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의 기억
패션 언저리에서 일을 시작해 짧지 않은 시간을 보내다 보니 주변에 ‘단지 숫자에 불과한’ 나이에 매몰되지 않고 소위 ‘쪼대로’ 사는 이들이 다수다. 결혼하지 않은 이들, 이혼한 이들, 결혼 후 선택적 독립 가구로 사는 이들 등 사회가 권장하는 모범 사례가 아닌 각자의 방식대로 산다.
나는 그중에 ‘결혼하지 않는 이들’ 소속이자, 여성성에서 살짝 이탈한 부류다. 유니섹스 패션이 아닌 남자 옷에 매력을 느끼는, 성 소수자가 아닌 굳이 분류하면 ‘패션 소수자’다. 그렇다고 옷장 전체에 칙칙한 남자 옷만 병적으로 채워 넣는 그런 부류는 아니다.
최근 남성복을 찾는 여성들이 늘었지만, 체형의 이유가 아닌 이상 굳이 남성복 매장에서 쇼핑하는 이들은 많지 않다. 내가 그 몇 안 되는 몇 명에 속한다.
더는 여성복이 패션의 꽃이 아니다. 힙(hip)하면서 편안한 옷을 여성복에서는 찾기 어렵다. 나도 과거 여성복의 틀에 박힌 여성성에 빠져들었던 적이 있지만, 여성복은 섹시하거나 로맨틱하거나 둘 중 하나다. 게다가 섹시든 로맨틱이든 섹슈얼리티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 몸매를 강조하는 디자인이 주를 이룬다.
여성복이 이처럼 여성성의 기본 공식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가운데 남성복은 스트리트 패션에서 주도적 위치를 더욱 굳건히 했다. 무엇보다 과거 여성복 중심이었던 해외 유명 디자이너들의 런웨이를 스트리트 패션이 장악하면서 남성성은 신사 혹은 마초 이분법에 매몰되지 않고 여성성을 수용하면서 융통성 있게 진화하고 있다.
나는 남성복의 이 같은 탄력성에 빠져들었다. 남자 옷에 매력을 느끼는 이유는 이처럼 사회 변화를 능동적으로 받아들이는 남성성의 재구성 때문이다. 남자가 되고 싶은 로망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성 정체성을 의심받기도 한다. 사실 남자 옷을 좋아한다고 해서 스트레오타입화 된 부치(butch ; 레즈비언 중 남성적인 특징을 가진 이들을 지칭) 복장을 하고 다니지 않아 남자로 보지 않지만, 내 패션은 패션업에 속한 지인들 사이에서조차 화제다.
2년 전 자주 가던 편집 매장의 시즌 아웃 세일에서 이국적인 군복 스타일의 셔츠를 발견하고 속으로 환호성을 질렀다. 카멜, 베이지, 그린의 은은한 배색과 독특한 단추 여밈, 오버사이즈룩으로 입기 알맞은 체격 좋은 남자에게 꼭 맞을 만한 넉넉한 품까지 어느 것 하나 부족함 없는 디자인이었다.
이 밀리터리 셔츠는 정품의 빈티지 군복을 부분 가공해서 상품성을 높이는 이탈리아 업사이클링 브랜드 ‘마이어(MYAR)’ 제품으로, 지금 인기를 끄는 스트리트 무드를 반영하면서도 계절이나 유행에 구애받지 않을 듯한 클래식까지 갖춘 이중적 매력을 갖고 있었다.
전쟁에서 예상치 않게 빠르게 완승을 한 장군의 전리품처럼 이 셔츠를 옷장에 걸었다. 이 옷을 본 주변 지인들은 “너니까 입는다” “이런 것까지 입니” “이거 질리지 않고 꽤 오래 입겠는데” 등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
가장 흥미 있는 반응은 “딱 페미니스트인데”라며 내가 자신을 굳이 페미니스트라고 하지 않는 이유를 궁금해하는 이들이다. 나는 어쩌다 보니 페미니스트 자격을 갖추게 됐다. 남자 옷을 입는 무성(無性)주의 패션 때문만이 아니라 페미니즘 관점을 견지하기 때문이다.
일의 필요에 의해 사회적으로 민감한 화두인 페미니즘을 다루다 보니 자연스럽게 표리부동이 아닌 표리일치, 언행일치가 됐다. 관념적인 얕은 지식만으로는 알 수 없는 페미니즘에 관해 하나하나 짚어가고 이 과정에서 성 평등주의 관점이 몸에 배어들었다. 그런데도 굳이 “난 페미니스트”라고 주장하고 싶지 않다. 페미니즘이 남성 권력의 전복이 아닌 남성과 대등한 권리 확보에 있는 만큼 페미니즘보다는 평등주의자라는 주장이 더 적합하다는 입장이다.
우연히 시기가 맞물렸다고 할 수도 있지만, 패션이든 성별이든 선택의 자유가 보장돼야 한다는 생각이다. 나의 무성주의 패션은 이처럼 성 차별주의 혹은 성 구별주의를 당연하게 여기는 사회의 보편적 개념과는 궤를 달리한다.
남자 옷은 내 사상의 한 단편과 맞닿아있을 뿐이다. 내 옷장에는 주변에서 레드카펫 패션이냐며 기막혀하는 프릴이 오브제처럼 달린 유니크한 퍼플 원피스도 있고, 아방가르드한 옐로 벌룬스커트 등 예상치 못한 아이템들도 있다. 회사를 그만두고 나서는 백수 패션이 필요하다는 명분으로 트레이닝룩을 수집하듯 사들이다, 최근에는 빈티지 로맨틱 무드의 옷으로 눈을 돌렸다.
일일이 주석을 달 수는 없지만 내 옷장의 옷들은 내 외면과 내면의 다중성을 연결하는 매개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