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세상에 깔린 보물 같은 아이디어를 못 보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단순히 머리가 나빠서가 아니다. 보물이 흙 속에 묻혀 있는 것도 아니다. 그건 우리 눈앞에 있는데, 이상하게도 보이지 않는다. 왜냐. 귀찮기 때문이다.
‘Schlep’이라는 이름의 병
유대어에서 온 ‘Schlep’이란 말이 있다. 본디 ‘지루하고 성가신 일’을 뜻한다. 창업을 꿈꾸는 해커들이 제일 싫어하는 게 바로 이런 거다. 서버에 코드를 올려놓고, 돈이 절로 굴러들어오는 걸 상상하는 건 즐겁다. 하지만 그 사이에 고객을 만나고, 회사랑 협상하고, 깨져 있는 남의 코드를 고치는 건… 글쎄, 차라리 모른 척하는 게 마음 편하다.
사업이란 귀찮음을 감당하는 일
문제는, 이런 귀찮음이 스타트업의 ‘불가피한 일상’이라는 데 있다. 나(저자)는 1995년에 이 사실을 뼈저리게 깨달았다. 코딩만으로 회사를 세울 수 있을 줄 알았다. 착각이었다. 사업이란 결국 어떤 ‘Schlep’을 감당하느냐로 판가름 난다. 찬물에 발 담그듯 머뭇거릴 필요 없다. 그냥 풍덩 뛰어드는 게 상책이다.
무의식이 만든 눈가리개
더 무서운 건, 귀찮음을 싫어하는 마음이 대부분 무의식적이라는 사실이다. 우리가 체육관에서 올림픽 선수처럼 훈련하지 않는 것도, ‘안 해도 될 것 같은 핑계’를 머릿속이 알아서 지어내기 때문이다.
스트라이프가 본 것, 다른 사람은 못 본 것
결제 인프라 회사 스트라이프의 사례는 그 극적인 증거다. 온라인 결제가 얼마나 지옥 같은 경험인지 해커들이라면 다 알고 있었다. 은행 협상, 보안, 사기, 규제… 듣기만 해도 머리가 지끈거린다. 수천 명이 이 문제를 알면서도 레시피 사이트나 지역 행사 모아보기 같은, 안전하고 만만한 아이템에 손을 댔다. 어려움이 눈앞에 보이니 아예 ‘생각 후보’에서 지워버린 것이다.
무서운 아이디어가 더 값진 이유
아이러니하게도, 이렇게 무서운 아이디어일수록 경쟁이 적다. 주식으로 치면 ‘저평가 종목’이다. 남들이 기겁하고 돌아서는 사이, 한 걸음 더 들어간 사람이 독식한다.
어떻게 이 눈가리개를 벗을까. 한 가지 방법은 무식한 용기다. 젊은 창업자가 종종 성공하는 건, 자기가 얼마나 힘든 일을 마주할지 모르고, 또 자기가 얼마나 성장할 수 있는지도 모르는 두 가지 착각이 절묘하게 균형을 이루기 때문이다. 나이든 창업자는 후자만 착각한다.
질문을 바꾸면 보인다
하지만 무식함만으로는 안 된다. 어떤 일은 보기만 해도 겁난다. 그럴 땐 질문을 바꿔야 한다. “내가 풀 문제”가 아니라 “누군가 제발 대신 풀어줬으면 하는 문제”를 떠올려 보는 것이다. 온라인 결제를 해본 사람이라면, 스트라이프 같은 서비스가 가장 먼저 머리에 떠올랐을 테다.
귀찮음을 뚫고 나가는 용기
세상은 여전히 불편한 것 투성이다. 귀찮아서, 무섭게 보여서, 남이 하겠거니 하고 외면한 일들이 여기저기 널려 있다. 그걸 볼 수 있는 눈, 그리고 뛰어드는 용기. 그 둘이 만나면 세상은 조금씩 바뀐다..
https://www.paulgraham.com/schlep.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