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 가득한 세상
사람은 꾸준히 발전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갖고 있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자신을 검열하고 생각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 그 과정에서 나의 부끄러운 면을 마주할 수도 있고 괴로울 수도 있겠지만, 그럼에도 회피해서는 안 된다. 한없이 작아지고 보잘것없게 느껴지곤 했던 나날들. 그날들이 없으면 지금의 나와 5년 전의 나는 동일한 사람이었겠지.
소설 속 정연이 그러해서, 나와 비슷해서 좋았다. 중반까지 정혜를 향한 정연의 마음은 다소 폭력적이라 느꼈고, 그래서 불편함과 찝찝한 마음을 안은 채 정연의 생각을 읽어 나갔다. 읽기를 포기할 수 없었던 이유는, 외국인 노동자를 향한, 원곡동을 보는 정연의 시선 끝에 애정이 묻어있었기 때문에. 잘 모르는 무언가를 애정 어린 시선으로 보는 정연이기에, 정혜를 향한 폭력적인 마음도 시간이 지나면 바뀌리라 믿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렇게 믿음으로써 나의 부끄러웠던 과거, 그리고 부끄러운 지금의 착각들이 미래에는 바뀌리라 믿고 싶었던 것 같기도 하다. 믿음은 배신하지 않았고, 정연은 정혜를 받아들였다.
자기 검열. 끝없이 나를, 또 정연을 괴롭히지만, 그렇다고 포기할 수는 없는 것. 나는 자기 검열을 하는 내가 가끔은 너무나도 밉지만, 그냥 무시해 버리라고 하고 싶지만, 그렇지 않으면 타인에게 상처를 주기 쉽다. 아마도 나는, 그리고 정연은 타인에게 상처를 주었을 때 더 괴로워할 사람이기에 자기 검열을 하는 자신을 사랑할 수밖에 없다.
수많은 차별과 혐오, 부끄러운 생각, 그 부끄러운 생각으로 인해 작아지는 인물을 여과 없이 보여주면서도 결론은 사랑. 어쨌든 사랑. 사랑으로 끝맺음되는 글.
사랑이 가득한 세상이 오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어요, 저도.
"품어선 안 되는 사랑을 품고 있는 사람이라는 건 겉만 봐선 알 수 없었다. 어쩌면 언니를 그런 시선으로 보는 사람은 나뿐인지도 모른다. 언니의 과거를 잘 알고 현재의 마음도 안다고 섣불리 짐작하며, 언니가 자신의 추억들 중에서 무얼 잊고 기억해야 하는지 선별해 주는 폭군인지도. 그러면서도 언니에게 내가 무해하다고 착각하고 있었던 건지도. 정작 언니가 나를 어떻게 생각할지 나는 까맣게 모를 수밖에 없는데. 그토록 잘난 척은. 아는 척은. 잘 살아가고 있는 척은. 어른인 척은." (9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