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수현 Jul 30. 2018

디지털 인터랙티브 작품의 한계점?

아모레퍼시픽 미술관 <DECISION FOREST> 전시

아모레퍼시픽 신사옥에 라파엘 로자노-헤머의 디지털 인터랙티브 전시를 보았다. 전시 소개는 아모레퍼시픽 공식 홈페이지에 나와있는 전시 설명 글로 대체하고,


멕시코 태생의 캐나다인인 라파엘 로자노 헤머(1967-)는 지난 26년간 공공장소에서 관람객들과 적극적으로 소통하는 인터렉티브 프로젝트를 필두로 기술을 기반으로 한 다양한 작품을 선보여왔습니다. 이번 전시는 1992년도 첫 작품부터 신작까지 총 24점의 인터렉티브 작품으로 구성되어있어 작가의 작품세계를 조망할 수 있으며, 대형 사이즈의 주요 프로젝트를 신축 미술관 공간에 맞게 새롭게 구성하여 기존 작품을 새로운 감각으로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입니다.
첨단 테크놀로지를 통해 구현된 다양한 작품들은 관람객의 참여와 관계 맺기를 통해 완성되며, 관람객은 작품과 직접 소통하는 과정을 통해 스스로 작품이 되는 특별한 체험과 기억을 가져갈 수 있을 것입니다.


바로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로 건너뛰고자 한다. 인터랙티브 위주의 작품을 보면서 눈에 띄었던, 인터랙티브 하지 않은 하나의 작품에 대해.


✧ 가벼운 작품과 무거운 작품 설명글


<Last Breath>


<Last breath>는 성인의 하루 평균 호흡 수만큼 모터를 통해 종이봉투에 담긴 숨이 순환하고, 종이봉투가 부풀어 오르고 다시 줄어들면서 숨이 순환하는 것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모터에 달린 숫자는 지금까지 기계가 숨을 쉰 횟수를 나타낸다.


이 작품은 전시실 동선상 꽤 뒤쪽에 위치하고 있는데, 전시를 둘러보며 의아스러웠던 점이 있었다. 전시 자체가 디지털과 알고리즘을 전면적으로 내세우고 있는 데 반해 몇몇 작품의 설명글에서는 여러 철학자를 인용하며 철학적, 현학적 의미를 집어넣으려한 노력했다는 점이다. 인터랙티브 작품은 '관람객이 즉각적으로 받아들이고 이해하고 행동할 수 있다'는게 가장 큰 특징 혹은 강점이다. 그러나 전시 설명이 (디지털과 상관없는) 현학적인 말에 기대면서 작품 특성을 강화하기보다 약화시킨다. 작품의 가벼움, 즉 의미와 사유의 부족함을 보완하려다가 드러내는 꼴이다. 이는 작품뿐 아니라 큐레이팅의 문제일 수도 있다.


철학자를 인용하지는 않았지만 이 점에 있어서 위 작품은 작가의 ‘아우라 덧붙이기’ 일환의 절정이었는데, 유명 가수(쿠바의 전설적 가수 오마라 포르투온도)의 숨을 종이봉투에 담았다는 점이 그렇다. 작품의 의미를 과학, 디지털, 알고리즘과 어쩌면 반대 극점에 위치하는 유명인의 권위에 기댐으로인해 작가 스스로가 관람객에게 작품의 부족한 점을 시인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재료로 사용된 종이봉투 또한 허점으로 보인다. 종이봉투는 공기가 통하는 재질이고(그래서 빵을 종이봉투에 보관한다!), 따라서 그 안의 유명인의 숨이 외부 공기와 섞이지 않았을 것이란 주장은 과학적으로 말이 안 된다. 컴퓨터 알고리즘을 통해 작업하는 작가가 아니었다면 이런 식의 비판은 하지 않았겠지만 재료의 과학적 정확성은 디지털 작품에서 중요한 요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이 다른 작품에 비해 눈에 띄었던 이유는 전시장에 있는 다른 작품과의 차이점 때문이다. 전시된 거의 모든 작품은 관람자의 얼굴•신체를 인식해서 그 자리에서 체험하고 결과물을 확인한다. 이같은 방식의 체험은 관람자가 어떤 기계나 기능을 테스트하는 인상을 준다. ‘어떻게 실행될까?’ ‘이렇게 되는구나’ 라는 확인 과정으로써의 테스트는 무언가를 종결시키기 못하고 비완결적으로 존재할 수 밖에 없다. (비완결적 작품은 좋은 예술이 될 수 없다는 게 아니다. 비완결성이 작품의 의미 요소로 발전하지 못했다는 것에 가깝다.) 반면 이 작품은 스스로 완결적이다. 주제 또한 흥미로운데, 숨’이라는 주제가 주는 해석의 다양함, 무형의 개념과 디지털의 맞닿음이 그렇다.


앞서 말한 작품이 ‘테스트 과정’ 같다는 인상 때문에 작품의 무게가 가벼워지고 바로 그 이유로 작가가 여러 권위(철학자, 유명인 등)를 가져온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지만, 오히려 가벼움을 더 적극적으로 활용했으면 좋았을 것 같다. 이 작품이 ‘어찌보면  하찮은 숨의 존재 의미를 조명하기 때문에 좋았다’는 친구의 감상처럼 숨이라는 무형의 존재에서 오는 하찮음 혹은 가벼움에 집중해 출처에 집중하지 않은 아무나의 숨이었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또한 ‘알고리즘을 활용한 디지털 작품은 시각적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게 아니’라고 해도 아름답고 추하고를 떠나서 작품이 시각적으로 효과적이지 못했다. 대부분 알고리즘의 실현을 위한 비주얼에 지나지 않았다. 마지막 방의 <Pulse Room>을 제외하고는. 하지만 빛, 그것도 백열전구를 이용한 작품이 아름답지 않기란 또 얼마나 어려운가!



✧ 인터랙티브 아트의 본질적 한계점?


디지털 체험 전시 혹은 인터랙티브 아트 전시는 행위-작동-확인 과정에 관람자의 주의를 집중시키고 이 과정이 반복되며 작품이 전하고 싶은 것(의미, 가치, 서사 등 무엇이든)보다 순간적, 단편적 행위만을 남긴다. 그 이유를 이 전시에 대한 아래 기사에서 유추해볼 수 있다.


데이터 과학 용어이자 이번 전시 제목인 ‘Decision Forest’는 관람객의 선택, 그리고 관람객과 작품의 상호작용에 따라 얻을 수 있는 결과값을 의미하기도 한다.

출처: 아모레퍼시픽미술관 첫 기획전, 라파엘로자노헤머 작가의 'Decision Forest'


말은 '관람객이 선택하고 그 상호작용에 따라 결과값을 얻을 수 있다'라고 하지만 실제 전시장에 구현된 작품들은 그렇지 않다. 이미 관람자가 선택할 수 있는 건 한정되어있고, 그에 따라 나올 결과값도 정해져 있다. 작품은 하나같이 이렇게 말한다. "제 앞에 서 보세요. 몸을 이리저리 움직여 보세요. 당신을 디지털화해서 보여드릴게요."


작품으로 예를 들어보자면 실시간 인터넷 기사 위로 관람객의 그림자가 비치고 그 위로 연기가 피어오르는 <Airborne Newscast>, 움직인 위치에 따라 눈동자가 따라 움직이는 <Surface Tension>, 관람객의 위치에 따라 서로의 거리감을 보여주는 <Zoom Pavilion>, 관람객의 심장 박동을 감지해서 맥박처럼 빛나는 <Pulse Room>, 지문을 220배로 확대해서 나열해 보여주는 <Pulse Index>...... 전시된 작품 모두 마찬가지이다. 관람객이 해야 하는 행동은 정해져 있고, 그에 따라 나오는 결과도 정해져 있으며, 그림자, 맥박, 지문은 사람마다 다르다고 주장하기엔 그 다름이 눈에 띄는 정도가 아니다. 아이러니하게도 관람객은 앞서 체험한 사람과 자신의 결과값이 '그리 다르지 않다'는 것을 확인하고, 어쨌든 '직접 해봤다'는 잠깐의 성취감을 느끼고 정해진 다음 스테이지로 이동한다.


<Airborne Newscast>와 <Pulse Index>의 전시장 전경.


작품들은 어떤 해석의 여지도 없이 단순한 반복으로 짜인 행위-작동-확인 과정 때문에 예술이 아니라 한순간의 체험으로 인식된다. 이 한계점을 어떻게 뛰어넘어야 할까? 이것이 인터랙티브 아트의 어쩔 수 없는 본질적 한계일까, 작가의 한계일까. 이 질문에 위에서 잠시 언급한 '시각적으로 효과적이지 못했다'를 답으로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미지가 빈약했다는 것.

 

예술적 이미지는 작품의 의미나 매체, 성질과는 상관없이 예술로 받아들여진다. 여기서 예술적 이미지란 멋지고 보기 좋은 이미지가 아닌 그 자체로 내부에 우리를 상상하게 하고 더 나아가게 하는 힘을 갖고 있는 이미지이다. 예술적 이미지는 해석해야 할 기호, 번역해야 할 언어로서 우리에게 이야기를 건내기도 하고, 반대로 도저히 읽어낼 수 없는 무언으로, 말이 필요없는 명증성으로 존재하며 우리를 방황하고 난처하게 한다. 이러한 이중성 위에서, 해답과 해답 없는 실재를 이리저리 옮겨 다니는 체제 속에서 이미지는 예술이 된다.


따라서 앞서 말한 한계점은 인터랙티브 아트의 본질적 문제가 아니다. 이미지에 해석의 여지가 한 톨도 없었기 때문에, 작가가 이미지를 단정적이고 해설적인 도출 결과값으로 사용했기 때문에 예술적 이미지가 될 수 없었던 것이다. 글 제목에 물음표를 덧붙인 것은 이런 이유에서이다.


기입과 도출로 이루어져 있는 알고리즘의 특성상 코딩을 예술적 이미지로 만들어내기는 기존의 예술 매체를 이용하는 것보다 어려운 과제일 수 있다. 알고리즘이 전시장에 들어오게 된 지 얼마 되지 않았고 처음 가는 길은 어렵기 마련이니까. 비슷하지만 성공적인 사례로 사진이 있다. 사진도 눈앞에 보이는 그대로를 포착(기입)해서 감광(도출)되지만 어떤 사진은 예술이 된다. 알고리즘으로 이뤄진 디지털 작업도 마찬가지이다. 만드는 과정이나 매체의 문제가 아니라 이미지 역량의 문제이다. 이제 알고리즘을 이용해 어떻게 예술적 이미지를 만들어낼지 생각해 볼 차례이다.


+) 한계에 초점을 맞춰 글을 쓰긴 했지만 전시와 아모레퍼시픽 건물 모두 한 번 가볼만 하다. 이정도 규모로 인터랙션을 내새우는 전시는 잘 없기때문. 깊이가 있든 없든 인터랙션을 실제로 체험하는건 원리만 아는것과 다르다. 건물 자체도 건축부터 가구, 인포그래픽 등 매우 세심하게 디자인 되어있다.

매거진의 이전글 공동체와 함께 감각하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