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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llan Kim Jul 24. 2019

빗방울에 젖은 꽃, 호수 같은 풀숲

리코 gr2

여름 비가 내리면 시원하기보다 습한 기운 때문에 무척 힘들다. 땀이 많은 나는 비가 내리면 어김없이 땀이 쏟아진다. 숨만 쉬더라도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름 비를 좋아한다. 아니 비가 내리면 일부러 우산을 쓰고 카메라를 들고 숲을 걷고 싶다. 꽃, 풀, 나무에 빗방울이 떨어지는 소리가 귀를 간지럽히고. 비에 젖은 흙내음을 잔뜩 마시면서.


리코 gr2 

비가 내리면 디지털카메라보다는 필름 카메라로 사진을 찍고 싶어 진다. 비의 감성과 필름이 만나면 마치 수채화로 그린 그림 같은 사진이 나오기 때문이다. 그런데, 내가 사용하는 라이카 필름 카메라는 수동 카메라이다. 초점도 수동으로 맞추어야 하고, 조리개, 셔터스피드 등 모두 수동으로 맞추어야 한다. 한 손으로 우산을 쓰고, 다른 한 손으로 이런 조작을 한다는 건 불가능하다. 할 수 없이 우산을 머리와 어깨 사이에 걸치고 양손으로 사진을 찍는다. 그러다 종종 우산이 떨어져 비에 젖곤 하지만, 나중에 얻을 필름 사진을 머릿속에 떠올리면 다시 이런 고생을 반복하곤 한다. 


리코 gr2

절반은 비를 맞고, 땀을 주르륵 흘리며 필름 사진으로 비에 젖은 꽃을 담고 나니 무언가 아쉬움이 밀려온다. 물방울에 젖은 꽃을 좀 더 가까이 찍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카메라 가방을 열었다. 다행히 오늘은 리코 gr2 를 들고 왔다. 한 손으로 쥐고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자동 디지털카메라 리코 gr2 를 꺼내 꽃 사진을 접사로 또 담아본다.


리코 gr2

꽃잎에 붙은 물방울이 아름답게 담겼다. 꽃에 맺힌 물방울만큼이나 큰 땀방울이 뚝뚝 떨어진다. 땀에 젖은 옷이 등에 달라붙어 슬슬 불쾌한 느낌이 들지만, 마음만큼 맑은 호수를 보는 것처럼 상쾌하다. 


리코 gr2




리코 gr2

호수 같은 풀숲에서 얼마나 시간을 보냈는지, 벌써 약속시간이 다가왔다. 약속시간보다 일찍 도착하길 잘했다. 업무용 촬영이 없어도 늘 카메라를 달고 다니는 어깨가 참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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