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피소드 PART 1. 엄마 그늘

옷의 기억

by 인이상

그럴듯한 외모는 풍족한 씀씀이가 필요하다. 어릴 때 우리 집은 가난까지는 아니라도 여유가 없었다. 어찌 보면 아빠는 자린고비가 아니라 그냥 넉넉하게 쓸 돈이 없었던 듯하다. 살림이 어려운 사람들은 불안한 미래로 인해 현실을 즐길 수 없다. 우리 집이 그랬고, 내가 그랬다.


사람은 환경의 울타리를 벗어날 수 없다. 나이가 한참 든 지금에야 알게 됐지만, 마냥 순하고 착해 보이는 엄마는 실은 열정이 넘쳤고, 아빠는 풍족하지 못한 현실에 대한 죄책감과 책임감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우리 집의 팍팍한 현실은 타고난 사랑스러움을 가지지 못한 내게 만들어진 사랑스러움마저도 줄 수 없었다.


그래도 엄마는 최선을 다했고 아빠는 적당히 방관했다. 엄마는 지금도 간혹 헤어핀을 사달라고 졸라대는 나 때문에 얼마 안 되는 반찬값의 절반이 동나기도 했다면서 푸념하듯 털어놓는다. 초등학교 입학 전 모습을 되짚을만한 사진이 많이 없지만, 그 시절 모습이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엄마는 없는 형편에 딸인 내게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 풍족하지는 않았지만, 직접 손으로 짠 옷을 입히고 아빠 눈치를 봐 가며 옷을 사 입혔다. 내가 사춘기 공상에 빠져들기 전, 엄마를 온전히 믿었을 시절에 엄마의 노력으로 봐줄만한 외양을 유지했다.


어린 시절 사진을 보면 까맣고 못난 외모를 가진 손녀를 탐탁지 않게 여겼던 외할머니의 냉담한 시선이 이해가 안 되기도 한다.


외할머니는 어쩌다 보는 손녀딸에게 안부보다 외모를 먼저 언급하셨다. 자격지심이라기에 외할머니의 외모 타박은 변하지 않는 무한반복이었다. 지금도 나는 엄마에게 외할머니가 나한테 도대체 왜 그랬는지 묻는다. 엄마는 외할머니가 어쩌다 한 말을 마음에 너무 오래 담아둔다면서도 원래 차가운 성격이라고 이내 인정한다.


외할머니가 타고난 성정때문에 손녀딸인 내게 냉담했던 것도 있겠지만, 사랑하는 딸에 대한 안쓰러운 마음 때문 아니었을까. 결혼해서 사위가 고생하게 하는 것도 모자라 손녀딸은 약하게 태어났다는 이유로 늘 등에 업혀 다니면서 자신의 딸을 힘들게 한다고 생각하셨던 듯하다.


딸을 고생시키는 손녀딸, 게다가 외모뿐 아니라 성격까지 사랑스러운 구석이라고는 없으니, 마음이 안 갈 수밖에. 엄마가 내 그늘이었다면 외할머니는 엄마의 고생을 알아주고 안타까워해 주는 그늘이었다.


엄마와 늘 티격태격하지만, 나는 지금도 엄마의 그늘에 산다. 주변에서 관심을 가지지 않는 못생긴 딸이지만, 엄마는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사랑스러운 딸’을 만들기 위해 애썼다. 이모의 증언에 따르면 엄마는 결혼 전 양장 기술을 배웠다고 했다. 엄마도 옷을 좋아했는데 직업을 갖기도 전에 결혼해서 평생 꾸미지도 못하고 산다고. 이유야 어쨌든 손재주가 좋은 엄마는 어린 나의 자부심이었다.


이때의 기억이 아마도 외양에 관한 나름의 철학을 갖게 했던 듯싶다. 외모 콤플렉스가 심각한 수준이었지만, 콤플렉스에 무너지지 않고 삶을 다른 방식으로 볼 수 있었던 데는 엄마의 손길로 키워진 어린 시절의 기억이 한몫했다.


나는 획일성에 안도하는 집단의식의 잠재적 폭력성을 거부한다. 삶에는 정해진 형식이나 형태가 있는 것이 아닌 다양성이 존재한다는 사실, 이 진리를 몸에 새기게 한 어린 시절 소외의 경험과 엄마의 최선에 감사한다.


10대가 돼 주변과의 소통에 버거움을 느껴 공상으로 도피한 내가 영원히 세상과 격리되지 않을 수 있었던 것 역시 엄마의 최선 때문이다. 최고는 아니었지만 이보다 더 힘들었을 엄마의 최선은 사춘기의 공상이 망상에 빠지지 않을 수 있었던 결정적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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