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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결된 봄 Jul 24. 2020

해결된 봄:남편의 임신_ 마음의 방을 밝히기

아내가 평온함이 최고의 태교다. <임신 11주차>

 임신은 한 번도 올라보지 못한 꽤 높은 험산을 등반하는 것과 같다. 이제 진입로를 지났을 뿐인데 이미 기선제압당했다. 허나 정상까지 도달하는 길들이 진입로에 비해 무난하길 원한다.

 지금은 종영했지만 <슬기로운 의사생활>이라는 드라마가 있었다. 아내가 좋아하는 배우들이 총출동하는 드라마다. 그래서 목요일 밤마다 함께 즐겨 보곤 했는데 그 배우에 그 작품이다. 나이가 먹어서 그런지 TV만 틀면 그저 그렇고 그런 프로그램들처럼 여겨져 TV에 대한 마음이 시들해져가고 있는데 유독 목요일 밤의 우리 눈빛은 어느 때보다도 빛나고 있었다. 여러 전공의 의사들 중 산과 양석형 교수의 진료실에는 자주 등장하고 있는 임신부 가정이 있다. 그 부부는 유산 경험이 있었고 이후 찾아온 아이를 지켜내려 하지만 수월하지가 않다.  

 병원에 올 때마다 불안한 상태임을 알게 되고 슬퍼한다. 그때마다 산과 의사인 양석형은 담담하게 위로하고 함께 잘 지켜내 보자고 한다. 풍기는 뉘앙스로는 이들은 마침내 순산할 것 같았고, 다행히 진짜로 순산했다. 그저 역할극에 불과한 장면이지만 우리 부부도 그들과 함께 기뻐했다. 하지만 누가 봐도 그 과정은 순산이라는 표현을 쓸 수 없는 난산이었다. 이렇게 어떤 이들은 적당한 순풍에 잘 밀려가는 돛단배처럼 안정적인 열 달을 보내기도 하겠지만 또 어떤 이들은 열 달을 애매하게 추운 날의 살얼음판 걷듯 보내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안에서 발생하는 감정적 변화와 신체적 변화의 순간순간은 언젠가 와지직 깨져버리진 않을까 하는 큰 불안함을 안고 살게 만든다.




 이제 부부의 감정을 아이가 공유한다고 한다. 아이가 엄마의 감정을 공유하는 것은 당연하게 느껴지지만 물리적으로 어디 하나 연결되어 있지 않은 아빠의 감정까지 공유할 수 있다는 말은 납득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아빠의 감정을 엄마가 바로 느끼기 때문에 아빠의 감정은 엄마를 통해 아이에게 전달될 것 같다. 그러니 부부 모두의 정서가 평온해야 엄마 뱃속에 아이도 더 편안하게 쉴 수 있지 않을까.

 임신부가 태아에게 좋은 영향을 주기 위해 몸과 마음, 감정과 행동과 언어 등을 정화해 뱃속에 태아에게 좋은 환경을 만들어주고 끊임없이 사랑과 애정을 보여주는 것이 바로 태교라고 한다. 한 마디로 좋은 태교는 임신부의 마음이 기쁘고 평온한 상태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태교는 혼자의 의지로 이뤄나갈 수 있는 게 아니라 많은 주변 환경, 특히 남편과의 유대감이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임신이라는 여정에 있어서 남편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매일 깨닫는다.

 나는 아내가 행복하길 바란다. 감정이 요동친다는 임신 중에도 평안하길 바란다. 즐겁길 바란다. 아내 안에 근심이 없기를 바란다. 아내 안에 불안함이 없기를 바란다. 이런 내 욕심과 소원만으로도 아내의 상태가 최고가 된다면 나는 30일 금식기도도 마다 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내 감정마저 내 바람대로 되지 않는 것이 기도이고 삶이다. 어려움 가운데 알아가야 할 것들이 참 많은가 보다. 어떤 것도 마음과 바람만으로는 실현될 수 없기에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무어라도 찾아낸다. 그 작은 것이 아내에겐 감동이 되고 예쁨이에겐 건강이 되리라. 그리고 좋은 태교의 마중물이 되리라.




 여느 때처럼 아내보다 먼저 잠들고, 함께 일어나 바쁘게 출근하고 일을 하고 있었다. 우린 출근해도 메시지로 수다를 나눈다. 그러다가 아내가 마음이 철렁하는 톡을 보냈다.


나 사실 어젯밤에 혼자 거실에서 울었어

 이런.. 뭐 말로 표현할 길이 없다. 괜찮아 보였는데 정말 괜찮아 보이기만 했던 것이구나. 퇴근길에 어두운 아내의 마음을 밝게 해 줄 무언가가 필요하다고 느꼈다. 아내의 마음의 방에 불을 켜야 한다. 먼저 유기농 빵집에 가서 밤식빵을 하나 사고 퇴근길에 자주 보았던 어느 꽃집으로 향했다. 그리고 가장 밝은 색들 꽃으로 적당한 크기의 다발을 만들어달라고 요청했다. 어느 글에서 봤는데 꽃 선물로도 태교가 될 수 있다더라. 그걸 ‘꽃 태교’라고 한다나?


 집에 도착해서 현관문을 열자마자 꽃을 전달했다. 아내는 꽃을 보고 딱 적당히 좋아했다. 꽃에 너무 가까이 가지 말라고 했다. 이제 사 온 꽃인데 너무 금방 시들어버리면 아까우니 가까이 가지 말라고 했다. 좋은 냄새가 코를 찔러 식탁을 보니 저녁이 준비되어 있다.  

 임신부의 몸과 입덧 중 약한 비위에도 거의 매일 저녁을 준비해 놓는다. 그러지 말래도.. 아내의 고생에 밥이 안 넘어갈 줄 알았는데 녹는다 녹아. 짐을 정리하는데 책상에 편지가 하나 놓여있다. 오늘도 수고했다며, 그리고 그동안 수고했다며 용돈과 함께 손글씨를 넣어 놓았다. 감동이다. 오늘은 내가 감동 주려고 했는데 더 많이 받았다.


 내가 좋은 남편이 되려는 이유는 내가 좋은 사람이라서가 아니라 아내가 좋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내가 아내에게 좋은 기분을 주고 싶은 이유는 아내가 먼저 나에게 좋은 기분을 알려주었기 때문인 것 같다. 진심으로 사랑하다 보면 나오는 말과 행동들이 부부가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태교일 테니 예쁨이도 이 선한 영향력으로 건강하게 성장하고, 사랑받고 또 그 사랑 잘 전할 수 있는 아이가 되길 기도한다.


    



아내의 치료자


 내가 알고 있는 시간의 법칙은, 피니쉬를 기다리며 세고 있자면 보통 하늘에 보통 구름 가듯 참 느리게 가는 법인데 임신은 매일매일 주와 일을 꼬박 세며 사는데도 불구하고 참 빠르게 지나간다. 10주차에 들어서며 '와 벌써 10주차네' 생각했는데 바로 또 11주차가 되었다. 하지만 주차가 계속 늘어가는 것과 임신 적응력이 늘어가는 것은 전혀 별개라는 것을 느끼며 산다. 매번 만나는 모든 순간이 처음 겪는 일이기 때문에 임신은 여전히 낯설고 어렵다. 둘째 이상을 가진 부모님들은 익숙해지셨을까? 능숙해지셨을까?




 아내는 여전히 자신과의 싸움 중에 있다. 입덧하는 아내에게는 아무 일이 없어도 아무 일이 있는 것이다. 전에 말했듯이 먹덧으로 시작한 입덧이 메스꺼움과 역함이 올라오는 욱욱 입덧으로 진화되었고 지금은 간혹 토를 꾹 참거나 참다못해 토해버리는 토덧도 볼 수 있다. 며칠 전 아내가 너무 충격적인 글을 봤다며 사색이 되어 내게로 왔다. 어떤 사람이 올린 "입덧은 언제까지 하나요?"라는 질문에 

출산일에도 입덧으로 토하고 출산하러 갔어요.

 

라는 댓글이 달린 것이다.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아내가 이 말을 해주며 두려움에 떨길래 나는 이미 [임신대백과]에서 공부해 놓은 지식으로 마음을 안정시켰다.

 보통 입덧은 임신 7-9주에 시작되고 대개 12주 정도부터 서서히 수그러든데. 정말 긴 사람은 20주까지 간다더라고. 조금만 더 애쓰면 좋아질거야.


 내 말에 대한 신뢰도가 크게 없는 아내이지만, 약간의 화색을 띄우며 안도했다. 역시 아는 것이 힘이다. 나는 아내의 입덧에 대비하기 위해 많은 먹거리들을 저장해두었다. 하지만 여전히 찾는 것만 찾는다. 보통 찾는 것은 상큼하고 차가운 음식, 달달한 과일이나 젤리 정도이다. 그리고 좋아하진 않지만 그나마 먹을 수 있는 음식들은 빨갛게 무친 나물들, 구황작물들, 기름기가 적은 음식, 느끼하지 않은 음식, 냄새가 없는 음식들이다. 지난 주말 오전엔 김치볶음밥이 먹고 싶어 해서 얼른 만들어 봤다. 그런데 아내는 먹지 못했다. 내가 평소처럼 치즈를 넣었기 때문이다. 앞으로 토핑은 꼭 물어보고 만들어야겠다. 아참, 임산부에게 달걀 반숙은 좋지 않다. 완숙하자.

 넣었던 치즈는 당근이나 양파처럼 다시 꺼낼 수가 없다. ‘엎그러진 물’처럼 ‘볶아버린 치즈’라는 표현도 충분히 쓸 법하다. 최근 김치볶음밥 외에도 아내가 찾는 먹거리들은 아이스크림, 떡, 김치전, 초밥, 빵, 냉면, 생라면, 불닭 김밥, 요거트 음료 등이 있다. 내가 나름 고심해서 냉동이나 냉장에 저장해 놓은 음식 리스트는 이 중에 하나도 없다. 실패다. 임신부의 속을 달랠 수 있다는 포*칩도 잔뜩 사놨는데 나만 먹는다. 

 아내의 입덧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자 나는 항상 아내의 상태를 살피며 생각을 묻는다. 먹고 싶은 게 없는지가 가장 잦은 질문이다. 그럼 보통 없다고 한다. 그럼 나는 세상 모든 음식의 이름을 대가며 다시 한번 되묻는데 아내는 그때마다 내가 말하는 음식에 대해 생각만 해도 토가 나올 것 같다며 그만 얘기하라고 손사래를 친다. 평소엔 그렇게 좋아하던 것도 거절한다. 괜찮던 속도 내가 거북하게 만들어버리는 경우도 많다. 그래서 요즘은 음식 추천을 하지 않고 아내가 무언가를 찾을 때 바로 액션을 취하려고 항시 대기 중이다.


 이제 예쁨이는 탯줄을 통해 영양을 공급받고 있다. 그래서 입덧임에도 불구하고 어느 정도 균형 잡힌 식사가 중요하다. 영양제도 먹고는 있지만 영양제에서 흡수되는 영양소와 섭취하는 음식물에서 체내로 흡수되는 영양소는 뭔가 차이가 있을 것 같은 의과 지식 전혀 없는 일반인의 생각이다.  

 고향에 갈 일이 있었는데 아버지께서 생선을 주셨다. 바로 박대다. 다른 이름으로는 서대라고도 한다더라. 서해바다에서 잡히는 박대는 가시를 바르기가 쉬우며 내장 등을 다듬을 필요가 없는 데다가 맛이 매우 좋다. 그래서 어렸을 적부터 하루 걸러 하루 먹던 친근한 생선이다. 밤늦게 집에 도착해서 실한 박대를 보여줬다. 아내는 생선은 먹을 수 있을 것 같아! 라며 반가워했다. 얼마나 귀여운지. 아내가 매일매일 웃기만 했으면 좋겠고 행복하기만 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우린 그 밤에 생선을 굽기 시작했다. 아니 있는 그대로 말하자면 내가 씻는 사이에 아내가 구워 놓았다. 생선 굽는 냄새는 크게 나쁘지 않았나 보다. 생선 눈을 잘 바라보지 못하는 아내는 박대의 뒤통수가 보이게 뒤집어 놓았다. 하나하나 발라주니 오랜만에 잘 먹는다. 요즘은 아내가 잘 먹을 때가 가장 기쁘다. 




 입덧의 끝이 어딘지는 모르지만 나는 아내와 예쁨이를 위해서 입덧의 치료제(치료자) 혹은 입덧의 완화자가 되어야 한다. 입덧을 검색해 보면 구토와 구역은 임신 중 흔한 증상이지만 이로 인해 임신부의 삶의 질이 떨어질 수 있다고 되어 있다. 이 떨어진 삶의 질을 높여줄 사람은 남편 말곤 없다. 아내의 떨어진 삶의 질을 높여줄 수 있는 게 남편이 아니라 다른 무엇, 또는 다른 어떤 이라면 그 남편은 스스로를 돌아봐야 할 필요성이 있다. 곧 끝날지도 모르고 어쩌면 더 오래 입덧이라는 덧에 걸려 고생할 아내를 위해 남편들은 오늘도 더 부지런히 센스를 쥐어짜서라도 발휘해야 할 것이다. 바로 나부터.


 아참, 입덧 완화에 있어서 시원하고 맑은 공기, 또는 바람을 쐬는 것이 도움이 된다고 한다. 임신부에게 가벼운 산책도 좋다니 일석이조이다. 그래서 나는 환기도 자주 하지만 아내와 함께 밤 산책 또한 자주 하려고 한다. 입덧이 완화되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내의 기분이 조금은 환기되는 것을 본다. 그럼 나도 좋아진다. 내가 좋기 위해서는 아내를 좋게 해야 한다. 결국 아내를 좋게 하면 나도 좋아진다. 그럼 예쁨이도 좋겠지?


 이제 임신 11주차에 접어들었다. 예쁨이의 신체기관은 자리를 잡았고 여전히 심장은 일반 성인보다 빠르게 뛰고 있다. 양수에 둥둥 떠 헤엄을 치기도 한다. 중요한 감각을 배우고 있는 시기이고 이등신에서 삼등신으로 변해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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