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상 5. 마이크로미니 원피스 ; 서른셋의 질풍노도

옷의 기억

by 인이상

한창 일할 나이라는 30대. 나 역시도 분주히 일했다. 그런데 방식이 어딘지 모르게 기형적이었다. 분주하긴 한데 성과는 뚜렷하게 없고, 땅을 딛지 않고 붕 떠다니는 기분으로 뚜렷한 목표 없이 하루하루를 보냈던 듯하다.


30대가 되면서 궤변론자가 된 나는 예수님이 인간들을 위해 십자가의 운명을 받아들인 나이가 왜 하필 서른셋이었겠냐며 되지도 않는 선문답을 유도했다. 33세는 삶의 전환점을 맞는 결정적 변화의 시기라고 강변했다. 결혼을 할지, 이직을 할지, 지금과는 전혀 새로운 삶을 설계할지. 사적이든 공적이든 이 시기에 중요한 선택의 갈림길에 선다는 생각이었다.


결정적인 선택의 시기인 33세, 사춘기의 질풍노도가 다소 늦게 들이닥쳤다. 쾌락주의와 허무주의가 여러 차례 오가는 하루하루를 보내면서 나의 외양은 다소 흉측해졌다. 물론 당시에는 최선이라 생각했지만.


몇 달 전 옷장을 뒤지던 나는 경악할만한 옷을 발견했다. 어떤 어깨라도 우스꽝스러워 보이게 하는 말발굽 모양의 목선, 제아무리 몸매가 좋아도 기형으로 착각하게 하는 H-라인도, X-라인도 아닌 소심한 A-라인, 상의로 입기도 원피스로 입기도 애매한 길이의 그레이 티셔츠. 나름 잘 나가는 오너 디자이너 브랜드의 제품이었던 탓에 그 브랜드에 관한 이미지마저 나빠졌다.


나는 그 정체를 알 수 없는 티셔츠를 원피스로 입었다. 안에 속치마를 입는다고 입었는데 추정컨대 내 팬티를 주변 사람들한테 보란 듯 자랑하고 다녔을 듯하다. 나의 경악할 만한 패션 추태는 공상에만 빠져 지낸 사춘기에 대한 보상 기제처럼 내 30대를 장악했다.


굳이 변명하자면 나는 시대의 유행에 영합한 패션 빅팀(fashion victim), 패션의 희생자다. 30대가 시작된 세기말을 지난 거리는 클리비지, 마이크로미니 등 노출의 시대를 맞았다. 이 시기 ‘패션 빅팀’이 자조 섞인 말처럼 패션계에서 유행했다.


30대의 나는 세기말의 허무주의를 지나 또다시 쾌락에 빠져든 21세기 소비사회에 철저하게 복종했다. 소심한 성격 탓에 성 충동을 억누른 대신 어설픈 섹슈얼리티의 노출 패션으로 대리만족한 것 아닐까.


33세를 전후한 나의 30대는 ‘미친 시기’라는 말 외에 달리 표현할 수 없다. ‘닉스’ 청바지로 시작된 대화 상대될 자격을 운운하며 시작된 소비가 중증 쇼핑 중독이 됐다. 절제 없는 생활은 재정은 물론 정서에도 해악을 끼쳤다.


거리를 지나가다 자신에게 어울리지 않는 유행 아이템을 부자연스럽게 있는 그대로 입은 이들을 보면 과거의 내가 생각난다. “그래. 그 단계지. 그걸 거쳐야 크지”라며 혼잣말을 하며 입꼬리를 살짝 올려 웃는다. 동변상련이랄까. 그렇게 또 다른 누군가가 겪는 미친 질풍노도의 시기를 소리 없이 조용히 격려한다.


그들은 나처럼 흉측해지지는 말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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