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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백만엔걸 스즈코>

도망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by 희구

https://youtu.be/iQV1yCzTulw?feature=shared


착한 사람을 이용하려는 이들이 너무 많다.


좋은 분위기를 깨고 싶지 않아서, 상대방의 기분을 상하게 하고 싶지 않아서, 혹은 이미 말했는데 들어주지 않아서 함구하게 된 사람들이 있다. 누군가는 이를 보고 답답하다고 느낄지도 모르고, 정면으로 돌파하지 못한다며 비겁하다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알아두어야 할 것이 있다. 가장 답답해하는 사람은, 누구보다 말하고 싶은 사람은, 본인이다. 그들은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자신을 자책하며 자신도 모르는 새 곪아가곤 한다. 타인들이 나서서 비판하지 않아도, 이미 스스로를 비난하고 있다. 반복하고 또 반복하며.


스즈코는 나와 비슷했다. 웃으며 넘기기를 가장 잘하는 사람. 싫어도 거절하지 못하는 사람. 못하겠다는 말을 못 하는 사람. 나보다는 타인이 우선인 사람. 우리는 싫다고 말하는 대신 조용히 입을 닫는 것을 택했다. 그 사람이 더 이상 나를 좋아하지 않을까 봐, 그의 신뢰를 저버릴까 봐, 나만 힘들면 되는 일이 괜히 커질까 봐. 그 결과 나는 4년 전에 꽤나 아팠고 그때를 떠올리면 여전히 괴롭다. 자책밖에 할 줄 몰랐던, 그래서 불안정했던 나를 마주하기가 아직 조금 힘들다.


그래서일까, 영화를 보며 화가 많이 났다. 스즈코를 이용하려는 사람들에게. 거절하지 못하는 마음을 이용하려는 이들에게. 그들의 반복된 소리침은, 모든 책임을 묻는 비난은 스즈코뿐만 아니라, 나도 답답하게 만들었다. 스즈코가 마치 나 같아서 도망치는 스즈코를 응원하고 싶었다. 스즈코가 가는 도망의 길을 함께 걷고 싶었다. 회피가 나쁘기만 할까. 스스로를 몰아세우며 자책하기보다는 달아나는 것이 낫지 않을까. 우리는 아프지 말고 차라리 멀리 떠날 필요가 있다. 침묵에 웃음으로 답해주는 이들이 있는 곳으로.






타쿠야에게

한동안 편지 못 해서 미안해

누나는 잘 지내고 있어

나는 내가 훨씬 강한 사람이라고 생각했거든

하지만, 그게 아니었어

가족도, 연인도...

오래 함께 있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말을 안 하는 것이라고 늘 생각했어

얌전하게, 적당히 웃다 보면 문제없이 지낼 수 있을 거라고 말이야

어느 사이엔가 아무 말도 못 하는 관계가 되는 건 불행한 일이야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이 있기 마련인데

그 헤어짐이 두려워 누나는 무리를 했던 것 같아

하지만, 만나기 위한 헤어짐임을 이제 깨달았어

좋아하는 사람과 헤어졌다고 해도 조금도 울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어

누나가 이런 말을 해도 위안이 되지는 않겠지만

타쿠야는 잘못한 것 없어

정말 기특해

누나는 많은 사람들로부터 도망쳐 왔지만

이번에야말로... 새로운 곳에서 내 힘으로 떳떳하게 살아갈 생각이야

타쿠야에게서 용기를 얻었어

고마워

스즈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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