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 Contax G2 (콘탁스 G2 필름카메라)
과거 필름카메라 시절에는 AF 가 되는 카메라 자체가 거의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AF가 되지 않는 수동 디지털카메라를 찾기 어렵다. 마치 수동 미션 차량을 찾기 어려운 자동차 시장처럼 말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사진 생활을 AF 기반으로 밖에 해 보지 못한 사람들이 많다. 물론, AF 카메라도 수동 조작 옵션이 가능하지만, 자동 기능이 없어 수동조작을 해야 하는 카메라와는 다르다.
내가 처음 수동 조작을 시작한 건, 렌즈 때문이었다. 캐논 및 후지카메라를 이용해서 사진 생활을 즐겼는데, 우연히 만난 블로그에서 Voigtlander 렌즈로 찍은 결과를 보고 정말 홀딱 반했다. 무언가 디지털만의 감성만 느껴지는 것이 아니라, 아날로그적이 감성도 느껴진달까?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느낌이 훅~하고 밀려왔다.
이때 고민 후 후지에 M 마운트 어댑터를 구매해서 보이그랜더 렌즈로 수동 렌즈 사진 생활을 시작했다. AF 포인트를 정하고 띠릭~ 하는 디지털음과 함께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손가락을 초점링에 대고 돌려가며 초점을 맞추는 느낌은 신선했다. 처음에는 AF 대비 초점 맞추는 시간이 오래 걸렸지만,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다. 한 달 두 달 시간이 흐르니 빠르게 초점을 맞출 수 있었다.
사진은 찍는 행위 자체도 큰 즐거움이다. 그런데, 원래 카메라의 모터가 하던 초점 조작을 손으로 하기 시작하니 재미가 하나 늘었다. 이제 초점을 맞추는 행위 자체도 즐거움이 되었다. A 모드로(조리개만 수동으로 하고 나머지는 자동) 설정하고 수동으로 초점을 맞추면 완전 수동조작을 하는 것이 아니니 쉽게 적응할 수 있다.
보통 AF 카메라라고 해도 AF 포인트를 핀으로 설정하고 핀을 이동해서 초점을 맞추면, 버튼 조작 혹은 조이스틱 형태의 조작을 해야 한다. 이렇게 조작하다 보면 사진을 찍을 때 원하는 순간이 사라질 수 있다. 아이러니하지만, 수동 조작은 초점링을 돌려서 순간적으로 원하는 포인트에 초점을 맞출 수 있다. 종종 AF보다 더 빠르게 초점 조작이 가능하다. 물론, 사람 얼굴이나 오브제를 자동 인식하도록 하는 경우보다 빠를 수는 없겠지만, 아래와 같은 경우는 오히려 이런 설정이 방해된다.
1) 사람이 여럿 있는 상황에서 내가 원하는 사람의 눈에 초점을 맞추고 싶은 경우 (사람이 같은 위상 즉 일렬로 서 있는 경우는 드물다!)
2) 내가 원하는 오브제가 여러 개인데, AF가 인식한 오브제는 위상 차이가 가장 뚜렷한 녀석을 기준으로 잡는다. 이 경우 딱 내가 원하는 오브제를 선택할 수 없다. 여러 번 삐릭 삐릭 하면 AF를 잡아야 내가 원하는 사물에 초점을 맞출 수 있는 경우 짜증 나지 않는가?
3) 어둠이 내린 뒤는 종종 AF가 먹통이 된다!
이런 상황이 반복되면 AF 가 나를 돕는 것이 아니라, 방해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이넘의 AF 혹시 나와 경쟁하는 포토그래퍼가 보낸 선물인가? 뭐 이런 엉뚱한 생각까지 해 보았다......
결국 나는 이런 이유로 AF 가 되지 않은 수동 카메라인 Leica M 시리즈를 주력으로 사용하게 되었다. 누군가는 편리한 카메라를 두고 불편한 카메라를 쓰냐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위의 내용을 보면 나에게는 라이카 M 인 천생연분이다.
그런데, 누구나 수동 카메라가 편안한 건 아니다. 분명 AF의 편리함도 있다. 다음은 내 지인인 김명훈 포토그래퍼가 Contax G2로 담은 필름 사진이다. 그도 수동 카메라의 즐거움을 즐기지만, 필름으로 상업 촬영을 할 때면 AF가 가능한 Contax G2로 필름사진을 찍게 된다고 한다. Contax G2 는 비교적 AF가 정확하다고 한다. 이 때문에 AF를 신뢰하고 빠르게 필름사진을 담아야 하는 순간을 G2로 스케치한다.
내가 이야기하고 싶은 건 간단하다. 대부분 AF로 사진을 배웠거나, AF가 아닌 세계에 대한 맛을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경험해 보지 못했다면 다른 세계도 한번 경험해 보고 자신에게 잘 맞는 방법이 무엇인지 느껴보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