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여린 이들에게 건네는 위로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몫
일 년
답신
파종
이모에게
사라지는, 사라지지 않는
우리는 어떤 이들을 '여리다'고 여길까. 내면이 유약하고 쉽게 상처받는 이들? 타인의 말에 잘 휘둘리는 이들?
'여리다'의 사전적 정의는 다음과 같다. 1. 단단하거나 질기지 않아 부드럽거나 약하다, 2. 형용사 의지나 감정 따위가 모질지 못하고 약간 무르다. 부드럽거나 약하다, 무르다 등 모호한 단어로 가득하기에 여전히 답을 모르겠다. 하지만 책을 읽으며 '상대방의 눈치를 많이 보는 이들'이 사실 가장 여리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희미하게 들었다.
단편 속 주인공들은 공기에서 무언가를 읽는다. 상대방의 미묘한 변화를, 타인이 지금 느끼는 감정을, 누군가 나보다 내 친구를 좋아하고 있음을. 그 사소하고 미묘한 차이를. 다른 사람의 기분과 상태를 살피느라 자신을 돌보는 것을 뒤로 미룬다. 혹은 상대방이 상처주기 전에, 눈치 보는 상황이 생기기 전에 마음의 문을 닫는다.
<일 년>의 주인공 지수는 의도치 않게 다희에게 상처가 되는 말을 했지만 아무런 변명도 하지 못했다. "다희의 상처를 자기 관점으로 다희에게 설명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자신의 변명이 다희에게 오히려 더 큰 상처가 될까 봐. "적극적으로 상황을 설명하는 것이 다희의 상처를 덜어내는 방법이었을까 뒤늦게 생각해보기도 했지만, 변명으로 들릴 말을 하느니 깨끗하게 사과하는 편이 나았으리라는 판단은 달라지지 않았다." 의도하지 않은 가해였기에 억울할 수도 있었을 텐데, 지수는 억울함 하나 느끼지 않고 침묵을 택했다. 다희가 더 상처 입지 않기를 바라며.
민주(<파종>) 역시 본인의 감정이 타인에게 이해받을 수 있을지 골몰히 생각하다가 끝내 말하지 않는다. 민주는 자신의 마음을 자주 들여다보았기에 상대방의 어떤 행동에 상처받는지도 알고 있었지만, 그를 말하지는 못했다. 이해받지 못할 것을 알았기에. 민주는 다음과 같이 생각하며 견딜 뿐이었다. "핸드폰을 집에다 두고 나온 채 이십 분을 늦은 친구에게, 내가 좀 있다 연락할게, 기다려봐, 이야기하고 다시 전화하는 것을 잊은 애인에게 그녀는 내색하지 않았지만 깊이 상처받았다. 기약 없이 기다리는 일이 꼭 버려지는 것 같아서였다. 눈물이 났지만 그 마음을 누구도 이해할 수 없으리라고 생각해서 그저 참았다."
반면에, <이모에게> 속 이모와 '희진'은 자신의 감정을 외면하는 방법을 택했다. 사람에게 기대하지 않고 자신에게 엄격해지는 방향으로. 자신을 몰아세우는 방향으로. 희진은 "아무것도 느낄 수 없도록 마음을 닫는 일"이 주특기였고 "눈물을 보이거나 하소연하는 동기들을 멀리했다. 그런 나약함이 자신에게 전염될 것 같아" 두려워서.
희원(<아주 희미한 빛으로도>)은 자신의 글이 남들에게 어떻게 읽힐지 의식하며 글을 썼고, <답신>의 화자는 남들이 자신을 좋아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고민하며 성장했다. 그리고 기남(<사라지는, 사라지지 않는>)은 딸의 눈치를 보는 것이 자신도 모르는 새 습관이 되었다.
타인만 골몰히 생각하다 보면 자신을 잃기 쉽고 자신의 행동에 스스로 상처받곤 한다. 생각이 너무 깊어질 때에는 상대방에게도 상처를 줄지도 모른다. 안타깝게도 상처는 무뎌지지 않는다. 언젠가 곪아 터진다. 그렇다면 마음이 여린 이들은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생각이 많은, 끝없이 타인의 감정을 살피는 나는, 그래서 최은영 작가님의 책을 읽는다. 나와 비슷하게 생각하는, 너무 많은 생각으로 자신을 다치게 하는 글 속 인물을 들여다본다. 그들에게 애정을 가지며, 그들의 행동을 이해하며 그들과 비슷한 나에게도 마음을 준다. 그렇게 나의 상처를 쓸어내린다. 작가님은 이렇게 나를 수차례 살려냈다. 그리고 아마 여린 마음을 가진 수많은 이들도 살려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