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상 4. 닉스 청바지 ; 스물아홉 세기말의 욕망

옷의 기억

by 인이상

뒤늦은 나이에 소위 ‘브랜드 청바지’ 세계에 입문했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날렵하고 날씬하게 쭉 뻗은 다리를 가진 친구의 ‘죠다쉬 청바지’가, 대학교 시절에는 큰 키와 긴 다리를 감싼 복학생 선배의 ‘게스 청바지’가 심장을 쿵쾅거리게 했지만, 그뿐이었다.


나는 그 청바지를 살 명분이 없었다. 아빠한테 사달라기에는 성적이 형편없었고, 아르바이트하기에는 의욕이 없었다. 없는 것투성이였던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공상하는 것뿐이었다. 그렇게 욕망만 있을 뿐 실체는 없는 패션 문외한이었던 나는 직장 생활 2년 차가 됐을 때쯤 ‘닉스’ 롤업 청바지를 샀다. ‘닉스’ 청바지는 내 다리 매무새를 완전히 바꿔놓았다.


청바지가 잘 어울리는 여자, 청바지에 흰 티가 잘 어울리는 여자. 이성의 로망이자 동성 사이에서도 매력도를 가늠하는 이 기준이 타고난 몸에서 나온다고 생각해왔다. 나의 짧은 다리는 결코 이 로망과 거리를 좁힐 수 없을 거라고.


닉스를 입는 순간, 나는 ‘침대는 가구 아닙니다. 과학입니다’를 ‘청바지는 옷이 아닙니다. 과학입니다’라고 바꿔야 한다고 주장하고 싶었다. 엉덩이가 적당히 탄력 있게 긴장감이 생기면서 내 짧은 다리가 꽤 그럴듯하게 균형 잡힌 외양으로 탈바꿈하는 신세계를 경험했다.


정말 신기한 마음에 “이래서 비싼 청바지를 입는구나”라며 과거 친구와 선배의 엉덩이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던 순간을 떠올렸다. 얼마나 좋았으면 동료들에게 “내 다리, 그럴듯해 보이지”라며 청바지가 아닌 다리를 자랑하기까지 했다.


‘닉스’ 청바지는 사춘기 공상이 현실에서 전환된 시작이자, 공적 생활에 필요한 소통이 열리는 전환점이 됐다.


당시 패션지에서 캐주얼 담당이었지만, 브랜드 관계자들과 소통하기에는 상품에 관한 지식이 턱없이 부족했다. 어떤 지식이든 글로 배우고 말로 알아가는 것만으로 충분치 않다. 간접 체험은 직접 체험을 동반해야 제대로 된 지식 체계를 갖추게 된다. 직접 체험하지 않으면 브랜드 개발자와 소비자, 그 어느 쪽 마음도 알 수 없고, 무엇보다 브랜드 관계자들에게 대화할 만한 자격을 갖춘 사람으로 받아들여질 수 없다.


초두 효과는 한 개인의 인상을 형성하고 뒤에 따라오는 정보를 해석하는 방향에 영향을 미친다. 특히 만나는 상황과 시간이 제한적인 공적 생활에서는 초두 효과가 결정적이다.


과거 한 브랜드 관계자는 자신이 생각하는 기자를 세 유형으로 분류했다. 대화는 되는데 글발이 안 되는 경우, 대화는 안 돼도 글발은 되는 경우, 대화도 되고 글발도 되는 경우. 대화도 글발도 안 되는, 기자 자격이 없는 경우는 유형 분류에서 아예 제외했다.


타인을 유형으로 분류하고 평가하는 행위는 바람직하지 않다. 그런데도 개인이 아닌 이익 집단의 구성원으로서 자산과도 같은 시간이 허투루 낭비될지, 쓸모 있는 소비가 될지 가늠할 수 있는 최소의 기준이라는 점에서 수용할 수밖에 없다.


타인을 유형으로 분류하고 그것에 맞게 대처하는 방식은 업무의 효율성과 민첩성을 높인다. 무엇보다 이 세 유형은 다른 사업적 관계에서도 광의의 적용이 가능하다. 대화가 되는 사람, 대화가 결과로 나타나는 사람. 사적이든 공적이든 이런 사람이 되려면 링컨의 언급처럼 외면에도 책임을 지는 사람이 돼야 한다.


닉스 청바지는 대화가 되는 사람으로 가는 시작이었다. 삶이 예고편 없이 전개되듯 나는 의도치 않은 또 다른 갈래의 길로 들어섰다. 이후 ‘닉스’ 가격과 비교할 수 없는 프리미엄 청바지를 사들이기 시작했다.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세기말을 지난 패션 시장은 수입 프리미엄 청바지 시대로 접어들었다. 아직도 내 옷장에는 그 시절 흔적이 남아있다.


대화가 되는 사람이 되고자 하는 바람은 어느 순간 과거 사춘기 공상에 가둔 콤플렉스의 보상심리를 끌어냈다. 콤플렉스는 자격지심을 어리석은 방법으로 만회하고자 하는 그릇된 방식을 멈출 수 없게 했다. 결국 외양의 욕망에 지배당하는 참담한 비극으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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