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카 M10' 은 최고의 사진 선생님?

라이카 에세이 - Chapter 1

by Allan Kim

이전 글은 다음 링크를 참고

https://brunch.co.kr/@allankim/191


전화를 받자마자 전율이 일었다. 반가운 목소리를 들었을 때부터 내용을 짐작했기 때문이다. 아직 내 대기번호가 된 건 아니지만, 갑자기 구매를 취소한 순번의 물건을 받을 수 있도록 해 주겠다는 것이다. 내가 예약했던 물건은 블랙 모델이었지만 관계없었다. 바로 받을 수 있다면 영혼까지 팔 기세였기 때문이다. 원래 취소자가 생기면 다음 대기 번호자에게 물건이 돌아가지만, 내가 한주에도 몇 번씩 매장에 가서 서글픈(?) 눈으로 라이카 들을 쳐다보았더니 불쌍했나 보다. VIP 고객도 아니고 첫 라이카 구매 고객에게 이런 배려를 해 준 매장 매니저가 아직도 생각이 난다.


전화받은 날 즉시, 생업도 뒤로 미루고 매장으로 달려갔다. 정말 한 시간도 더 기다릴 수 없었다. 드디어 실버 모델을 확인하고 미리 구매해 두었던 주미크론 35mm를 마운트 하자마자, 한 장 찍어 보았다. 찰칵~ 정말 카메라 다운 셔터음이 너무 마음에 들었다. 차가운 황동 바디의 느낌이 그 감촉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 이중상합치 적응할 수 있을까요?


매장에서 몇 장 찍어보자마자 라이카 문화 충격을 느꼈다. 기존 카메라는 직관적으로 찍을 수 있었는데, 라이카는 이중상합치 방식이라는 초점 방식이 너무 생소했다. 두 개의 상이 하나로 합쳐지는 순간 초점이 맞은 것인데, 물론, 연습하게 되겠지만, EVF에 너무 익숙해졌던 나는 걱정이 앞섰다.


매장 매니저가 조심스레 비조플렉스(VisoFlex) 라는 외장 EVF 파인더를 추천해 주었다. 이걸 사용하면 배터리가 빨리 소모된다고 하나, 보험처럼 추가 구매를 해 두고 싶었다. 사실 비조플렉스도 가격이 무척 사악하다. 하지만, 워낙 말도 안 되게 비싼 라이카 본체 가격과 비교하니, 이 정도는 정말 액세서리 가격처럼 느껴졌다. 정신이 나갔다 보다. 그냥 아무 생각 없이 한꺼번에 구매했다.


추억의 매개체라는 이유로 비조플렉스는 사용하지 않지만, 보관하기로 했다.


지금에 와서 하는 이야기지만, 비조플렉스는 라이카를 처음 구매할 때 구매한 뒤 6년이 지난 지금까지 제대로 사용해본 적이 없었다. 사실 지금은 이중상합치가 너무 편해 더욱 사용할 일이 없다. 하지만, 녀석은 아직도 중고로 판매하지 않고 갖고 있다. 뭐랄까? 라이카를 첫 구매할 때 순간을 떠올리게 하는 매개체 같은 느낌이랄까?


이날부터 다른 카메라는 모두 제습함에 넣고 35mm 주미크론(Summicron) 렌즈와 라이카 M10 조합으로 다녔다. 그리고 며칠 지나지 않아 후지 x-pro2를 제외한 모든 카메라를 정리했다. 더 이상 다른 카메라들을 사용할 일이 없을 것 같았다. 들고 찍지 않아도 기분이 한없이 좋은 바람에 라이카 M10 카메라는 늘 어깨에 걸쳐 있게 되었다.


이중상합치 방식은 생각보다 빨리 적응하게 되었다. 며칠 찍다 보니 금방 요령이 생겼다. 덕분에 고가로 추가 구매한 비조플렉스가 애물단지가 되었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보관하기로 했다. 그런데 새로운 복병을 만났다.


|| 노출이 고장 났나?


그간 캐논 후지의 다양한 카메라를 사용하며 이제 기술적인 부분은 상당히 자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라이카로 사진을 찍기 시작한 후부터 사진이 다시 엉망진창이 되었다. 특히 노출은 최악이었다. 역광 사진을 좋아했는데, 기존에 찍던 습관으로 찍으면 100% 노출이 엉망이 되었다. 처음엔 카메라가 고장 난 줄 알았다. 하지만, 라이카 매장에서 다른 라이카 M10 으로 테스트를 해 보니, 내 것과 동일했다. 순간 찌릿하며 큰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


그동안 내가 사진을 찍은 것이 아니라, 카메라가 대신 사진을 찍어 준 것이었다.



사진 좀 찍는다 생각했던 나는 큰 착각을 하고 살았다. 그간 찍은 사진은 내가 찍은 사진이 아니라, 카메라가 자동으로 찍어준 사진이 그저 좋게 느껴졌던 것이다. 이때부터 라이카 M10 은 나에게 사진 선생님이 되었다. 마치 사진을 처음 입문한 사람처럼 노출이라는 걸 처음 몸으로 느껴가며 “진짜”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 다음 편은 또 이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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