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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결된 봄 Oct 30. 2020

해결된 봄:남편의 임신_ 가두어 놓는 새장이 아니라

생존을 넘어 기쁨의 공존으로. <임신 35주차>

 차가운 냄새가 숨으로 들어오고 새벽 출근길 차량 계기판엔 결빙을 조심하라는 간만의 메시지가 뜬다. 겨울에 만나자던 예쁨이는 약속을 완성할 준비를 하고 있다.

 

 임신 246일째. 35주 1일. 임신 9개월. D-34. 아기가 좀 크게 자라는 것을 감안하면 이제 한 달 남았다고 봐도 무방하다. 이 정도면 이제 다 온 것 같다. 뭔가 곧 후련하게 끝날 것만 같은 시기이다. 하지만 임신과 출산, 육아는 마치 12라는 숫자를 향해 돌고 또 도는 시계바늘 같아서 끝은 또 다른 시작이 되고 숨 고를 틈 없이 경주는 이어진다. 


 하루에 두 바퀴 느릿하게 도는 시침이 남편이라면 하루에 스물 네 바퀴를 서둘러 돌아야하는 분침은 아내와 닮았다. 부부가 함께 겪는 임신이라는 일생 일대의 사건 앞에 아내가 감당해야 몫이 더 크고 많다는 건 참으로 유감이다.


 그런 아내에게 어떻게 위로가 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남편의 임신]을 낳았다. 관심하면 공감이 생기고 공감하면 지혜로운 말과 행동이 쌓인다. 수북이 쌓인 남편의 노력은 폭풍 속에 있는 아내의 기쁨이 되어 결실을 맺을 것이다. 




 퇴근하는 길에 충동적으로 꽃을 한 다발 샀다. 전에 썼던 글처럼 결국엔 시들어 겨우 며칠 만에 향기가 큼큼한 냄새가 되고, 가차 없이 종량제 쓰레기봉투로 향할 '잘린 꽃'이라는 존재에 큰 돈을 쓰고 싶지 않은 무드 1도 없는 본인이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오로지 싱그러운 지금 순간의 꽃에 가치를 부여하게 되었다. 그러니 얼마이고는 중요하지 않았다.


 작은 카드에 그간 고생 너무 많았다며, 애썼다며, 그리고 사랑한다며 짧은 글을 날림으로 적고 꽃 사이에 얹었다. 그리고 현관문을 열자마자 아내에게 꽃을 안겼다. 먹지도 못하는 꽃이 뭐라고 그렇게 좋아하는지는 평생 이해할 수 없을 것 같지만 아내의 좋아하는 표정은 내 모든 수심을 집어삼킨다. 


 사실 고생 많았다는 글을 카드에 적으며 또 한 번 슬펐다. 고생이 끝날 무렵이 아니라 진짜 고생이 남은 것 같아서였다. 지금까지 고생했는데 앞으로도 고생을 부탁하는 것만 같았다. 물론 아내가 잘 견뎌내고, 생각보다 체질(?)에 맞고, 내가 아내에게 힘이 되고 위로가 되어 아내가 고생을 고생으로 여기지 않을 수 있다면 금상첨화이겠다. 하지만 이 글들의 제목처럼 남편도 임신한 마음으로 임신기를 보내야 한다고 말해왔던 아홉 달을 돌아보니 스스로에게 썩 좋은 점수를 줄 수가 없다. 그저 '생존'할 수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분명한 건 생존도 못할 사람이 생존해있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다.




 이제 남은 임신기와 출산, 그리고 육아에서는 생존의 문제를 넘어 기쁨으로 공존하는 아내와 나, 그리고 아기. 곧 우리가 되기 원한다. 결혼의 삶은 꼭꼭 가두어 놓는 새장이 아니라 훨훨 날게 하는 창공이어야 한다. 잠시 날개를 접고 있는 아내를 다시 날게 하고 싶다. 우리 함께 날자.



(글은 출산까지 계속해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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