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상 1. 파란 손뜨개 원피스 ; 세 살의 행복

옷의 기억

by 인이상

세 살 때쯤. 눈을 감지 않아도 늘 선명하게 떠오르는 기억이 있다. 소심하고 늘 위축돼있던 내가 방에 둘러앉은 사람들의 시선을 의기양양하게 즐겼다. 엄마가 짜준 파란 뜨개 원피스는 내 어깨의 날개가 됐다.


이 베이비돌 스타일의 파란 뜨개 원피스는 특별했다. 뜨개 사이를 촘촘하게 지나 앞가슴에서 가지런히 묶이는 벨벳 블랙 리본은 원피스의 파란 실과 어우러져 다른 옷과 비교 불가의 빛을 발했다. 그 옷을 입고 있을 때만큼은 뇌와 어깨에서 열등감이 감쪽같이 사라졌다.


30초도 안 되는 짧은 순간이었지만, 한참의 시간이 흐른 지금까지 끊임없이 예고편도 없이 재생된다.


엄마 아빠는 내가 제대로 클 수 있을지 걱정스러웠다고 했다. 갓 태어난 나는 조금이라도 힘을 주면 뚝 부러질 듯 가는 팔이 힘없이 축 늘어진 것도 모자라 손목은 얇은 종이처럼 늘 맥없이 접혀있었다. 거기다 커 가면서 남들 다하는 말까지 못 했다. 부진아를 바라보는 엄마 아빠 심정이 어땠을지. 그래서인지 유독 아빠는 내가 대한민국 여성 평균 체형으로 멀쩡하게 사는 것만으로도 대견해했다.


오빠와 달리 성장 부진 때문인지 어린 시절 기상천외 한 행동으로 심장을 내려앉게 하거나, 뭘 해달라고 때 썼던 기억이 없다. 집에서 아빠 등, 목에 올라 말놀이를 하거나 시장 보러 가는 엄마를 졸졸 따라다녔던 기억이 전부다.


중학생 때쯤 오랜만에 시장을 찾은 나를 보고 단골집 아줌마들이 “엄마 치마꼬리 잡고 다니던 딸, 맞지”라며 반색하며 나를 반기셨다. 쭈뼛거리며 엄마 치마를 붙들고 놓지 않았던 소심한 아이, 어린 나는 동네 아줌마들에게 이런 모습으로 남아있다. 엄마는 내가 하도 붙들고 늘어져서 길거리에서 치마가 완전히 벗겨질 뻔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고 가끔 과거의 기억을 툭 끄집어낸다.


활기차게 동네 아이들을 끌고 다니는 오빠와 달리 맥없는 나는 늘 집에서 엄마, 아빠와 있었다. 아빠와 목마 놀이를 하거나, 아니면 엄마 아빠는 뭘 하나, 이런 생각을 하며 물끄러미 바라보는 것이 내가 집에서 했던 전부였다.


이렇게 무료하게 하루하루를 보내는 내 시선에 들어온 엄마는 시간 날 때마다 손에 뜨개바늘을 쥐고 있었다. 항상 무엇인가를 짜고 있었고, 완성품은 대부분 내 차지였다. 엄마의 손이 움직일 때마다 나는 또 다른 공상에 빠져들곤 했다.


엄마의 손을 거쳐 완성된 옷은 내 소심증을 마법처럼 감춰줬다. 엄마의 마법 같은 손을 거쳐 완성된 옷은 나를 주인공으로 만들었다.


새까만 얼굴, 깡마른 몸, 그럭저럭 대충 자리 잡은 눈 코 입, 어느 것 하나 시선을 끌기 어려운 볼품없는 모습. 나는 그저 저 집에 딸이 있었지, 정도로 기억되는 존재였다. 그런데 엄마가 짜준 옷을 입고 나가면 내 존재감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다. 사실 그들은 내가 아닌 내가 입고 있는 옷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 사실을 그때는 미처 깨닫지 못했다.


사람들은 그 옷을 입고 있는 나에게는 관심이 없었다. 대신 옷만 뚫어지게 관찰하며 엄마에게만 말을 걸었다. 이걸 어떻게 짰어요. 정말 솜씨 좋네요. 엄마의 뜨개 실력에 감탄하는 말만 하며 옷과 엄마를 번갈아 볼 뿐이었다. 사람들의 시선은 내가 아닌 내 옷을 향해있었다. 그들의 관심은 오직 엄마의 손뜨개 비법뿐이었다.


나는 손뜨개 옷을 입고 의기양양하게 사람들의 시선을 즐겼지만, 사실 그 시선은 내가 아닌 내 뒤 혹은 옆에 있던 엄마를 향해있었다. 엄마의 그림자로, 엄마의 자부심을 내 자부심으로 여기며 그렇게 소심한 세 살은 행복한 공상으로 잠시나마 어깨를 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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