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쳐 지나가는 것들
인생은 마치 버스, 그리고 나는 버스 기사이며 나와 관련된 이들은 나의 버스에 탔다가 내리기를 반복한다는 말이 있다. 그리고 그 말에 누군가는, 내 버스는 설국열차이기에 아무도 못 내린다는 농담 섞인 진심을 적기도 했다.
나는 내 인생을 스쳐 지나간, 그중에서도 나와 관계를 깊게 맺었던 많은 이들을 사랑했다. 사랑에는 어느 정도 폭력적인 부분이 있기에, 내 사랑을 받아낸 이들이 마냥 행복했을 것이라 생각할 수는 없겠지만, 나는 그들을 꽤나, 꽤 많이 좋아했다. 환경에 의해 헤어져야 하는 시기가 오면 그때마다 눈물이 났고, 시간에 의해 멀어져야 했던 관계들은 오랜 시간이 지나도 잊히지 않았다. 나는 많은 시간을 그들과 함께 했던, 같이 어울리던 그때를 떠올려보는 데 쓰곤 했다. 참 웃기게도, 눈물과 추억 회상은 힘이 약한 것인지 뭔지. 엉엉 울다가도, 한 시절을 그리워하다가도, 조금의 시간이 흐르면 나는 다시 나에게 집중해 버렸다. 내가 해야 하는 일을 하고,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돌보고, 지금의 나를 채워주는 존재들과 시간을 보냈다. 나는 그런 내가 종종 가증스러웠다. 눈물은 진심이었는데도, 행복했던 그 관계를 복기할 때에는 진심을 다해 부러워했음에도, 금방 잊어버리곤 했기에. 나의 진심의 농도는 너무나도 옅지 않은가, 하며 자조했다. 언제나 나를 자책하는 데 익숙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아무려나. 모든 관계는 왔다가 떠난다. 관계뿐만이 아니다. 한 시절 열렬히 사랑했던 일은 어느새 거들떠보지도 않게 되기도 하고, 단 하나의 목표였던 일은 어느덧 희미해진 채 기억의 저편으로 사라지기도 한다. 나는 아마 앞으로도 그 모든 관계와 모든 일의 상실에 온 힘을 다해 슬퍼할 것이다. 그리고선 다시 씩씩하게 일상생활로 복귀할 것이다. 씩씩한 나를 혐오스러워하기도 하면서. 결국 이 모든 게 나인 것이다. 월계동에서, 바람막이를 꺼내 입고 못난 자신이 갸륵해질 때까지 걷는, 흔하디 흔한 옥주처럼.
"옥주는 여행하면서 많은 것들을 애도했다. 이제 식구들이 월계동에 다 같이 모일 날은 없고 자신의 스무 살 시절과 관련된 많은 이들도 떠나 버렸다는 것을. 잃어버린 사람들을 다른 사람으로 채울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자 비로소 상실은 견딜 만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