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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결된 봄 Jul 28. 2020

해결된 봄:남편의 임신_ 애초에 다 내 일 이었다

남편의 임신에 한걸음 다가서기 <임신 12주차>

 첫 임신을 맞이하고 글쓰기를 시작할 때 이렇게 적었다. '아내의 임신에 남편이 할 수 있는 일은 함께 임신하는 것입니다.'라며 주제넘게도 넘치는 근자감을 보였다. 그러면서 이 글들의 제목을 [남편의 임신]이라 정했다. 여전히 남편의 임신은 내 목표이긴 하지만, 겨우 한 달 반 조금 넘은 시점인 지금 생각하면 얼마나 웃긴 말인지 모르겠다. 남편의 임신이라니... 나도 함께 임신하겠다니... 이런 부끄러움이 찾아온 이유는 이제 임신 12주를 보내고 있는 상황에서 여전히 나는 임신하지 못했기 때문이고 아내는 너무 잘 해내고 있으나 그 안에서의 외로운 싸움을 보게 되기 때문이다. 나름 열심히는 한다고 하지만 결국 내가 정한 나의 한계가 찾아오면 처음 마음이 와르르 무너지는 순간을 겪게 된다. 하지만 엄마가 된 아내가 워낙 강해서 순항 중이니 가만 보면 생명이 생명을 강하게 한다. 


 봐야 할 책이 있다면 최대한 가까운 곳에 꺼내어두려고 한다. 그중에 가장 우선순위는 **출판사의 [임신출산육아대백과]책이다. 이 책은 명실상부하다. 이 한 권에 정말 많은 내용들이 들어있고 실제로 임신 관련한 책중에 최고의 베스트셀러라고 한다. 임신하고 이 책 모르면 외 딴 시골에 선택적 고립되어 있는 자연인 수준인 것이다. 다른 임신 관련된 서적을 보지 않아서 정확한 상대평가는 어렵지만 분명 좋은 책임에는 틀림없다. 그림과 사진이 많기 때문이다. 여하튼 이 책에서 남편이, 곧 예비 아빠가 해야 할 일들에 대해 곳곳에서 소개하고 있지만 특별히 임신 초기에 예비아빠가 할 일에 대해 한 페이지 정도의 분량으로 정리해서 안내해주고 있다. 이 리스트를 통해 현재 내가 잘하고 있는지 못하고 있는지에 대해 희미하게나마 판단해 볼 수 있다. 다행히 나는 꽤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는 것 같다. 다분히 주관적이다. 




 임신은 축복이다. 


 그러니 임신의 과정을 거쳐 이 땅에 태어난 우리는 모두 축복된 존재들이다. 갓 블레쓰 유! 하지만 임신의 최전선에 있는 당사자인 아내는 기대감과 함께 불안감 등 여러 감정적, 신체적 변화를 맞이하게 된다. 건강한 아기를 출산하고 사랑스러운 부부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예비 아빠인 남편이 적.극.적.으.로. 임신 기간을 함께 해야 한다. 절대 아내가 홀로 싸우고 있다고 생각하게 만들지 말자. 내 편이 있다는 것은 생각보다 큰 힘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책을 보니, 남편이 꼭 해야 할 집안일에 대해 말해주고 있는데 이것을 기반으로 스스로를 돌아보니, 그리고 몇 주 경험해보니 어마어마한 결론이 도출됐다. 


내가 아내를 지원하겠다며 하고 있는 거의 모든 가사 일들이 애초에 내 일이었더라.


 집안일을 열심히 하며 생각해보니 아내를 위해 하는 게 아니었다. 내가 먹을 밥 내가 짓고, 내가 먹은 거 내가 설거지하고, 내가 먹다 남은 음식물 내가 버리는 거였다. 내가 버린 쓰레기를 내가 분리수거하는 거였고 내가 더럽힌 집을 내가 청소하는 거였고 내가 입었던 옷을 내가 빨래하고, 내가 입을 옷을 내가 널고 개켜 정리해두는 것이었다. 내가 먹을 먹거리들을 사기 위해 장을 보는 것이었고 내가 키우는 화초에 내가 물을 주는 것이었다. 아내를 위해 발 벗고 나서서 하고 있는 일들의 대부분이 사실 아내를 위한 일이 아니라 내가 당연히 해왔어야 할 일들이었다. 솔직히 좀 충격적이었다. 아내는 수년간 공동의 일을 자기 일이라 여기고 묵묵히 남편을 돕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남의 편 되기 쉬운 우리 남편들은 더 많이 경험하고 깨달아야 한다. 그리고 노력해야 한다. 책에서 소개하는 몇 가지 남편의 역할을 참고해서 나름 정리해보았다. 남편의 임신에 한 걸음 다가서는 방법들이다.




1.아내의 몸과 마음을 이해한다 : 입덧, 호르몬 변화로 인한 감정 기복, 배가 불러오고 체중이 늘면서 혼자서도 쉽게 해내던 일을 이제는 혼자 해내지 못하는 문제 등을 보며 절대 비난하거나 낯설어해서는 안된다. 아내도 그러고 싶어서 그러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조절할 수 없는 임신의 과정이기 때문이다. 아내의 그런 신체적, 감정적 변화에 맞서는 게 아니라 수분이 필요했던 스펀지처럼 기다렸다는 듯이 수용하고 흡수하며 더 따뜻하게 바라보자. 남편은 임신을 실제로 겪어보지 못하기 때문에 완벽한 이해는 있을 수 없을지라도 완벽한 이해를 향해 애쓴다면 그 마음을 아내가 읽어주지 않을까?
2.아내가 필요한 것을 알아둔다 : 특히 임신 초기엔 식욕이 떨어지고 쉽게 지친다.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내며 곁에서 챙겨줄 수 있는 것들을 미리 준비하자. 먹을 것은 물론이고 임신 중기 이후에는 손 발 저림과 부종이 생기므로 마사지를 해주면 좋겠고, 먼 곳으로 외출하지 못하는 아내를 위해 가까운 곳으로 자주 산책하며 아내의 컨디션에 대해, 그리고 태어날 아이에 대해 충분한 대화를 주고받으며 소소한 행복을 누리자. 요즘은 특히 산책하기 좋은 날씨이므로 미세먼지가 심하지 않다면 아내와 아주 잠깐이라도 함께 산책하곤 하는데 그 시간은 길가에 핀 이름 모르는 꽃처럼 참 싱그럽다.
3.아기에 대한 사랑을 표현한다 : 임신 초기엔 아내의 배가 많이 부르지 않고 태동도 없기 때문에 아이에 대한 존재를 실감하기가 쉽지 않다. 그렇다고 태어날 아이에 대해 무심하다면 아내에겐 상처가 될 수 있고, 혼자 해쳐가야 하는 길로 생각될 수 있기 때문에 존재감이 느껴지지 않아도 사랑스러운 태명을 지어주고 배를 쓰다듬어주며 말을 건네는 등 애정과 기대감을 표현하자. 나는 매일 예쁨이가 자라고 있는 배 위치에 조심스레 손을 대고 기도한다. 예쁨이를 위해 기도하기도 하지만 예쁨이를 품고 있는 사랑하는 아내를 위해 기도한다. 위에 말한 것처럼 처음엔 아내의 배에 아이가 있다는 게 실감이 되지 않았지만 12주차를 지나고 있는 지금은 그 존재가 확실하다. 전엔 출근해서 일을 하다 보면 아내만 보고 싶었는데 이제는 예쁨이도 보고싶다. 태아를 어떻게 볼 수 있느냐고 질문할 수 있겠는데, 나는 아내의 배를 보면 예쁨이를 보는 것이다. 아내의 배에 손을 대면 예쁨이를 만지는 것이다.
4.담배를 끊고 술을 자제한다 : 애초에 담배와 술을 하지 않는 나는 이거 하나는 정말 잘하고 있다. 담배는 2차 간접흡연뿐만 아니라 3차 간접흡연까지 있다고 하는데 이 또한 임신부에게는 매우 위험하다고 한다. 담배는 줄이는 게 아니라 끊는 것이다. 술 또한 몸에 밴 냄새로 인해 아내의 구역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으며, 술을 좋아하는 부부였다면 이제 더 이상 좋아하던 것을 즐기지 못하는 아내를 위해 함께 참는 모습도 아내에겐 감동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술, 담배는 참을 일이 없는 대신 치킨과 고기를 줄여가고 있다. 엄청난 정신력으로 말이다.
5.정기검진에 동행한다 : 매번 강조하지만 병원은 함께 가는 것이다. 아내를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남편을 위해서이기도 하다. 함께 가면 아내와 태아에 대해서 더 자세한 정보를 들을 수 있고 궁금증을 해결할 수도 있다. 특히 병원에서 맞는 예쁨이의 심장소리와 초음파 모습이 주는 감격은 현장이 아니면 절대 만끽할 수 없다. 아내만 병원에 가면 남편은 100중에 50을 알게 될 것이지만 함께 간다면 100중에 90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내가 알고 모르고의 차원을 넘어 아내를 이해하고 감정을 공유하는 부분에 있어서도 매우 큰 역할을 한다. 또한 아내만 병원에 가게 되면 아내의 감정은 100중에 50이 될 것이고 남편이 든든하게 함께 간다면 아내의 감정은 100중에 90 이상이 될 것이다. 나도 앞으로의 병원 일정에 함께 할 수 있을지는 정말 미지수이지만 매번 함께 갈 수 있기를 비상한 잔머리를 굴려 노력할 것이다. 회사는 임신 기간 남편의 병원 동행 외출을 장려하고 독려하라! 더 나아가 병원 예약 시스템과 근로복지공단이 협력하여 자동적으로 아내의 병원 일정에 맞게 회사 정문에 벤을 준비시켜주어 집에서 아내를 픽업한 후 병원에 함께 갈 수 있게 해 주었으면 좋겠다. 기가 막힌 사업 아이템이다.
6. 집안일은 공동의 일, 적극적으로 한다 : 임신 초기는 모든 환경과 상황으로 인한 유산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아내는 무리하지 말아야 하며 절대 안정을 취해야 한다. 아내와 태아의 안전을 위해 남편은 이전보다 부단히 애쓰며 자기 할 일을 해내야 할 것이다. 집 안의 위험한 요소도 제거해야겠다. 미끄러운 곳에 미끄럼 방지 매트를 붙인다던지 욕실의 바닥은 늘 물이 잘 마르도록 환기를 잘해야 할 것이다. 사용빈도가 잦은데 높은 곳에 있는 물건이 있다면 낮고 접근하기 편한 곳에 옮긴다. 임신부의 영양은 태아에게 집중되기 때문에 저혈당 현기증이 일어나기 쉽다. 게다가 호르몬의 불균형으로 인해 아내의 균형 감각이 예전 같지 않을 수 있다고 한다. 그러니 아내가 높이 올라서는 일은 없게 하자. 과잉보호하자. 또한 굳이 필요 없는 물건들은 잘 정리하는 등 안정적이지 않은 자세를 취하게 만드는 모든 환경을 제거하자. 또한 깔끔히 정돈된 환경을 만들어줌으로써 아내의 정서에 한몫해보자. 기억하자. 내가 안 하면 아내가 한다. 내가 하면 아내가 쉰다.
7.먼 곳으로의 여행과 행사 참석은 자제한다 : 여행은 물론 가족 및 친인척의 경조사나 민족 대명절이라 할 지라도 우리의 우선순위는 아내와 태아의 안전이다. 두 말하면 입 아프다. 가재도 아내 편, 게도 아내 편이 되어야 하겠다.




반가운 말 한마디


나는 말했다. “여보, 12주 동안 너무 고생했어.” 아내가 말했다.

여보도 정말 고생 많았어.


 나는 별로 고생한 것도 없는데 이 한 마디에 대단한 고생이 있었다는 듯 마음이 녹았다. 이제 드디어 12주차가 되었다. 임신에 있어서 12주는 굉장히 의미 있는 숫자다. 그리고 목이 12센티가 되도록 빠져라 기다려지는 날이다. 12주차가 되면 기형아 검사를 하기에 그렇다. 기형아 검사라는 단어에서 풍기는 부정적인 향에 비해 실제로는 크게 불안하지 않다. 다만 잘 있다는 그 반가운 한마디는 임신 기간의 삶을 더 풍요롭게 하기에 오늘 우리는 풍요로워지러 간다.




 휴가가 생겨 요 며칠 자고 싶을 때 자고 일어나고 싶을 때 일어났다. 하지만 오늘은 병원 진료가 있는 날이다. 일찍 일어나 모자를 눌러쓰고 서둘러 집을 나섰다. 아내는 가는 길 차 안에서 속 쓰림을 호소했다. 입덧이 끝난 건 아니지만 전보다 많이 좋아져 이제 고기도 먹고 냉장고 냄새도 맡을 수 있지만 여전히 속 쓰림은 남아있다. 그래도 입덧은 보통 12주부터 사라진다고 하는데 기가 막히게 아내도 12주를 기점으로 입덧이 사라지고 있는 중이다. 일단 속이 쓰려하는 아내는 무엇이라도 먹어야 한다. 아침 먹을 여유가 없어서 일단 편의점에 들렀다. 오늘 검사가 얼마나 걸릴지 모르니 속 쓰림만 잠재울 겸 초코우유와 편의점 김밥으로 아침을 때웠다.(단것을 먹고 초음파를 보면 아이가 좀 더 활동적이라는 말이 있다)

 여느 때처럼 좁고 경사진 지하주차장에 곡예하듯 들어가 주차를 했다. 처음엔 뭐 이런 주차장이 다 있냐며 볼멘소리를 했는데 지금은 아내마저 능숙하다(능숙할 때가 제일 위험하대. 끝까지 조심해줘). 평일이라 그런지 사람들이 많지 않았다. 여기저기 지나다니는 임신부들의 모습은 모두 제각각이다. 아내처럼 누가 봐도 임신부가 아닌 것 같은 사람들부터 적당히 배가 볼록한 사람들, 출산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만삭의 임신부들, 그리고 출산 후인지 환자복을 입고 지나다니거나 휠체어에 앉아 복도를 오가는 사람들. 모두 다 내 존중의 대상들이라 마음으로 이렇게 응원하게 된다. '대단하십니다. 위대하십니다. 애쓰십니다. 힘내십시오. 고맙습니다. 건강하세요. 순산하세요, 잘 회복하세요.' 


 먼저 초음파실로 향한다. 오늘은 처음으로 복부 초음파로 입체 초음파까지 본다. 들어가자마자 자리를 잡았다. 아내는 초음파 침대에, 나는 보호자 의자에 앉았다. 아내 배에 차가운 젤을 응가 모양으로 짜내고 기계를 가져다 댔다. 그리고 바로 예쁨이의 엄청난 모습이 모니터에 담겼다.  

 풉 하고 웃음을 뱉다 삼켰다. 이건 뭐 교과서인가? 너무 뱃속에 태아같다. 아니, 뱃속에 태아가 맞는데 이게 너무너무 태아 같지 않은가? 손으로 그리라면 정말 잘 그릴 수 있을 만큼 확실한 선을 가진 우리 예쁨이였다. 초음파 영상은 선명하지 않은데 실제 봤던 모니터에서는 예상보다 훨씬 선명한 선을 가지고 있었고 생각보다 정말 많이 자랐다. 이제 정말 사람이다. 전화하면 받을 것 같고, 길 물어보면 알려줄 것 같다. 내가 12주의 태아의 모습을 잘 알지는 못하지만 모니터를 처음 봤을 때의 직감은 분명 아주 건강하게 자라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 초음파 모습을 보는 순간 그냥 너무 신기하고, 임신이라는 단어로는 표현을 할 수 없는 어떤 무한한 감정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이제 그저 아내가 ‘임신했다’가 아니라 우리 바로 옆에 ‘생명이 찾아왔다.’ 감격의 눈물이 다크까지 찼다.


 이리저리 초음파가 예쁨이를 비췄다. 심장도 참 잘 뛰고 있었다. 초음파 선생님은 마우스 포인터로 목의 두께와 예쁨이의 키 등을 굉장히 능숙하게 측정했다. 초음파만 하시는 분이라 그런지 기계가 아내의 배를 여기저기 시원하게 가로지르며 할 일을 했다. 그때 예쁨이는 꼬물꼬물 움직이다가 팔과 다리를 꼬았다. 나 쉬운 태아 아니다 라고 어필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곧 말로만 들어본 입체 초음파를 볼 수 있었다. 그림자처럼 보던 일반 초음파와는 다르게 원근감과 질감까지 느껴지는 듯한 입체 초음파는 신세계였다. 처음 나왔던 휴대폰의 단음 벨소리를 듣다가 16화음 오케스트라 휴대폰 벨소리를 들었을 때의 업그레이드 감이라고 하면 얼마나 많이들 이해하실까? 역시 휴대폰은 잘 걸리는 걸리버. 중요할 땐 꺼두셔도 좋습니다 스피드 011. 요금제는 나눠 쓰는 비기 알 요금제. 여하튼 아직 이목구비나 성별을 구별할 만큼 뚜렷하진 않지만 입체 초음파는 확실히 머리와 몸, 팔과 다리, 탯줄과 예쁨이의 움직임이 더 섬세하게 담겼다. 

 12주 입체 초음파 사진이다. 아름답게 빚어지고 있다. 황홀한 초음파를 마친 후 상담실에 가서 간단한 문진을 했다. 병력이나 수술력 등을 확인하고 산전검사의 항목을 체크했다. 예를 들면 풍진이나 A형 간염, B형 간염, 수두 등이었다. 오늘 또 한 번의 채혈을 통해 다시 필요한 항체들을 확인할 거라고 한 것 같다. 


 상담실에서 나와 이제 담당 의사 선생님을 만났다. 드디어 오늘 1차 기형아 검사의 결과를 들을 시간이다. 촬영된 초음파를 이리저리 보시며 매우 확실한 어조로 이야기를 하시기 시작했다. 가장 긴장되는 순간이었다. 일단 오늘 검사 결과로는 목 두께의 수치 정상, 태아의 크기도 정상, 코 뼈도 잘 자랐고 뇌의 발달도 잘 되고 있단다. 탯줄도 잘 있고 손 발도 잘 발달하고 있다고.. 부족했던 양수도 이제 적당하다고..(물 먹느라 고생했어 여보. 쉬 싸느라 고생했어 여보) 요즘 나에게 있어서 최고의 순간은 아내가 건강하다는 소리와 아기가 잘 있다는 소리를 들을 때이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정말 기뻤던 것은 의사 선생님의 입에서 ‘안정기’라는 단어가 나왔다. 전에 썼듯이 임신에 있어서 안정기란 없지만 그래도 아주 조금은 안심할 수 있는 단계에 오면 ‘안정기’라는 단어를 쓰나 보다. 의사 선생님께서 안정기에 들어섰으니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조금씩 활동해도 좋다고 말씀하신다.(산책은 30분부터 조금씩 늘려가는 게 좋다고 한다) 선생님의 ‘안정기’ 거론은 마치 마법의 주문처럼 우리 마음을 안정시켰다. 반가운 말은 백번 천 번 들어도 좋다. 이 반가운 말 몇 번 더 들으면 곧 산달이 되겠다.


 그렇게 진료실에서의 조우를 마치고 다음 예약일을 잡았다. 함께 오고 싶어서 토요일로 잡았다. 이제 4주를 기다려야 한다. 지금까지의 병원 방문 간격 중 가장 긴 시간이다. 기다림의 시간이 참 길겠다 생각을 하며 수납을 하고 채혈을 했다. 수납은 10만 원 중반의 금액이 나왔고 국민행복카드는 곧 동이 날 예정이다. 아참 가입한 태아보험의 1차 선물을 받고, 2차 메인 선물을 고를 수 있는 선택안도 받았다.(태아보험은 임신 22주 전에 드는 게 좋다)


 2차 기형아 검사는 한 달 뒤이다. 오늘 검사한 항목 중 결과를 조금 기다려야 하는 것은 전화로 안내를 해주신다고 했고 최종 검사 결과는 2차 검사까지 한 뒤에 알 수 있다고 한다. 지난 시간도 그랬고 오늘도 그랬듯 다가올 모든 임신의 시간은, 걱정이 사치였구나를 자각하는 순간이 될 것이다. 

 아내와 집으로 돌아갈 때의 마음은 바람 한 점 없는 날씨에도 두둥실 떠다니는 민들레 씨 같았다. 2주 동안 얼마나 자라 있을까, 잘 자라고 있을까, 몸 상태가 썩 좋지 않았는데 건강하게 있는 걸까, 이렇게 매일매일 수 백 번씩 궁금했는데 이제 해소를 넘어 해결이 된 느낌이었다. 여전히 성별이 궁금하긴 하지만 중요하지 않다. 그저 내가 지금 예쁨이에게 말하고 대할 때 딸로 여길 때도 있고 아들로 여길 때도 있어서 이것을 통일하고 싶은 마음뿐이다. 가끔 혼란스럽다. 집에 도착해서도 우린 예쁨이 이야기를 한다. 아내는 초음파 영상을 놓질 않는다. 엄마구나. 이미 엄마구나. 고마워 여보. 멋이나 여보.




 이제 완만한 고개고개를 넘다가 큰 산 하나 겨우 넘었다. 앞으로도 크고 작은 고개들을 계속 넘어야 한다. 혼자 가면 어려운 길이지만 둘이 가면 완주하고도 힘이 남을 거란 생각으로 열심을 다하고 싶다. 내가 아무리 고생 한다한들 아내의 고생을 반만이라도 따라갈 수 있을까. 사실 처음부터 내가 말하고 있는 남편도 임신해야 한다는 말은 되지도 않는 말이다. 다만 그 마음으로 임신의 여정을 진정성 있게 걷는다면 아내가 더 힘을 낼 수 있지 않을까. 어떤 노래의 가사처럼 ‘피곤하면 잠깐 쉬어 가자’, ‘물이라도 한 잔 마실까’, 하며 늘 마음 전하며 같이 부지런히 걷다 보면 도착해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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