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사물이 날카롭게 보이는 빛이 있다. 날이 서서 입자 하나하나가 내 눈에 와 박히는 빛. 날카로워서 잔디에도 베일 것 같은빛.
반대로 모든게 흐릿해지는 빛이 있다. 어떤 빛도 흡수해 무력화시키는 빛이다. 모든 물체가 뭉그러져 엉겨 붙는다. 눈을 크게떠도 물 속에 있는 느낌으로.
날카로운 빛은 어쩌다 한 번 찾아오지만 흐릿해지는 빛은 매일 반복된다. 이 흐릿한 빛은 천천히 스미고 어느새 사라진다. 그럴 때는 눈을 크게 뜬다. 아무 소용 없더라도 무언가 명확해 질 것만 같아서. 그러나 눈을 아무리 크게 떠도 형체는 섞이고 빛인지 어둠인지 모를 시간이 애매하게 뭉그러진다.
태양, 밝은 빛, 잘 깎여진 조각처럼 떨어지는 빛.
흘러들어오는 빛. 얹혀진 빛.
나는 이 빛에서 지난 여름의 고궁과 골목을 떠올린다. 내가 알던 거리들이 그대로 있음을 확인하고, 안도하고, 구석구석 쏘다니고, 영역을 관리하는 동물과 같이 계속해서 반복하고.
마음에 드는 각도로 빛이 떨어지는 곳이 나의 영역이다, 그곳은 언제나 햇빛이 알맞게 떨어진다.
누군가의 흔적이 아주 오래전부터 쌓여왔고, 언제고 사라지고, 생겨나는 곳.
햇빛은 거대한 각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