 우리도 최선을 다할게. 건강하게 자라 다오. 사랑해. 축복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