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 공상

옷의 기억

by 인이상

어린아이는 하얗고 맑은 피부를 가져야 사랑받는다. 제아무리 개성시대라고 해도 사랑받는 ‘아이다움’은 이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나는 어려서 까맣고 깡마른 몸에 툭 튀어나온 눈까지 예쁘게 봐줄 만한 구석이 하나도 없었다.

어른들은 어린 나를 볼 때마다 당혹스러운 시선을 감추지 않고 엄마한테 한마디씩 했다. 아이가 정말 까맣다. 아이가 정말 말랐다. 엄마 아빠만 먹는 거냐. 외할머니는 더 냉정했다. 오빠와 바뀌어서 태어났어야 하는데. 외할머니는 늘 마뜩찮은 시선으로 나를 바라봤다.


자의든 타의든 나는 뇌의 한 부분에 열등감이 각인된 채 성장했다. 소심함, 열등감, 무력감. 나는 늘 누군가의 시선이 두려웠다. 남들이 대화를 주고받는 모습을 보면 혹시 나를 흉보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에 위축되기 일쑤였다.


엄마는 “내가 눈치 주고 키운 것도 아닌데”라며 억울해하고 중증 피해 의식이라며 이런 나를 갑갑해한다. 오빠가 있지만, 엄마 아빠는 아들이라고 특별히 귀하게 여기지 않았다. 생각해보면 딸인 나를 더 애틋하게 생각했다. 나는 엄마와 아빠의 애틋함마저 열등감으로 승화하는 놀라운 감정의 反정화 능력을 가졌다.


나는 열등감으로 무력해질수록 공상으로 도피했다. 공상이 무력감을 해소해주지도 일시적인 행복감을 주지도 않았다. 그런데도 상상할 때만큼은 열등감, 특히 ‘외모 열등감’에서 비롯된 무능감에서 잠시나마 벗어날 수 있었던 듯하다.


공상에서만큼은 내 볼품없는 외모를 타박하는 사람이 없었다. TV 드라마 주인공이 되거나 연예인과 나를 주인공으로 한 상황극을 상상하면서 시간을 무료하게 흘려보냈다. 그때마다 ‘옷은 이렇게, 머리는 저렇게’, 상상의 거울 앞에서 여러 벌의 옷을 갈아치우면서 상상의 공간을 채워갔다.


공상이 망상이 되고 망상이 깊어지면 정신장애가 된다. 다행인 건 망상으로 빠져들지 않아 신경증은 달고 다녀도 정신장애와는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고 있다.


망상으로 악화하지 않았다고 해도 공상은 일상을 지배하고 내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후유증을 남겼다. 공상에 빠져있을 때 얼굴은 불평불만으로 가득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나는 공상에서마저 현실과 단단하게 연결돼있었다. 나의 이 같은 올곧은 고집 때문에 공허한 행복을 갖지 못했다.


공상이 망상이 되고, 망상으로 강화되는 인지 왜곡은 자아를 현실과 격리해 공상에만 묶어두게 된다. 그 단계까지 발전하지 않은 것을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현실을 직시한 눈은 공허한 행복, 공허한 우울을 안기지는 않았지만, 짜증과 콤플렉스는 피하지는 못했다. 피할 수 없다면 대면하라. 공허한 행복감을 위해 자신을 소모하는 자아 과잉의 거짓 충족감이 아닌 현실을 직시하는 냉담한 자기평가가 나의 방식이었다.


엄마 아빠를 너무도 많이 힘들게 했지만, 다행히도 능력치 수준의 바람과 능력치만큼의 시도를 하며 조금씩 성장해 좌절하지 않고 나이 들고 있다.


생각해보면 정말 대견하다. 남들보다 더디지만, 스스로 성장하는 방법을 터득해 뒤뚱거리면서도 앞을 향해 한 발 한 발 나아가고 있다. 지금도 나는 공상을 한다. 사춘기 공상이 나를 거부하는 이들로부터의 도피였다면 지금의 공상은 진정성을 찾기 위한 사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